무릇,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는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몇 해 전 드라마 ‘녹두꽃’이 생각난다. 역사화했지만 사회변혁과 관련해서 당대적 물음을 가졌던 사건이기에 슬그머니 잊혀짐이 의아했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김남주 시인의 시 ‘노래’에 화가 김경주가 곡을 붙인 ‘죽창가 ’라는 엔딩 음악이 회자되기도 하여 ‘전봉준’과 대한민국의 주체적 근대에 대해서 잠시 숙고하게 했던 기억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뤘지만 한시도 주변 정세에서 한가로울 수 없는 지정학적 위치에 놓인 나라 대한민국. 작금의 시대상황은 1894년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지 않는가 라는 물음에 골몰했었다. 한편 스스로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동학농민들의 항쟁과 근대이행의 주체형성 운동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신적 원천으로 면면히 흘러왔음을 자각케 하였다. 3·1운동과 4·19혁명, 5·18민중항쟁과 6·10항쟁의 봉우리에 동학농민혁명의 그림자를 새삼 실감하였다.
역사는 문화화 할 때 전승된다. 국가는 지난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기념일 제정은 국가가 취해야 할 역사의 문화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2019년에 이르러서 제정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은 12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이 대한민국 국가의 ‘제도’에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국민과 함께 당대의 기억으로 소환하고 기념하려는 국가의 문화적 의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국민이 사라진 국가의 기념일은 형해화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계승해야 할 정신적 가치는 해체되고 기념의 형식만 남을지도 모른다. 역사가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옛날 옛적의 어쨌다더라 라는 설화가 되거나 달력 속의 무슨 무슨 날짜로만 명명될 것이다. ‘나’가 빠진 기념일은 ‘남’의 일이다. 그러니까 나의 일로 감각하도록 연결하는 공감장이 필요하고 문화예술은 충분한 매개 역할을 할 것이다.
1980년대, 동학농민혁명은 내게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로 왔고, 2015년에는 이광재의 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뭉클하게 왔다. 국가적 의장과 더불어 반드시 함께 해야 할 국민적 참여는 ‘나’의 기념일로 소환될 때 현재적 사건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슬그머니 잊혀질지도 모를 역사로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적 가치를 현재화하는 것. 그것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풍부하게 지금 이곳의 사건으로 느끼게 하는 데 있다.
지난 역사를 기념하는 일은 그 사건 속에서 삶과 죽음을 겪은 그때 그 사람들의 실존을 공감하게 하는 일이다. 고통과 슬픔, 두려움과 기쁨, 환희와 숭고를 느끼게 하는 일이다. 공통의 시간을 호흡하고 있는 모두에게 실감하게 하는 일이 기념사업이다. 국가적 기념일이 ‘나’의 기념일이 되게하고 ‘공동체’의 기념일이 되게 하는 것. 이러할 때 기념사업은 공동체의 상징 자산으로 역사적 사건을 당대화 하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을 비롯하여 근현대의 무릇 항쟁은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묻는 역사였으며 무릇 항쟁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은 나라의 주인은 ‘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갖게 하는 일이다. ‘그들’만의 기념이 아닌 ‘우리들’의 기억 공간으로 역사를 호명하는 일, 기념사업이 지닌 숙명이자 한사코 풀어나가야 할 과업일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 11월 광주에서는 제주4·3평화재단, 부마항쟁재단, 노근리평화재단, 5·18기념재단 등이 만나서 서로 교류하였고, 동학농민혁명재단도 함께할 것을 제안하기로 하였다. 기념사업을 하는 ‘서로’는 서로가 연대해야 하는 것 또한 풀어나가야 할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조진태 ∣ 시인,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1984년 『민중시』(시무크지)로 등단하여 한국작가회의 이사와 광주·전남 작가회의 부회장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다시 새벽길』, 『희망은 왔다』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