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통문의 진실회복을 위한 제언(提言)
중앙대학교 前객원교수 김수호

 
진실이 왜곡된 동학의 사발통문
사발통문(沙鉢通文)은 참여자의 성명이 사발(沙鉢:사기로 만든 둥근 그릇)모양의 원형으로 기록된 의결문서로서, 조선조 후기에 일부 사용되다가 임오군란 후에는 조정에서 사용을 금지시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명확한 사료는 없는 실정이다.
현재 남아있는 유일의 사발통문은 1968년에 발견된 1893년 11월 전봉준 장군 외 19인이 작성한 동학의 사발통문이므로, 일반적으로 사발통문이라고 하면 바로 이 동학의 사발통문(이하 사발통문이라 함)을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발통문에 관한 각종 역사관련 문헌(국어사전, 역사 교과서, 각종 역사 기록 등)에는 「사발통문에서 모든 관계자의 성명을 사발모양의 원형으로 기록을 한 이유는 주모자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진실과는 너무나 다르게 왜곡이 되어 있음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도화선이 되었던 사발통문의 역사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발통문에서 관계자의 이름을 사발모양의 원형으로 기록한 이유를 ⌜주모자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기록은 언뜻 보기에는 주모자의 뛰어나고 기발한 전략이라고 미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를 폄하하려는 기만적 술책이 숨어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발통문의 역사왜곡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분석하여 진실회복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사발통문의 진실왜곡에 관한 분석
1) 사발통문의 주모자인 전봉준 장군은 이미 신분이 공개된 상태였다.
사발통문의 주모자인 전봉준장군은 당시 고부의 접주로서 사발통문을 작성하기 전에 이미 신분이 공개된 상태라고 할 수가 있고, 오히려 사발통문에 기록된 전봉준 장군 외 19인의 명단이야말로 공개해서는 안 될 고도의 비밀사항이었을 것이다.
2) 적발이 되면 주모자만 처벌을 받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사발통문으로 인하여 만일 발각되어 체포가 되면 주모자만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 20인 전부가 똑같은 중형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주모자의 신분을 굳이 감추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3) 일부에서 제기한 진위논란은 사발통문의 가치만 훼손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다.
현존하는 유일(唯一)의 사발통문에 대하여 근거 없는 이유 등으로 진위의 논란을 제기하는 학계 일부의 행위는 사발통문의 역사적 가치만 훼손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므로, 앞으로 공인된 진품을 제시하지 않는 한 반드시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사발통문의 진실
1) 작성의 배경
1892년 대왕대비 조씨의 인척인 조병갑 전라도 고부군수의 혹독한 탄압에 대한 대응조치로서 동년 11월에 당시 고부의 동학접주였던 전봉준 장군 등의 동지들 20인(전봉준, 송두호, 정종혁, 송대화, 김도심, 송주옥, 송주성, 황흥모, 최흥열, 이봉근, 황찬오, 김응칠, 황채오, 이문형, 송국섭, 이성하, 손여옥, 최경선, 임노홍, 송인호)이 모여서 봉기의 당위성을 밝히는 격문과 함께 결의사항을 작성하여 각 리, 집강 등에 배포한 것이 현존하는 유일의 사발통문이다.
2) 사발통문은 평등사상을 실현한 역사적 유물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추구하려던 세상은 ⌜사람이 하늘같이 대우받는 만인평등의 세상(인내천 사인여천)⌟이었으므로, 이 사발통문은 평등사상에 근거하여 모든 참여자의 성명을 무순의 사발모양으로 기록을 한 문서로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도화선이 된 소중한 역사유물이다.
결어
동학농민혁명은 일본군의 무자비한 개입 등으로 인하여 비록 미완의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고 할 수는 있지만, 이 혁명의 조직과 사상의 불씨는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국내는 물론 국외로 까지 전승이 됨으로써, 항일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 등의 중심세력으로 성장을 하여 조국의 광복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되었다.
따라서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도화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발통문은 우리민족의 중요한 민주적 역사유물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반드시 진실을 회복하고 올바르게 보존을 해야 할 것이다.
첫째, 현재 사발통문과 관련된 모든 역사문헌은 ⌜동학의 사발통문은 평등사상에 근거하여 모든 참여자의 성명을 평등하게 사발모양의 원형으로 기록한 결의문서로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도화선이 된 소중한 역사유물이다.」라고 반드시 정정을 해야 한다.
둘째, 현존하는 유일의 사발통문에 대한 근거 없는 진위논란은 동학농민혁명과 사발통문의 역사적 가치만 훼손하는 무책임한 행위이므로 반드시 자제되어야 한다.
앞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하여는 지금보다 더욱더 강력하게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지만, 우선적으로 일제와 친일세력들이 저질러 놓은 우리의 식민사관적 역사부터 우리 스스로 바로잡는 특별한 조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