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부터 독립자금 모금운동까지
참여자 김두민의 증손 김생원

 
문) 김생원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 안녕하십니까? 저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이신 김두민 증조부님의 증손 김생원입니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장흥 토박이입니다. 저 역시 장흥에서 나고 자랐으며, 회진면 체육회장, 장흥 로터리클럽 회장, 장흥군의회 의원 등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문) 증조부님께서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셔서 어떤 활동을 하셨습니까?
답) 저희 김두민 증조부께서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군으로서 보은집회와 황토현 전투, 장흥 석대들 전투 등 동학농민혁명의 전반에 참여하셨습니다. 특히 장흥 석대들 전투 당시 일본군 신식무기의 화력에 밀려 패하고 해안가로 후퇴한 동학농민혁명군들을 덕도라는 섬으로 피신시키셨습니다. 이 덕도는 밀물 때는 육지에서 접근할 수 없으나, 썰물 때가 되면 수면아래 감춰져 있던 돌다리가 드러나 이를 통해 섬으로 건너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었습니다. 일본군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덕도는 어떤 곳보다도 가장 안전한 피신처가 될 수 있었고, 일본군에 포로로 잡히거나 죽임을 당할 뻔 했던 수많은 농민군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같은 마을의 윤성도라는 분은 풍선배를 띄워 죽도선착장을 통해 동학농민혁명군을 금당섬으로 피신 시키셨습니다. 이 덕도와 금당섬의 주민들 또한 동학농민혁명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피신한 동학농민혁명군 중 추가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동학농민혁명군에 협조했던 주민들 또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으니 이곳을 동학농민혁명의 고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문) 증조부님께서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기부하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답) 네, 당시 명덕면장을 지내시던 증조부께서는 독립자금 모금운동에 참여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재산에 여유가 있어 모금운동에 참여하신 것이 아니라 피와 같은 논 답 여섯 마지기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셨다고 합니다. 면장의 솔선수범에 감화되었던 것인지 명덕면의 주민 약 400여분도 함께 모금운동에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풍족한 편도 아니었던 이 고장의 주민들은 금반지 은반지를 처분하고 한 줌, 두 줌 씩 쌀을 모으고 한 속, 두 속 모아둔 김을 내다팔아 마련한 돈을 기부하셨습니다. 언제나 그 분들의 구국정신을 생각하면 절로 머리가 숙여집니다.
이러한 선조 분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제가 장흥군의회 의원으로 재직하였던 2006년에 장흥군에서 예산을 받아 신상리에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을 세우고 모금운동에 참여하셨던 120분의 성함을 새겨 넣었습니다. 지난 2007년에는 이 탑 앞에 모금운동 참여자 후손들이 기념비를 세웠는데, 비문을 이곳 마을 출신인 한승원 작가님께서 써주셨습니다.
증조부께서는 모금운동에 참여한 감사의 표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금상을 수여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작은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다 저에게 물려주셨는데, 최근 사촌형님께서 보관하시겠다는 요청을 하셔서 전해드린 상태입니다.

운동 참여자 후손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문) 증조부님의 참여사실에 대해 어느 분께서 전해주셨을까요?
답) 저희 작은아버지께서 전해주셨습니다. 지금은 타계하신 작은아버지께서는 증조부님께서 동학농민혁명과 독립자금 모금운동에 참여하신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누군가가 작은아버지께 증조부님의 활동사항에 대해 알려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자료를 찾아내시고 연구하셔서 증조부님의 활동사항에 대해 세세하게 밝혀내셨습니다. 심지어는 돌아가시기 바로 전 까지도 자료를 찾아다니실 정도였습니다. 저도 작은아버지께서 증조부님의 활동사항을 연구하여 밝혀내시는 것을 보고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했고, 독립자금헌성기념탑 건립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문) 참여자 유족신청을 어떤 계기로 하게 되셨을까요?
답)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조사가 진행되던 당시, 제가 참여하고 있는 장흥동학농민혁명유족회에서 참여자 유족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신청사항을 확인해볼 결과 작은아버지께서 조사하셨던 정보가 참여자 유족으로 신청하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으로 신청하게 된 것입니다.
문) 내년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알고 계실까요?
답) 네, 해당 기념관은 장흥지역의 동학농민혁명사, 관련유물, 장흥지역 전투를 지휘했던 지도자들에 대한 소개 등이 전시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저희 증조부님께서 활동하신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우리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을 소개하고 그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한 기념관이 설립되는 것에 매우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문) 증조부님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답) 저는 증조부님께서 지역과 나라에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셨던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던 분들 중 다수가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어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독립운동이 활발히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라를 위해 한 번 일어섰던 경험은 두 번, 세 번 포기하지 않고 구국활동을 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집안의 장남인데, 모임이 있을 때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증조부님의 활동사항에 대해 얘기해주곤 합니다. 훗날 손주들이 장성하면 역시 증조부님에 대해 전해주려 합니다. 그만큼 가문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기념재단에 바라시는 점이 있으실까요?
답) 기념재단에서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하기 위해 활동하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후손들에 대해서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기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후손들을 위해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고인이신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으로써 후손들이 선조들의 참여사실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추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에 대해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것도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