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모티브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

이광재 소설가
문) 작가님께서 전봉준 장군의 평전 『봉준이, 온다』에 이어 이번에는 동학농민혁명을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를 집필하여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연유가 있는지요?
답) 청년시절에 소설을 쓰다가 생계문제 등으로 한동안 펜을 놓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고민 끝에 글을 다시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수순으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글이란 단순하게 아름다움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꿈과 인간이 어디까지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대중들에게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주고 이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세계가 고장이 나 있다고 생각했기에 어디서부터 고장이 났고, 이것이 수리가 가능한 고장인지,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금의 세계, 즉 근대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가에 대해 공부하고 대중들과 호흡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자신의 탄생과 유년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 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한반도가 서구와 서구의 변종인 일본, 청나라의 사이에 끼어있는 상태에서 근대로 나아가기 위한 용틀임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근대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곳에 동학농민혁명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동학농민혁명을 공부하면서 소설을 쓸 생각이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소설보다도 그 실제를 먼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평전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쓰게 된 평전이 『봉준이, 온다』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번에 소설 『나라 없는 나라』를 쓰게 됐습니다. 애초에 평전, 소설, 영화로 이어가는 3부작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지금은 『나라 없는 나라』의 영화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전봉준 장군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평전『봉준이, 온다』를 집필 후 작가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근대 초기의 주요세력 중 새로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개화파와 동학농민혁명군 두 집단이었습니다. 개화파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프로그램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할 세력기반이 없어 외세의 힘을 빌리고자 했습니다. 다른 세력인 동학농민혁명군은 근대에 대한 이념을 개념화 된 형태로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근대를 부수려했던 것을 보면, 그 대안인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프로그램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직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군은 그 시대에 대한 가장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었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제대로 갖춘 집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자가 바로 전봉준 장군입니다. 전봉준 장군은 당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개남 장군의 비타협적인 반봉건투쟁이 물론 시원한 측면은 있습니다만, 시대상황 상 결코 옳은 전술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봉준 장군은 1차 봉기 이후 다시 싸움이 벌어지면 외세와의 싸움이 될 것이란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양반, 유림들과 함께 이에 대적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반봉건 투쟁을 자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봉준 장군은 동학의 직책상 접주였습니다. 위계상 동학농민혁명군의 총대장을 맡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님에도 이를 지휘한 것은 전봉준 장군이 그 시대에 가장 준비가 잘 된 사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들도 모두 전봉준 장군을 중심으로 엮여 있었습니다.
문) 『나라 없는 나라』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나요?
답) 독자 분들이 근대초기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바라봐줬으면 했습니다. 『나라 없는 나라』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대목이 대원군에 대한 부분입니다. 국사에서는 대원군을 쇄국정치를 시행한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데, 우리를 침략하는 외국에 맞서 싸운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토지세와 군포를 양반에게 부과하고, 수탈기구인 서원을 철폐하는 등 백성을 위해 활동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근대라는 이름의 폭압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쓸어버리고 자신의 것을 세우는 아량 없는 근대의 행태, 왜곡되고 고장 난 근대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용인하고 방치한 채로 주저앉아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안전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모순된 것입니다. 오히려 조금 위험하게 살아보는 것이 지금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 앞으로의 집필계획은 어떠신지요?
답) 동학농민혁명을 모티브로 집필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다음시대로 가야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만주로 가서 취재를 해볼 생각입니다. 만주는 일제치하의 독립운동부터 청산리전투, 자유시사변, 아나키스트들의 테러활동, 만주사변, 간도참변 등 우리의 식민지 시대가 집약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할 얘기는 얼마든지 있으니 아마 평생 쓰게 될 것 같습니다.(웃음)
문) 동학농민혁명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지요?
답) 구한말에 우리 농민들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자 나섰던 것은 서구의 시민혁명과 똑같은 것입니다. 다만 서구는 성공했고 우리는 좌절했던 것인데, 서구의 시민혁명은 외국에서 훼방 놓은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시민혁명인 동학농민혁명은 전근대의 세력을 일소하는 싸움에서 외세와의 싸움으로 전환되면서 훨씬 복잡한 과제를 안게 된 것이죠. 이때가 바로 일본이 제국주의로서 자신의 마각을 드러낸 시기였고, 동학농민혁명군은 그런 제국주의 세력을 저지하는 1차 저지선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돌파 당하자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조선의 식민지화, 만주사변, 진주만폭격, 호주폭격으로 점점 확대되어 전 세계가 대 참사를 겪게 된 것입니다.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시야를 넓혀 세계적인 시선에서 볼 때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더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