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의 출정식 백산대회
연구조사부장 이병규

백산성
‘백산대회’의 의미
무장에서 출발한 동학농민군이 백산에 와서 농민의 군대를 조직하고 출정식을 하였다. 우리는 이 사건을 여러 가지로 불러왔다. ‘백산기포’, ‘백산봉기’, ‘백산결진’, ‘백산집결’, ‘백산대회’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이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백산대회’로 통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무장기포는 포고문을 발표함으로서 일종의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 지금의 상황과 견주어 생각해보면 일종의 기자회견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백산대회’는 출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농민들’이 변화하여 ‘농민군대’가 되고 이와 함께 군대로서 조직과 체계를 구성하고 이를 전체 농민군이 모인 상태에서 출정을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백산에서 농민들의 활동을 ‘백산대회’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백산대회를 통해 농민군의 확대개편과 대진군을 위한 전열체계가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백산대회의 전개
무장을 출발한 전봉준, 손화중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고부군을 점령하고 백산으로 이동하여 진을 쳤다. 이때 무장에서 출발한 농민군은 3,000∼4,000명 정도였다. 이동과정에서 전봉준, 손화중은 정읍현 인근지역으로 농민군을 보내 무장기포의 사실을 전달하고 봉기에 동참하라고 촉구하였다. 즉 무장현을 출발하여 고부군으로 향해 가던 전봉준, 손화중은 봉기한 사실과 부대의 일정을 태인현의 김개남 등 주요 농민군 지도자에게도 전달했고, 이에 김개남도 휘하의 세력을 이끌고 태인현을 출발하여 백산에 합류하였다.
김개남이 합류함으로써 마침내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휘하의 농민군이 집결, 연합농민군이 완성되었다. 이 백산대회에는 고창, 무장, 흥덕, 정읍, 태인, 금구, 김제 등지에서 온 8,000여명의 농민군이 참여하였다. 즉 호남우도 지역의 농민군이 총봉기한 양상을 보였으며, 이들이 3월 봉기 기간 내내 동학농민군의 주력을 이루었다.
이 연합농민군은 3월 25일 백산에서 동학농민군의 지휘체계와 조직을 구성하고 격문과 4대명의 그리고 12개조 기율을 발표함으로써 진정한 농민의 군대로서 완성되었다.
□ 동학농민군 지휘체계
총대장 전봉준
총관령 김개남 손화중
총참모 김덕명 오시영
영솔장 최경선
비서 송희옥 정백현
□ 격문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른 것은 그 본 뜻이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가운데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다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에게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 굴욕을 받는 소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을 것이니,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 4대 명의
첫째,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마라.
둘째,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하라.
셋째,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는다.
넷째,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권귀를 모두 없앤다.
□ 12개조 기율
1. 항복하는 자는 대접한다.
2.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3. 탐학한 자는 추방한다.
4. 순종하는 자에게는 경복한다.
5. 도주하는 자는 쫓지 않는다.
6. 굶주린 자는 먹인다.
7.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그치게 한다.
8. 빈한한 자는 진휼한다.
9.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10. 거역하는 자는 효유한다.
11. 병든 자에게는 약을 준다.
12. 불효자는 죽인다.
백산성터와 남겨진 문제
백산은 비록 47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부안, 김제, 고부, 태인, 고창 등지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고부들판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서 농민군이 집결하기에 매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1894년 당시에는 고부군에 속하였던 백산성은 현재 행정구역상 부안군(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는 백제토성이 있던 곳으로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백산성의 정상 부근에는 1988년 동학혁명백산기념사업회에 의하여 건립이 추진되어 1989년 준공된 ‘동학혁명백산창의비’가 세워져 있다. 한편 백산대회와 관련하여 오지영의 『동학사』 이외의 자료에서 거의 기록된 내용이 없으므로 이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참고문헌
김은정·문경민·김원용, 『동학농민혁명 100년』, 나남출판, 1995
신순철·이진영, 『실록 동학농민혁명사』, 서경문화사, 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