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역사를 위한 소설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전봉준 장군을 생각하며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은 녹두 혹은 녹두꽃일 것이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120주년이 되는 2014년의 초입, 조심스레 동학농민혁명의 기억을 두드린 역사소설의 제목은 동백이다. 본문에서는 전봉준 장군이 동백을 바라보는 장면을 ‘겨울에 피는 동백이 핏빛이라면 봄에 피는 춘백은 연분홍빛이다. 핏빛 동백이 처절하다면 연분홍은 애잔하다. 전봉준은 핏빛 동백이 좋다.’라 표현하고 있고, 또한 전봉준 장군이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핏빛 동백이 졌다.’라 언급한다. 작가는 동학농민혁명 역사소설의 제목을 어째서 동백이라 하였을까?
어째서 동백인가?
본문에 언급된 대로 동백은 겨울에 피는 꽃이다. 여타 식물들이 봄을 기다리며 하나같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동백은 여봐라는 듯 자신의 붉은 빛을 펼쳐낸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기에 동백은 붉은 빛은 더욱 화사하여 홀로 봄을 맞이한 듯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조선은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안으로는 농민층의 양극화, 삼정의 모순과 문란, 봉건제도의 부정부패로 나라가 썩고 곪아 들어가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일본, 중국 등 열강의 위협과 경제적 침탈로 인해 휘청대고 있었다. 모두가 세상의 어지러움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이익과 일신의 안위를 위해 눈을 감고 있을 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을 세상에 포고하고 일어섰던 동학농민혁명은 설원에 독야청청(獨也靑靑), 아니 독야홍홍(獨也紅紅) 피어난 동백과도 같았다.
또한 동백은 남쪽지역에서 서식하며, 향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빛만으로 새들을 불러 모으는 조매화(鳥媒花)이다. 전봉준 장군은 여러 포고문, 격문에서 동학농민군에게 참여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지 않았다. 그저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참여를 독려하였으며, 이러한 붉은 의지는 수만, 수십만의 농민군이 모여들어 관군과 경군을 격파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남쪽 전주성의 점령은 성공하였으나 북진을 위한 분수령인 우금티를 끝내 넘지 못했던 그들의 모습 또한 동백과 겹쳐 보인다. 끝내 동학농민혁명은, 그리고 전봉준 장군은 송이 째로 지는 동백과 같이 그 정신과 기상을 오롯이 간직한 채 떨어져 내렸다.
역사를 위한 소설
작가 전진우 씨는 후기를 통해 “지나치게 극화한 역사는 오히려 바른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 역사가 ‘어제와 오늘의 대화’(E.H.카)를 통해 내일을 읽는 것이라면 바른 역사읽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하여 나는 역사를 쓰고 싶었다. 소설적 구성은 사실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에만 머물게 하고 싶었다.”라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소설 『동백』은 역사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을 여러 연구가들의 논문과 평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제공한 사료를 기반으로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럼에도 역사서나 보고서적인 이미지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역사적 사실 위를 활보하는 인물들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김개남,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등 동학농민군 지도자 들이나 고종, 민영환, 김학진 등 조정의 인물들, 원세개, 무츠 미네미츠, 이노우에 가오루 등 열강을 대표하는 인물들, 일본의 꼭두각시로 복권하게 된 대원군 등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작가가 부여한 개성을 통해 입체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또한 막치와 분이 등 창조된 인물들의 활약 또한 이들에 뒤지지 않는다.
작가는 이들의 교차되는 시선을 통해 동학농민혁명 전체를 꿰뚫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학농민혁명은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한층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핏빛 동백이 지다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나 어디 남아 있겠나’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시대에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떨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과 같이 소설 『동백』은 전봉준 장군의 죽음으로 그 끝을 맺는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피를 뿌려주는 것이 옳거늘 어찌 컴컴한 적굴에서 암연히 죽이느냐?’는 마지막 말을 남긴 전봉준 장군은 소설 속 자신이 좋아하던 핏빛 동백처럼 졌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처절하지 않다. 결연하고 의연하다.
작가는 소설의 끝 문장을 통해 우리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가 종로 네거리에 뿌리고 싶어 했던 그의 피는 곧 그의 말이려니, 그 말은 여직 우리 귀에 생생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