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앞두고 현재의 ‘한일관계’를 보며
하우봉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주지하다시피 1차 봉기와 2차 봉기로 나누어진다. 전자가 봉건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던 반봉건혁명이었다면 후자는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기치로 내세운 반제국주의 투쟁이었다. 필자는 동학농민혁명이 2차 봉기에서 보인 반제국주의투쟁이 있었기에 역사적 의의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2차 봉기는 거족적인 민족운동이었기에, 1차 봉기에서 나누어졌던 남접과 북접 간의 갈등도 용광로 속에 녹아들었으며, 거대한 혁명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2차 봉기는 제국주의적 침략세력에 대한 배척을 표방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직접적인 침략세력이었던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이 중심이었다.
내년이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0주년이 된다. 농민군들이 부르짖었던 ‘극일(克日)’은 오늘날 어떤 상황에 있을까? 최근의 한일관계를 보면서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의 일본은 수준 이하의 언설과 행동들이 횡행하는 상황에 있다. 올해 들어 아베 신조 총리의 침략전쟁 부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종군위안부 발언이 이어지더니, 최근에는 아소 타로 부총리와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도 망언릴레이에 가세하였다. 이들 일본 정치인들의 언동을 보면 너무 실망스럽다. 고위급 정치인의 역사인식이 이 정도로 천박할 수 있는지 놀랍기까지 하다. 그들의 발언 가운데 세계문명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부합되는 내용이 어디 한 줄이라도 있는가? 또 그들의 인식 속에는 한국인에 대한 전통적 멸시관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일본의 국력과 국가적 품격의 하락세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본은 오랫동안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왔으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아시아의 이웃나라들로부터 경원시 당하였으며, 존경은커녕 친구로서의 진정성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2차 세계대전 후 전후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천황제라는 일본 특유의 제도와 맞물려 있어 간단히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신생 일본’의 출발에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속죄로부터 출발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태평양전쟁의 패배 후 일본은 미국에게 항복의 뜻을 표하면서도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패전 직후 미국에 의한 타율적 개혁, 냉전체제로의 돌입이라는 상황이 일본의 주체적인 역사인식과 자기성찰을 불분명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실상을 말한다면 일본은 미국의 논리에 편리하게 순응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도망쳤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본래 탈아론적 아시아관과 대동아공영권론 같은 사고방식에서는 아시아에 대해 사죄한다는 발상이 나올 수 없다. 심지어 한국에 대해서는 패전의식도 없었다.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 져 한반도를 ‘상실’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 문제가 빠지게 된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전후 일본의 보수파들은 꾸준히 ‘패전’과 침략전쟁 자체를 부인하여 왔다. 최근 일본 국회에서 행해진 아베 수상의 침략을 부인하는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전후세대들에게는 식민지지배와 같은 과거사는 자신과 상관없는 문제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들에게서는 ‘전전(戰前) 세대’들이 지녔던 일말의 원죄의식마저 거의 사라졌다. 이는 전후 일본 역사교육의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은 침략전쟁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신세대에게 역사교육을 바르게 시키고, 가해자의식의 원점에서 새출발 해야만 아시아와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은 뿌리 깊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과성 현상만은 아니다. 갈등의 바닥에는 상호인식의 틈이 있고, 역사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있다. 그러나 양국은 그야말로 숙명적 관계이며, 공동이익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며, 현재의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시대의 21세기에 한일 양국은 평등한 선린관계를 유지하면서 우호적인 상호이해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구조의 형성을 위해서는 한일 양국민의 새로운 인식과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입장에서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깨끗한 청산과 확고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아시아 속의 일본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도, 일본인의 인간으로서의 해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시아인들끼리의 진정한 화해와 성숙한 만남을 위해서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죄할수록 관계가 더 나빠지고, 잘못을 인정하면 호국영령을 모독하게 된다는 발상은 너무나 소아적인 인식이다. 엄연히 존재하였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오는 멍에를 언제까지 지고 갈 것인가? 명확한 인정과 반성 위에 상대방의 이해를 얻어내는 것이 훨씬 떳떳하고 성숙한 태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근대혁명이 아닌 농민혁명으로부터 출발한 아시아적 모델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서구적 가치와 아시아의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보다 치밀하게 탐구하고 분석하는 것은 동학농민혁명을 새로운 의미에서 바라보는 일이 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두 갑자는 더 큰 이벤트가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필자약력
전북대학교 인문대학장|박물관장|국사편찬위원회 위원|한일관계사학회|한국일본사상사학회|전북사학회 회장 역임|조선시대 한일관계사 전공|70여 권의 저역서와 100여 편의 연구논문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