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봄꿈
다음 세상을 꿈꾼 민중의 지도자 전봉준 그의 마지막 119일, 그 고난의 기록

동학농민혁명에 대하여 다룬 소설은 적은 편이 아니다. 『겨울잠, 봄꿈』의 한승원 작가도 이미 1994년에 출간된 『동학제』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하여 다룬 경험이 있다. 『겨울잠, 봄꿈』은 전봉준 장군의 시선에서 당시의 현실을 바라보며 그의 고뇌와 갈등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점은 피노리마을 김경천의 집에서 체포되어 한양까지 압송되는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모습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군을 호령하며 황토현에서, 황룡전투에서 파죽지세로 관군을 물리치던 장군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두 손을 결박당하고 입에는 재갈을 물고 두 다리는 몽둥이에 맞아 산산히 조각난 패장의 모습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피노리에서 피체당하다
전봉준 장군은 몇 명의 수하만을 데리고 피노리로 향하고 있다. 기개 높은 장군의 모습은 소설의 초입부터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농민군들은 일본의 신식무기에 허수아비처럼 쓰려져 나갔고 그는 패장이 되었다. 김경천에게 가자는 전봉준 장군의 말을 듣고 따르던 수하 중 하나인 양해일은 예수와 유다를 떠올린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성자가 된 예수와 만고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다. 그는 전봉준 장군이 예수가 되기를 바란다. 전봉준 장군도 마찬가지로 담담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총탄이 날아드는 전장에서 서로 목숨을 의지하며 전진하던 어제의 농민군들은 상금과 관직에 눈이 멀어 그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그를 사형시키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가마의 발이 된다.
서울로 압송당하다
가마는 서울로 향한다. 종로 네거리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자신의 피를 뿌리며 죽는 것이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바램이다. 그러나 그마저 그가 원치 않는 희생을 강요한다. 민초들에게 강탈해 온 것이 분명한 음식을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한다. 가마꾼들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되면 일본군에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한다. 그가 머물렀던 장소에도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동학농민군의 잔당들이 전봉준 장군을 구하기 위해 습격할 것을 두려워 한 일본군들이 지나는 길마다 사람의 흔적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길이 또 다른 희생을 야기하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는 더욱 괴로워한다.
이토의 유혹에 시험당하다
이토 겐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 히로부미의 양아들이 된 인물이다. 그는 여정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전봉준 장군을 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일본의 유력자 중 장군을 살려주겠다는 자가 있다. 나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과 영국에 유학을 다녀올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조선을 개화하는데 힘이 되어달라.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같이 그는 끊임없이 전봉준 장군의 곁을 맴돈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에 영혼을 맡긴 파우스트와 달리 전봉준 장군은 ‘겉보리 닷되’하며 우는 새의 일화를 들려주며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잡는다. 살아서 악당이 되기보다 죽어서 영웅이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서울에서 재판 받고 사형당하다
천신만고 끝에 서울로 도착해 영사관에서 취조를 받으면서도 전봉준 장군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다.
‘나는 조선의 백성으로서 조선의 당연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조선의 법에 따라 죽을 일을 저질렀으므로 죽는 것이 당연하다. 후회하지 않는다.’
법무아문에서 재판을 거친 후 그의 육신은 죽어 땅에 뿌려진다. 죽음으로서 그의 대업은 비로소 완성된다.
혹자는 전봉준 장군의 피체와 압송당시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기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은 접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 중간 장군의 회상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전체적인 내용을 개략적으로 설명하고 있기에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본 소설에서 전봉준 장군은 참형을 당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교수형이 언도되었다. 그는 교수형을 받으며 ‘너희는 나를 죽일진대 밝은 종로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 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옳은 일이거늘 어찌 나를 캄캄한 적굴 속에서 죽이느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작가는 그의 마지막 바람을 소설에서나마 이루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소설은 1894년의 겨울, 패주한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밤을 도와 잠행하다가 민보군에게 붙잡혀 한양으로 끌려가는 천리 길의 기나긴 참담한 여정을 서술한 것이다. 그 여정에서 전봉준이 만난 개 같은 세상을 보면서 나는 진저리치며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