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대들의 정신을 후대까지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종찬

우금치에서 통한의 패배 이후, 주력농민군은 논산 황화대, 금구 원평, 정읍 태인으로 계속하여 몰려갔고 거듭되는 패배로 결국 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티끌 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장흥의 농민군들은 석대들에서 전투를 준비하였고 이것이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전투가 되었다. 장태장군, 남도장군, 관산대장군이라 불린 이방언 장군이 농민군을 이끌었던 장흥의 석대들은 현재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내년 6월에는 기념관이 완공될 예정이다. 이처럼 활발히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고 있는 장흥에서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종찬 이사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이 꿈꾸던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그들의 정신을 되짚어 보았다.
문)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어떻게 설립되었습니까?
답) 장흥지역은 동학농민혁명 최후의 격전인 석대들 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1992년에 장흥동학혁명기념탑이 건립되었고, 그와 동시에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기념탑을 건립 후 12년 동안 준공식을 가지지 못했는데, 농민군에 희생당한 관군을 모신 영회당 측에서 반발하였기 때문입니다. 12년이 지난 2004년에야 준공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문) 이번에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사단법인으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습니까?
답) 장흥의 석대들 전적지가 늦게나마 공원화사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서 우리 기념사업회도 사단법인으로 발족해야겠다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전라남도 도지사의 인가를 받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금이 필요하였고, 이를 충당하기 위하여 모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발기위원들이 서로 뜻을 모았고 유족회와 일반인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모금에 참여해주신 78분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 사단법인으로 승인되시면서 남다른 각오가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답) 기념공원이 내년 6월까지 완공될 예정입니다. 그에 맞춰 장흥에서 끝까지 항쟁했던 동학농민군을 잊지 않고, 그 정신을 후대까지 선양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추모공간을 올바른 역사의 배움터로 활성화시킴은 물론, 우리가 추모하는 넋들이 해원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할 것입니다.
문)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는 현재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계십니까?
답) 금년에는 재단에서 정신선양사업 보조금을 지원해 주어 ‘장흥동학농민혁명과 지도자들’이라는 책자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이야기 장흥동학농민혁명사’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각 1천부씩 2천부를 발행하여 각 학급⋅학교와 교사 분들, 그리고 군민여러분들과 도서관 등에 배포할 예정입니다. ‘이야기 장흥동학농민혁명사’가 발행되면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을 각 학급별 특별강사로 파견하여 책자를 바탕으로 직접 학생들을 교육할 예정입니다. 기존에 제작해둔 장흥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영상자료 등 교육용 자료를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잘 활용하여 유익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교사 분들도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아 충분한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 장흥에서는 동학농민혁명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답) 그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며칠은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장흥의 농민군들은 장태장군, 남도장군, 관산대장군으로 불린 이방언 장군과 접주들이 중심이 되어 백산봉기, 장성황룡전투에 참여하였습니다. 특히 장성황룡전투에서 장태를 개발하여 농민군이 대승할 수 있었던 기틀을 마련하였고 이어서 전주성에 입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2차 봉기 때는 주력농민군의 해산 이후에도 관군과 일본군을 맞아 석대들에서 최후의 격전을 벌인 곳으로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의지의 고장입니다.
문) 장흥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소개해주십시오.
답) 현재 기념공원이 조성중인 석대들 전적지를 첫 번째로 꼽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흥동학혁명기념탑이 있으며, 현재 공설운동장이 들어선 곳은 예전에는 무명동학농민군들의 묘가 있던 곳으로, 현재는 모두 이장되어 있습니다. 또 교도소 부근에 벽사역이 있는데, 이 벽사역은 이용태 장흥부사를 안핵사로 고부에 파견했던 곳입니다. 이용태가 농민군들을 탄압하여 1차 봉기의 원인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장흥이 1차 봉기의 원인이 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웃음)
문) 이사장님과 동학농민혁명은 어떤 인연이 있습니까?
답) 장흥을 이끄셨던 이방언 장군이 제 증조부 되십니다. 그분의 후손으로서 60년대부터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을 가지고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찾아다녔고, 지금은 작고하신 최현식 선생님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유족 분들도 많이 찾아뵈었는데 유족이면서도 뭔가 불이익이 있을까봐 부정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특별법이 제정되고 난 이후에는 그런 부분이 많이 사라져 다행입니다.
문) 석대들 전적지 성역화와 더불어 기념관 건립이 진행 중입니다. 이곳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이며 무슨 자료가 전시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답) 자세한 전시물품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 꼭 전시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집을 수리하던 도중 발견한 화승총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주역사박물관장을 지내셨던 역사학자 故오윤 선생이 그걸 보시고는 장흥에 기념관이 설립되기 전까지 전주박물관에 전시하겠다며 차용증을 쓰고 대여해 가셨습니다. 이제 기념관이 세워지면 이를 다시 찾아와 전시하고 싶습니다. 기념관의 형태는 현재는 사라진 작은 석대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외장을 흙으로 쌓고 관람객이 올라가 전망을 볼 수 있는 전망대 형태가 될 예정입니다. 그 내부가 기념관이 되는 것이지요. 읍내에서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많은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장흥기념공원 조감도
문) 기념재단에 바라는 것이 있으십니까?
답) 제가 꼭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제정에 관한 것입니다. 내년이면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기념일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올해 안으로 기념일이 제정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재단과 기념사업회의 상호협조가 지금보다 더 원활히 이루어져 상생의 관계를 이루었으면 합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서로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면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