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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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열기
2013년 여름 12호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자치기구 집강소를 찾아서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자치기구 집강소를 찾아서



▶ 전라감영 선화당


  집강소는 동학농민혁명사에 있어 여러 측면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에 틀림없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이를 소개하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집강소의 전반적인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동학농민군의 집강소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집강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활동상과 각자의 역할, 그리고 이들이 집강소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등으로 크게 구분하였고, 그에 따른 전시물을 준비하였다.



  전시를 기획하며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기획한 2013년도 상반기 전시의 주제는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자치기구, 집강소執綱所를 가다’이다. 집강소는 동학농민군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였던 자치기구로 시기적으로는 반봉건을 외치며 일어난 1차 동학농민혁명과 조선을 침입한 외세에 대항하고자 일어난 2차 동학농민혁명 사이에 존재했다.


  이러한 집강소는 동학농민혁명사에 있어 여러 측면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에 틀림없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 이를 소개하기 위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따라서 집강소의 전반적인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동학농민군의 집강소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집강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활동상과 각자의 역할, 그리고 이들이 집강소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는지 등으로 크게 구분하였고, 그에 따른 전시물을 준비하였다.



▶ 기획전시실 전경



  전시 소개


  이번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Part.Ⅰ 먼저 첫 번째 파트는 ‘1894년 7월 6일, 2차 전주화약으로 관官과 민民이 화합을 약속하다’로, 이 부분에서는 조선 역사상 최초로 관과 민이 화약을 이루고, 그에 대한 결과물로서 집강소 설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조명하였다.

  1894년 7월 6일, 조선정부를 대표한 전라감사 김학진과 동학농민군을 대표한 전봉준은 전라감영에 함께 자리하였다. 두 사람은 당시 매우 혼란스러웠던 조선의 정세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끝에 동학농민군의 집강소 설치 허가를 골자로 한 전주화약을 이끌어 내었다고 한다. 원래 집강소는 조선 향촌사회의 안정을 위해 지역 양반층을 중심으로 운영하던 기구였으나, 이 시기에는 본래의 기능과 운영주체가 동학농민군에게 옮겨가게 된 것인데, 반상班常이 엄격하던 당시를 떠올리면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Part.Ⅱ 한편 전라도 53개 군현을 중심으로 집강소를 설치한 동학농민군은 각자의 역할을 분배하고 그에 따른 업무를 수행해 나간다. 두 번째 파트인 ‘조선역사상 최초, 민民이 주체가 된 집강소가 그 체계를 갖추다’에서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유물 가운데 유생 정석모가 기록한 ‘갑오약력甲午略歷’에는 “김학진과 전봉준의 전주화약 이후 집강소 설치 허가에 따라 각 읍의 공청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서기書記, 성찰省察, 집사執事, 동몽童蒙과 같은 임원을 두어 완연히 하나의 관청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나타나 각자의 직임職任에 따른 역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Part.Ⅲ 세 번째 파트는 ‘집강소의 활동상을 들여다 보다’라는 주제로 구성되었다. 전북 무주의 ‘적성지속지’에는 농민군 지도자 이형택이 “군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계급을 타파하며 올바로 도리를 따르는 자는 보호하고 도리를 어기는 자는 벌에 처한다.”라는 연설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황현의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전)봉준은 각 읍의 포에게 명령하여 읍마다 도소(집강소)를 설치하고 자기들 사람으로 집강을 세워 수령의 일을 수행하게 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그들의 집강소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여러 사료를 통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것은 원래 집강소의 역할이었던 향촌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일과 더불어 동학농민군을 사칭한 부랑배의 단속과 폐정개혁안을 단행하는 일이었다.


  Part.Ⅳ 네 번째 파트의 주제는 ‘집강소 시기, 전라도외 지역의 동학농민군을 만나다’로, 전라도의 53개 군현을 중심으로 집강소가 설치됨에 따라 농민군의 활동상이 두드러지는 시기에 전라도 외 지역의 동학농민군은 어떠한 활동을 주로 하였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전주화약 당시 전라감사 김학진은 집강소 설치를 허가하고 그들의 활동을 인정하되, 당분간 외세의 침략 등으로 매우 혼란한 조선의 정세를 살펴 큰 움직임은 자제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라도 지역의 동학농민군은 집강소의 주된 활동이었던 부랑배 단속과 폐정개혁안의 단행에 힘을 기울였던 반면 청일전쟁의 전장이 되어버린 충청지역을 비롯한 경상지역의 동학농민군은 밀어닥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마을에 보루를 쌓는 등의 반외세를 위한 움직임이 컸다고 한다. 전시된 유물 가운데 충청도 남양의 홍건洪健이 작성한 ‘홍양기사洪陽紀事’와 경상도 금산의 농민군 활동상이 기록되어 있는 ‘세장연록歲藏年錄’ 등의 전시물에서 그러한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Part.Ⅴ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파트는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폐정이 바로 잡힌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라는 주제로 구성되었다. 주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동학농민군은 자신들을 옥죄는 폐정이 바로잡힌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폐정개혁안을 내세운 바 있다.

  동학농민군의 요구사항을 담은 폐정개혁안은 당시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내려오는 문서의 종류 등에 따라 12개 조목부터 24개 조목까지 각기 나타나고 있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무명잡세의 폐지, 변질기관의 혁파, 외국상인의 불법 상행위 금지 등으로 일관되어 있음을 전시된 여러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집강소의 현대적 의미


  1894년 조선의 백성이 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내세우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가족과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용기는 익히 알려진 바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집강소의 설치 배경과 조직은 물론 집강소를 스스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소개하여 그들의 탁월한 주체성과 체계성을 조명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동학농민군의 집강소는 오늘날 민주정치의 효시, 지방자치의 원형 등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 같은 평가는 향후 동학농민혁명의 현대화, 세계화에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끝으로 오는 9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자치기구, 집강소執綱所를 가다’전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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