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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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이 국가 유공자로 등록되길 희망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이 국가 유공자로 등록되길 희망합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이문교님의 후손 이기엽


  지난 2012년 2월 13일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이 문자 교자 님의 후손인 이기엽 선생님을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기엽 선생님은 동학농민혁명 구전자료 영상증언록인 ‘다시피는 녹두꽃1’ 에도 출연하시는 등 동학농민혁명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는 분이셨다. 이기엽 선생님 사무실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추위도 잊은 채 열정적으로 행정사 업무를 하고 계셨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하시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 독자분들에게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해리 면사무소에서 2년 근무하고, 이어서 해리 수리조합에서 2년 근무하였습니다. 

  1967년 7월경에 행정사 자격증을 신청하여 지금까지 행정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문) ‘이 문자 교자’ 조부님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셨다고 하는데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답) 조부님이 돌아가실 당시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저희 아버지 모두 어렸기 때문에 조모님이 어머님에게 해 주신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조부님은 오리동면에 사셨는데, 동학에 입도하셔서 오리동면 접주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긴박한 상황이고, 조심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모님에게 자세한 말씀은 하시지 않으신 듯합니다. 그러나 조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조부님은 활발하게 활동하셔서 밤에 이슬을 맞고 집에 들어오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셨다가 며칠만에 집에 돌아오셔서 숨어 계셨는데 청도김씨와 경주김씨 두 성씨가 밀고를 해 붙잡혀 무장현에서 총살형 당하셨습니다.



문) 조모님이 어머님에게 해주신 이야기를 좀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답) 조부님이 무장 관원으로 잡혀가셨는데 전부 다 총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모님께서 조부님 시신을 찾기 위해 무장현에 찾아갔습니다.


  조모님이 말씀하시길 총에 제대로 맞지 않은 사람들이 기어나오자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1차로 총에 맞았고, 제대로 맞지 않은 사람들은 2차로 불을 붙여 확인사살을 한 것이죠. 아무튼 모든 시신이 불에 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는데, 저희 조모님께서는 매우 영리하신 분이셨습니다. 조부님이 무장에 잡혀가셨을 때 신은 버선을 보고 조부님 시신을 찾았습니다. 조모님 자신이 바느질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찾을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시신을 찾아가지고 모셔와 지금 왕촌리 조시산에 안장을 했습니다.



문) 동학농민혁명 참여 당시 생활 모습과 조부님이 돌아가신 이후 생활 모습이 궁금합니다.


답) 조부님은 왕거리라는 마을로 이사해서 살았는데 나름 부유한 집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왕거리에서 가장 좋은 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남에게 내줘서 그 송아지(A)가 자라 또다시 송아지(B)를 낳으면 소(A)를 다시 돌려받는 배내를 할 정도로 소 역시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부님이 돌아가시자 배내해서 돌려받을 소를 청도김씨와 경주김씨가 다 빼앗아 가고, 동네 사람이 조부님을 고발을 했기 때문에 살기 어려워 조모님은 지로마을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왕거리 마을에서 이사 오기 전에 소유했던 논을 지로마을 근처에 있는 논 열 마지기와 바꿔 농사지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문) 몸이 편찮으신 가운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답) 제가 생각하기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등 예전보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가 많이 회복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로 등재되어 조부님의 명예가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동학농민혁명이 유럽의 혁명보다 더 훌륭한 혁명이었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이 있지 않아 지금까지 국가유공자로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혼자 법안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단체를 만들어 법안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부의 혜택을 바라고 국가유공자를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조부님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을 바랄 뿐입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국회의원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신 분들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도록 조금 더 힘써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도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는데 빠른 시일 내에 정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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