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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본사회의 연구 붐과 그 의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본사회의 연구 붐과 그 의의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박맹수


  다가오는 2014년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20주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기념을 해야 조선 팔도 각지에서 소중한 목숨을 바쳐 싸우신 수십 만 동학농민군 영령들께 부끄럽지 않은 길이 될 수 있을까. 1980년 이래, 30년 넘게 동학사상 및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해 온 필자로서는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 연구는 1백 주년을 전후하여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었다. 동학의 시천주(侍天主)와 보국안민(輔國安民), 유무상자(有無相資) 사상 등이 동학농민혁명의 주된 이념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밝혀졌으며, 전라도뿐만 아니라 경상도와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등 조선 각지에서 수백만 민중이 봉기한 ‘전국적 차원’의 대봉기였다는 사실도 지역별 사례 연구 축적에 의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봉기한 동학농민군을 조선의 국내법과 당시의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불법적으로 ‘대량 학살’한 군대가 바로 일본군 후비보병(後備步兵) 제19대대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후비보병 제 19대대와 관련해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소좌가 압수했던 동학농민혁명 관련 문서 및 그의 동학농민군과의 전투 ‘경력서’ 등 원본이 118년 만에 오는 4월에 정읍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공개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한국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하여 새롭게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 이야기하자면, 먼저 나카츠카 아키라(中塚 明) 교수가 중심이 되어 매년 행하고 있는 ‘한국, 동학농민군 전적지를 찾아가는 여행’을 들 수 있겠다. 이 여행은 2001년 5월에 전북 전주시에서 개최된 ‘동학농민혁명 국제학술대회’를 계기로 촉발되어 2002년 여름에 최초로 시행되었다. 참가자들로부터 반응이 대단히 뜨거워 2006년부터는 도쿄(東京)의 후지국제여행사(富士國際旅行社) 해외여행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어 작년까지 6회나 실시되었고, 이 여행에 참가한 일본인이 12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 답사 여행은 올해(2012년)도 10월 중순 경에 실시될 예정이다.


  또한 칸사이(關西) 지역의 고베시(神戶市)에 있는 고베학생청년센타 내 ‘무쿠게 모임(한국 연구 모임)’ 소속의 노부나가 세이기(信長正義) 씨는 2010년 5월에 전라도의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를 비롯하여 공주 우금치 전적지를 직접 답사한 뒤에 일본어판「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찾아서」(2010년 9월, 초판)를 간행하여 일본 시민들에게 제공한 바 있다. 더욱 고무적인 현상은 일본의 유력 일간지인「아사히신문(朝日新聞)」이 ‘동아시아를 만든 열 가지 사건’이라는 기획특집(2007년 6월-2008년 3월) 속에서 일본의 일간지로서는 최초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심층적인 기사를 게재하였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동학농민혁명 붐은 학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도 이미 번역 소개된 나카츠카 교수의 역저「역사의 위조를 밝힌다」(한글판「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재일(在日)사학자 조경달(趙景達) 교수의「이단의 민중반란-동학과 갑오농민전쟁-」, 홋카이도대학 이노우에 카츠오(井上勝生) 교수의 일련의 연구(「제2차 동학농민전쟁과 탄압 일본군, 농민대학살」, 「동학농민군 포위섬멸작전과 일본정부, 대본영」, 「후비보병 제19대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 문서」 등), 근대일본의 민중운동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민중운동인 ‘치치부농민전쟁(秩父農民戰爭)’과 동학농민혁명을 비교 연구한 카와다 히로시(河田 宏) 씨의 「민란의 시대-秩父농민전쟁과 東學농민전쟁-」, 동학농민군 진압 전담부대였던 후비보병 제 19대대의 출정 및 귀향 과정을 추적한 오노우에 마모루(尾上守) 씨의「카이난신문(海南新聞)에서 보는 동학농민전쟁」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상의 연구를 더욱 빛나게 한 결정적 연구는 재일(在日) 연구자 김문자(金文子) 선생의「전봉준의 사진과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동학지도자를 촬영한 일본인 사진사-」일 것이다.


  일본 내에 남아 있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1차 사료도 속속 발견, 공개되고 있다. 1차 사료 가운데 주목되는 것 하나만 소개한다면, 외무성 산하 외교사료관(外交史料館)에 소장되어 있는「조선국 동학당 동정에 관한 보고일건」,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국 동학당 동정에 관한 보고일건」를 들 수 있다. 전자(前者)에는 동학의 남북접(南北接)이 제 1차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함께 싸웠다는 내용이 들어 있고, 후자(後者)에는 동학농민군에 대한 불법적인 ‘전원 살육’ 명령을 내린 주체는 조선 정부가 아니라, 일본의 대본영(大本營) 병참총감 카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본사회의 이해 및 평가는 시민운동, 학술 분야, 저널리즘 분야 등 다양한 차원에서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사상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그 기반을 제공했던 동학사상 및 동학조직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있다.(2009년 8월과11월의 ‘교토포럼’ 주제가 바로 한국의 동학사상과 동학조직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최근 일본사회에 불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붐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우리 선조들이 내걸었던 혁명 이념이 역사적으로 지극히 정당했음을 말해 주는 동시에, 그 혁명 이념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닌 것이었음을 증명해 준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120주년 기념사업은 바로 이 같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널리 드러내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박맹수 교수 약력

  전공_ 동학농민혁명, 한국근대 민중운동 및 민중사상사, 일본근대사

  학위_ 문학박사

  현재_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교수,  일본 교토대학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객원교수, 사단법인 한살림 모심과 살림연구소 이사장

  저서_ <개벽의 꿈- 동학농민혁명과 제국 일본>, <원불교학 워크북>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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