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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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나라 없는 시대, 문학으로 길을 묻다

나라 없는 시대, 문학으로 길을 묻다

동학농민혁명의 혼을 품은 소설가 이광재



  오랜 기간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온 이광재 작가. 그는 2025년 정읍시가 주관한 ‘동학농민혁명대상’을 수상하였다. 문학적 상상력과 사료에 근거한 역사소설로 문단은 물론 다양한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면에서는 그의 문학 세계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녹두꽃」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광재 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부담이 컸다. 한식 전문가를 집에 초대해 저녁상을 차리는 기분이었다. 자칫 정성껏 차린 음식이 맛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할까 염려스러웠다. 이런 두려움을 안고 작가 이광재를 만났고, 이제 그를 『녹두꽃』 독자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만난 작가 이광재는 이제 막 예순을 넘겼지만, 여전히 가슴 뛰는 청년이다. 호남형 짧은 머리 덕분에 외모도 청년처럼 보인다. 소설가로서 20년 넘게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역사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며 글을 써온 그는, 동학의 정신과 세계를 움켜쥐고 살아왔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오랫동안 특정 장소나 주제를 작품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곧 문화예술적 자산이 되고, 가치 선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광재는 대중적 인기나 명예와는 거리가 있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주제를 부여잡고 있다. 문학적 명성을 쌓기에 적합한 소재라고 보기 어려운 동학농민혁명에 왜 이토록 천착하는지 물었다.


“동학농민혁명은 과거의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인류 미래에 대한 굉장히 중요한 내용을 품고 있습니다. 서구적 이성 세계, 서구 문명 세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고, 사상계와 문학계에 인류 앞날의 새로운 대안을 가져올 수 있는 철학이자 실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이처럼 깊은 철학적 사유를 가진 그가 최근 장편소설 『청년녹두』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았다. 전봉준 평전 소설인 『봉준이 온다』,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나라 없는 나라』에 이어,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작품이다. 『청년녹두』 출간 이후 여러 강연과 원고 요청 등으로 바쁜 그를 7월의 폭염 속에서 만났다.


 

청년녹두(2025)



 『청년녹두』는 전봉준, 김개남, 김덕명, 송희옥 등 1894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으로 한반도를 들끓게 만든 주역들의 청년 시절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위해 방대한 사료를 읽고, 논문과 지리지, 풍속 자료를 뒤적이며 수년을 준비하였다. 또한, 강화도, 전북, 부산 등지를 직접 답사하고,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지역어까지 되살렸다.  


“표준어로는 담을 수 없는 삶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사라지는 언어는 곧 사라지는 세계입니다. 작가는 언어의 기록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런 사료와 답사를 거친 탄탄한 역사적 사실 위에, 19세기 후반 한반도 남쪽 땅 사람들의 삶을 풍부한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이 소설은 훗날 혁명의 주역이 되는 인물들이 10대의 어린 시절부터 20대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청년들은 조선의 부패와 불의, 이양선의 침입 속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결혼을 하고,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 나라의 위기와 백성의 고단한 삶을 목도하며, 새로운 사상과 인간적 고뇌, 삶의 방향을 고민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깊은 성장 드라마와 같다.


  매관매직으로 정통성을 상실한 19세기 후반의 난장판에 가까운 과거 시험장 묘사, 혁명 과정에서도 담대한 지도자였던 김개남이 주도한 ‘돼지 서리’ 장면, 젊은 청년들의 연애 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거시험을 포기하며 스승과 논쟁하는 전봉준의 모습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과 신념을 지닌 젊은이의 밀도 있는 논리와 주장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장면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독자의 사연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한 강화도를 수시로 침탈한 외국 군대(이양선)와 조선 정부군의 전투 장면, 조선 정부의 무능, 그리고 목숨을 걸고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다. 이러한 외세와의 전투 장면은 『나라 없는 나라』로 이어진다.


  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1894년 7월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 당시, “맞서 싸우지 말라”는 고종의 지시에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라며 군복을 찢고 총을 버린 한 군인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이 이야기는 실제 평안도 사료에 기록된 사건이다. 작가는 말한다.


“2024년 12월 3일, 헌법을 위반한 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선 젊은 군인들의 눈빛에서 저는 1894년 그 외침을 다시 봤습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이 시간과 시대를 가로질러 살아 있는 것이죠.”  


 

나라 없는 나라(2015)



  2024년 12월 3일 헌법을 위반한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 선 젊은 군인들의 눈빛과 행동에서 그는,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부당한 명령 앞에서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했던 그들의 마음속에도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라는 1894년의 울부짖음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도발적인 제목 『나라 없는 나라』에 대해 작가는 “백성을 지키지 못한 군주와 권력 놀음에 빠진 나라를 더는 나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나라라는 형식은 있었지만, 나라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던 국가 부재의 시기였습니다”고 말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는 2016년 촛불혁명 때도 “이것이 나라냐”는 외침을 했고,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외치며 반복된 퇴행을 겪었다.


  작가 이광재는 문학의 물질화, 상업화를 경계한다. “모두가 속도전으로만 가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다는 개벽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아무리 대응을 잘하더라도, 하루 500mm의 극한 폭우 속에서는 삶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그는 “지금의 물질문명은 생태계 전체가 아니라 인간만을 위한 속도전이며, 결국 인류를 파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이 위기를 넘는 해법으로 19세기 조선에서 태동한 동학 사상에 주목한다.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즉 내가 너이고 네가 나라는 영성의 세계의식이 지금의 위기를 구할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서구의 개별화·이성 중심 세계관과 달리, 인내천 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학의 철학. 모든 인간이 하늘이며 모두가 연결된 존재라는 인식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오래된 미래’라는 믿음이다.  


  이광재는 “서구 문명이 과학기술과 종교, 이상을 들고 들어온 19세기 후반, 우리는 그 이면에 있는 약소국 침탈과 공동체 파괴를 이미 겪었습니다. 동학은 그때부터 그것을 뛰어넘는 철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고 말한다.


  그는 젊은 시절 동학농민혁명을 처음 접했을 때는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계급을 뛰어넘는 더 큰 세계의 이야기였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문학이 경지에 이르면 기존 관점을 뛰어넘는 큰 세계가 보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 중 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얼마 전 작가 황석영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황석영 작가는 80세가 넘은 고령이지만, 앞으로 세 편의 밀도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계획을, 마치 본인 스스로 꼭 지켜야 할 약속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제 60을 갓 넘긴 이광재는 선배 작가의 말에 자극을 받아, 밀도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치열하게 사색한다고 한다.


  사색을 그저 멍때리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머릿속에 작품 하나를 붙잡고 수없는 상상과 스토리를 고민하고, 관련 공부를 하며, 자료를 읽고, 현장을 답사한다. 어쩌면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건 이미 완성된 생각을 단순히 두드리는 작업이라 오히려 편하다고 한다.


  그가 구상하는 다음 작품은 김구 선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1945년 해방 전후, 극심한 좌우 대립과 이념적 선택이 강요되던 시기. 그 혼란 속에서도 김구 선생은 오직 문화강국을 꿈꿨다. 모두가 군사적·경제적으로 더욱 강력해지는 부국강병을 꿈꾸던 시대에, 김구는 오직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문화적으로 높은 경지의 나라’를 꿈꿨다.  


  이광재는 이와 같은 사유의 배경에는 결국 김구가 젊은 시절 경험한 동학의 정신과 세계관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순간 이제라도 잘 팔리는 위인전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스쳤지만, 역시 작가 이광재는 김구를 통해 다시 동학 사상으로 돌아왔다. 동학농민혁명을 대표하는 작가다운 귀결이다.


  이광재의 문학은 여전히 현재를 향한 질문이며, 미래를 향한 사색이다. 위인전에 늘 등장하는 김구 선생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을 더 널리 알리고, 그의 문학적 성취도 더욱 빛나길 기대한다. 이 부족한 글이 그 깊은 사유의 세계에 조금이나마 다가가는 문이 되길 바란다.


(대담 및 정리: 기념재단 기획운영부장 최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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