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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겨울 6호
황해도 해주 일대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임종현

  황해도 해주 일대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임종현


성균관대학교 HK교수

배항섭



  해주감영을 점령하다 


  임종현(林鍾賢 또는 林宗鉉)은 흔히 '위동학당(僞東學黨)'의 수괴로 불리는 황해도 해주 일대의 농민군 지도자였다. 하지만 접사(接司)로도 불린 것으로 보아 그가 동학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황해도의 동학농민군 활동은 처음에는 읍폐민막의 시정과 동학교 허용에 관한 집회로부터 비롯되었다. 1894년 9월 말경에 이르러 동학농민군 수만 명은 해주 서쪽 취야장에 모여 읍폐민막(邑幣民瘼)의 시정과 동학포교의 허용을 요구하였다. 이에 해주감영은 민막은 지금 혁파하겠으나 동학은 조정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엄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들은 곧 해산하였으나 10월 6일 임종현의 지휘 하에 다시 수만 명이 모여 해주성을 점령하였다. 이들은 농민들은 관가를 부수고 군기를 탈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주감영의 관공문서에 불을 지르고 중군과 판관, 비장 등을 끌어내 구타하고 관찰사를 강제로 끌어내렸다. 


  임종현 휘하의 농민군은 11월 6일까지 약 1개월 동안 해주성에 주둔하였다. 이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11월 27일에 벌여진 취야장 전투 후 일본군이 노획한 문서를 통해 임종현이 감사 자리에 앉고, 휘하의 농민군 우두머리들을 각 지역의 수령으로 임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달 동안 해주성을 점령하고 있던 농민군은 11월 6일 느닷없이 감사 정현석에게 사과를 한 후, 해주성에서 철수하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황해감영에서 금천에 있던 일본군병참부에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11월 4인 황해감사의 아들 정헌시가 감영이 농민군에게 점령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구해줄 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띄웠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군 70명이 해주에 도착한 것은 11월 10일경이었다.



  해주성 철수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농민군의 활동 


  그러나 해주를 비롯한 황해도 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전국에서 가장 늦은 이듬해 7을까지 농민군 활동이 이어졌다. 11월 13일경 해주 송림과 녹산에 모여 있던 농민군 1천여 명이 취야장으로 진격하여 해주성에서 2시간 정도 일본군 및 관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퇴각하였다. 11월 23일에는 해주안악수접주(海州安岳首接主)가 <창의소> 명의로 황해도 각 읍에 통문을 보내어 기포할 것을 촉구하였다. 


  같은 날 새벽 해주 서쪽 취야장에서 모인 약 2천 명의 농민군은 일본군 및 관군을 상대로 격전을 치렀다. 이 전투에서 농민군은 패퇴하였는데 12명이 전사하였고 9명이 포로로 잡혔다. 같은 날 강령성에는 많은 농민군이 주둔해 있었고, 농민군은 문화·송화·평산·조니진·오우진·용매진 등을 함락시켰다. 황해도 전역에 걸쳐 동시에 기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1월 27일에도 해주성 남쪽과 서쪽에서 농민군과 일본군 및 관군 사이에 큰 싸움이 전개되었다. 당시 농민군은 재령·신천·문화·장연·웅진·강령 등지에서 모인 수가 3만명에 이르렀다. 전투는 5시간 동안 벌어졌으나, 농민군은 20명이 전사하였고 15명이 포로가 되었다. 



  황해도에서 확인되는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성 


  동학농민혁명 당시 황해도에서는 강령·문화·재령·해주·장연에서 임종현, 김유영, 원용일, 한화석, 오영창, 최유현, 오응선, 김응종, 성재호, 방찬두, 정량 등이 기포하였다. 11월 10일경 해주에 도착한 일본군 소위 스즈키는 황해도 주민의 2/3가 동학농민군이라고 하였다. 어느정도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당시 황해도에서 농민군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본군이 농민군들로부터 노획한 문서 가운데에는 10월 16일 전봉준이 충청감사 박제순에게 올린 글, 10월 15일 이유상이 박제순에게 올린 글 등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황해도 농민군의 활동은 호남이나 호서 지역의 농민군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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