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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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겨울 6호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현대화 전략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현대화 전략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운영위원

김기현



  1. 안민(安民) -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문화코드 


  맹자의 제세안민(濟世安民)에 연원하는 동학농민혁명의 보국안민(輔國安民)에서 뭇 백성을 평안하게 한다는 "안민(安民)”의 문화코드(Culture Code)를 되새김질하다가 문득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사(忠談師)의 <안민가(安民歌)>가 떠올랐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경덕왕 24년(765)에 여러 귀신들이 궁궐 뜰에 나타나 나라가 어지러우므로 임금이 충담사에게 안민의 노래를 지으라 했다.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미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하실진대 백성이 사랑을 알리라 

탄식하는 듯 창생(債生), 이를 먹여 다스릴러라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할진데 나라가 보전되리라,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


  이 고대의 <안민가>에서 통치자·관료·국민이 각각 자기 구실을 다하면 나라와 국민이 편안하리라는 소박하면서도 깊은 뜻을 알 수 있으며, 특히 통치자는 정치의 근본이 민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 승리의 첫 깃발을 들어올린, 황토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익산에서 자란 서동은 소년 시절에 신라 진평왕(579-632)의 딸 선화공주가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작정하고 서라벌(경주)로 잠입한다. 서동은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서라벌의 어린아이들을 모아 <서동요>를 가르처 주면서 부르게 한다. 선화공주는 남모르게 은밀히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는 내용의 <서동요>를 저자거리에서 아이들이 부르게 하는 '음악마케팅'으로 그의 꿈을 실현할 실마리를 풀어나간 것이다.


선화공주(善花公主)님은 

남 모르게 얼어두고

맛둥(薯童) 방을 얼어두고 

밤에 몰래 안겨 간다


  얼어는 '시집간다'의 옛말이다. <서동요>가 비록 지어낸 노래이긴 하지만 서동이 바라는 바를 성취했기 때문에 재미가 배가 되었다. <서동요>에서 우리는 고대의 유언비어 그리고 입소문 마케팅의 위력을 알수 있다. 선화공주와 결혼에 골인한 서동은 백제의 왕에 즉위하여 '안민의 치세'로 백제를 부강하게 만들고 일본에 백제 문화를 전파한다. 


  한편, 정읍에는 백제 여인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옛 노래가 「고려사」 악지에 기록되어 현존한다.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에서는 멀리 돈을 벌러 떠난 남편이 잘못될까 두려워 남편의 안전을 기원하고 그 소망을 달에게 기원하는 오랜 전통의 여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달하 노피곰 돋으시어 멀리곰 비치오시라

저자(시장)에 가 계신가요 진 데를 디디올세라

어느 것도 다 놓고 쉬시라, 네 가는데 저 물세라


  달님이 높이 떠 멀리멀리 비추는, 비도 아니 오는 맑디 맑은 하얀달 밤에 장사를 나선 남편이 질퍽한 진 데를 밟지나 않을까 아내가 걱정을 한다. 아마도 저자의 남편은 평소에 기생집이나 어염집에 자주 방문하여 술판을 벌리거나, 사랑놀이를 하는 버릇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읍사> 저자의 남편은 행상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었다. 행상은 여러 곳을 전전하며 돌아다녔기 때문에 한번 나가면 일정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고, 무슨 일을 당해도 연락할 방법이 막연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정읍사>의 저자는 행상을 해서 버는 돈과 재물보다는 한시바삐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정읍사>를 읊었을 것이다. 


  <안민가>·<서동요>·<정읍사>등 세 편의 고전시가에 내포된 안민의 정신문화유산에서 오래 전부터 행복하게 살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맹자가 말씀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제세안민의 혁명사상처럼 우리 조상들의 삶이 역시 문화적으로도 매우 다양하고 역동적이었으며, 안민의 문화코드가 농밀하게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에 내재되어 있는 안민의 정신문화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드라마로, 영화로, 뮤지컬로 그리고 K-POP 등으로 변용하거나 활용하는 재창조를 통해 그 정신을 차세대에 전승해야 할 것이다.



  2. 안민(安民)의 정신 문화코드 현대화 전략 


  우리는 그간 파랑새가 날아와 녹두꽃을 떨어뜨릴까 안달하곤 하였다. 김광석은 「타는 목마음으로」에서, 신동엽은 「금강」의 장시에서, 김지하는 「황토」에서 각기 다론 화법으로 떨어짐과 저항의 녹두꽃을 음유(吟遊)하였다. 녹두꽃은 항거의 문화로 그동안 이어져 떨어짐의 미학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꽃은 생산과 같이 맞물릴 때 실체적인 의미가 있다". 꽃은 미학적 대상이며 그 미학적 대상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과 힘으로 매만지며 어루만지면서 탄생한다. 문화는 바로 인간의 손길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녹두꽃은 바로 인간의 손길에서 나오기 때문에 문화적이며 그 문화적인 꽃은 단순히 그냥 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열매로 사람들의 든든한 식량이 되고, 가족의 건강 유지와 공동체의 번영을 상징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위기다. 위기의 증후는 사회 구성원의 낮은 행복감에서 잘 드러난다. 위기의 연원에는 문화(文化)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법이 필요하며, 그것은 전통 정신 문화에 내재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확장하는 방법일 것이다. 


  동학농민혁명 117주년인 2011년은 그 어느 때보다 낮은 행복감, 불안, 저출산, 이혼중가, 자살, 양극화로 인한 사회 갈등이 심화되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사회 해체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찾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긴요한 시대 상황이다.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 동학농민혁명군은 인내천, 보국안민, 개벽의 깃발을 높이 들고 온 천지가 진동하게 아우성쳤다. 동학농민군은 그들이 원했던 세상,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1894년 갑오년 한 해 동안 안민이라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깃발 아래 분연히 일어나 40만 명이 꽃처럼 떨어졌다. 이제 그 산화한 영혼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안민의 상징적인 정신문화 유전자를 관통하는 밈(meme)의 본질을 통찰하고 그 낯섦과 조우하여 해원해 드리고자 한다. 



  <저자소개>

  김기현은 연세대학교 언론홍보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건국대학교 문화정보콘텐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0~2002년 2002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회 보도부장, 미디어 운영부장으로 활동했고, 2003~2004년 문화관광부 관광국 관광개발과. 2004~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사업기획팀장, 국립현대미술관전시과장, 국립현대미술관정책과장을 역임하였으며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부이사관, 2008~2009년 (재) 문화콘텐츠센터 이사장, 2011년부터 불법게임물포상신고위위원장, 동학농민헉명기념재단 운영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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