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학농민혁명정신
황선구 · 소정숙 부부
어렸을 때 할머니들이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는 역사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보통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역사의 한 단면인 경우가 많다. 황선구씨가 어린 시절부터 조모에게서 들었던 증조부 황두수님의 동학농민혁명 참여 사실은 입에서 입으로 황씨가계에 전해지던 구전자료로 동학농민혁명유족으로 등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 자료가 되었다. 기자는 이번 천안시에 거주하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인 황선구·소정숙씨 부부와의 인터뷰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이면에 숨겨진 참상과 함께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숨막히는 봉건질서에 대항하다
1894년 10월 28일부터 29일 사이에 홍주성에서는 동학농민군과 일본군-관군의 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28세의 젊은 나이로 동학농민군 대열에 동참한 황두수님은 총상을 입은 후 집으로 돌아와 3일 후인 11월 2일에 작고하셨음이 황씨가계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이 있었지만 큰형님(화수)의 개혁성향에 영향을 받은 황두수님은 나라가 온통 일본제국주의에 짓밟히고 있는 것과 숨막히는 봉건질서에 대한 울분을 해결하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말을황선구씨는 어린 시절 조모에게 전해들었음을 기억한다.
황두수님의 큰형님인 황화수님은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당시 서당을 직접 운영하면서 일대 아이들에게 개혁성향의 사상을 전파했으며, 이번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세상이 변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동생인 황두수님에게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라고 하셨다고 황선구씨는 전한다.
쓰러지지 않는 동학농민혁명 정신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은 그 가족과 후대 자손들이 올바르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였지만, 대부분의 후손들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현재까지도 매우 힘든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후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의 후손들 또한 지금껏 힘든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멍 당시 황두수님의 가계는 홍성군 구항면 공리마을에서 황씨 집성촌을 이루며 살 정도로 비교적 부유한 형편이었으나, 그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고 난 이후 살림살이 형편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 후손인 황인성님은 자신의 마을에서 모든 토지와 재산을 빼앗긴 채 마을에서 일년에 벼 두 섬을 받으며 머슴살이를 하셨다고 황씨가계는 전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황두수님은 돌도 안 지난 아들을 남겨두고 돌아가셨고, 그의 부인은 졸지에 과부가 되어 반농민군세력과 일제의 감시와 조롱 속에서 모진 삶을 꾸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황선구씨의 부인인 소정숙씨는 시조모(한양조씨)님이 자신에게 한탄조로 이러한 슬픈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기억하는데, 시어머니는 시조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언잖아하시며 말리셨다고 한다. 소정숙씨는 만약 시조모가 황두수님의 동학농민혁명 참여 사실과 이후 벌어진 황씨가계의 파란만장한 가정사를 이야기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겠느냐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희생됐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동학농민혁명 참여 사실을 감출 수밖에 없어 동학농민혁명 참여내용이 제대로 현재까지 전달되지 않은 상황을 안타까워하셨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은 기념재단이 앞장서야
동학농민혁명 특별법 제정과 동학농민혁명참여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 그리고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특수법인으로 등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만들어진 건 매우 잘된 일이며, 우리 선조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황선구·소정숙씨 부부는 정부가 앞으로도 주도적으로 나서서 동학농민혁명을 제대로 정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한, 홍성전투를 비롯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가 적지 않은 홍성지역에 기념사업단체가 만들어지지 못한 까닭에 유족이나 지역민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서 홍성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사실들이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며, 기념사업의 추진과 활동은 개인으로서는 담당하기에는 매우 힘든 일이므로 홍성군과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등에서 앞장서서 관련 기념사업을 추진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해 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