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정신, 그 참된 깨침의 현대적 가치
계명대 사학과 교수
이윤갑
녹음이 짙푸르게 우거지는 6월이다.
6월이 오면 동학농민혁명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내던 전남대의 송기숙 교수가 그립다. 송 교수는 농민군을 거느리고 전주성에 진을 쳤던 녹두장군이 아마도 이맘때쯤 가장 고뇌가 컸을 것이라 하셨다.
한 해 농사의 성패가 모내기에 달렸는데 지금이 바로 그 철이기 때문이다.
죽창을 들었지만 농민들인지라 모내기 걱정에 마음이 편치 못했고, 녹두장군도 그 사정을 헤아려 전주화약약을 서둘렀을 것이란 얘기였다. 하루하루 짙어져 가는 녹음을 보고 있으면 백여 년 전 이 땅에 희망을 일구었던 동학농민군들의 굳센 의기와 깊은 고뇌가 같이 느껴진다.
우리 역사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동학농민혁명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낡고 부패한 조선사회를 개혁하였고, 일본의 야만적인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 바쳐 투쟁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역사에 오래 기억될 위대한 변혁운동이자 숭고한 민족운동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이 근대의 여타 민중운동보다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민초들을 자신의 삶과 세상, 역사의 주체가 되도록 각성시킨 점에 있다. 동학은 애초 새로운 학문이자 사상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보수화될 대로 보수화되어 생명력을 잃어버린 성리학을 대신해 고통받는 민초들에게 희망과 해방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학문과 사상으로 동학을 창도하였다. 동학은 민초들이 스스로 희망을 만들고 해방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였다.
동학운동은 결코 정치투쟁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동학운동은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수행으로 인간 본성을 회복하는 정신각성운동이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생활혁신운동이었다. 곧 세속의 이해를 따라 요동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 잡고 안정시켜 당면한 곤경을 타개하고 사람다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게 만든 것이 동학운동이었다.
동학의 평등사상과 유무상자(有無相資) 개혁운동은 이러한 정신각성운동의 소중한 결실이었다. 그것은 작의적인 당위가 아니라 각성된 눈으로 본 존재와 세계의 진리였다. 동학의 사회적 실천성은 이러한 각성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러했던 까닭에 배운 것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적도 없었던 민초들이 분연히 일어나 사회를 바로잡고 외세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투쟁에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그 모순으로 이해대립이 그치지 않고, 그 불합리를 해결하려는 사회운동이 끝없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좀처럼 모순이 해결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이해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성급히 문제해결에 나서기 때문이 아닐까. 그로 말미암아 문제 해결이 도리어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동학운동은 이 악순환을 단절하는 정신각성운동이었고, 동학농민혁명은 그 각성에 바탕을 둔 사회개혁운동이자 민족운동이었기에 우리 사회를 일거에 근대사회로 진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 우리들에게 절실한 것도 동학운동이 펼쳤던 정신각성운동이 아닐까? 역사는 모순적인 이해에 집착하는 한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결코 그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문제 해결에 나서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부터 끝없는 이해다툼과 집착으로 오염되고 불합리한 통념에 찌들어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그러한 각성이 바탕이 될 때 모순의 악순환을 끊고 자신과 세상을 진보시킬 참다운 지혜와 용기, 결단력이 생긴다. 그것이 진정으로 동학농민혁명정신을 오늘에 계승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저자 소개>
저자 이윤갑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대구광역시 실무위원으로 활동했고, 2007~2010년 대통력 직속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공저로 ‘동학농민혁명의 지역적 전개와 사회변동’ 등이 있고, 연구논문으로 ‘19세기 후반 경상도 성주지방의 농민운동’ 외 등 다수가 있다.
※ 본 원고는 여름호에 게재 예정이었으나 누락으로 가을호에 게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