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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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열기
2011년 봄 3호
교과서에서 걸어 나온 살아있는 역사와 대면

  교과서에서 걸어 나온 살아있는 역사와 대면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2학년 

허승아


  단 하루에 동학농민혁명의 몇몇 유적지를 다녀와서 그 때의 모든 것을 느낄 수는 없었겠지만, 그 당시 많은 분들이 용감하게 싸웠고 희생되어 그로인해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이 땅에 한국인으로서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편집자 주>



  길고 긴 방학과 설 연휴의 끝에 정읍으로 가게 되었다. 풍물패 동아리에 있으면서 일주일간 전수를 받기 위해서였다. 전수는 쉽게 말해 사부님께 악기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정읍에 가서 단순히 악기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읍의 문화지인 황토현유적지를 방문할 기회도 가졌다. 처음 숙소가 황토현유적지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러려니 했는데, 직접 유적지를 볼 기회가 생겨서 기대가 되었다. 중, 고등학생 때는 유적지 같은 곳을 간다하면 그저 귀찮은 일 중에 하나였는데 철이 들었는지 다시 한번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곳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문화관광해설사 분도 계셔서 그저 눈으로 보고 훑는 식이 아닌 그 때 당시의 시대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도 배웠다.


  처음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갔다.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커다란 박제된 감나무였다. 말목장터에 있던 감나무를 옮겨 놓은 것으로서 그것은 동학농민혁명의 과정을 다 지켜본 나무이며, 그 누구보다 많은 걸 봐왔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일 년에 한 번 박제를 한다고 하는데 그 때의 웅장했던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하나의 연결고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진혼Ⅱ’라는 한 조형물이 있었다. 이 조형물은 네 면을 거울로 둘러싸고 그 안에 9개의 조명으로 불빛을 밝혀 흡사 수만 개의 불빛이 켜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 했던 농민군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정말 이 조형물의 창의성이나 그 의도가 마음에 와닿았고 다시 한 번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념관을 들어서서 보았던 것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봉준 장군의 사진과 사발통문이었다. 전봉준 장군의 사진은 교과서에서 봤던 것이라 눈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 익숙한 이유는 남은 전봉준 장군의 사진이 단 한장뿐이어서, 항상 그 사진만 실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사진은 전봉준 장군이 고문을 당하고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진이었는데 고통 직후의 모습이었더라도 눈빛은 여전히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한 더 인상 깊게 느낀 이유는 양반으로서 보다는 혁명 지도자로서의 눈빛이 강렬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발통문은 계층의 평등성과 혁명을 이루기 위한 혁명가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서 감탄스러웠다. 그 시대 위계질서가 확고한 사회 분위기를 뒤엎고 계층을 무시한 획기적인 생각이라고 느꼈다.


  기념관은 사진 몇 장과 설명 몇 줄에서 그치지 않고 소소한 것들을 모형과 영상 등으로 잘 표현해 놔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혁명가들이 어떻게 모여 의논을 했는지,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때 국제 정세는 어떠했는지 두루두루 잘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기념관을 나와 황토현의 그 작은 구릉에도 가보았다. 그곳에 혁명가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 있었는데 엄숙한 분위기에 잠시 묵념을 했고 그 시간 동안 지금 우리를 이 땅에 잘 살게 해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기념관을 돌아보고 전봉준 장군의 고택을 가보았다. 장군의 집이라기에 기와집을 떠올리고 갔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작은 초가집이었다. 비록 작고 소박한 집이었지만 영웅이 태어난 곳의 기운은 어느 대가 못지않았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만석보라는 곳이었는데, 만석보는 특히 동학농민운동의 시초가 되어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한다. 주변은 들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 당시 농민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였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역사적 사건을 이렇게 직접 둘러보니 감회가 새로웠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교과서로 배우기만 하고, 이렇게 역사적 문화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잘 몰랐던 터라 이 기회가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다. 특히나 동학농민혁명의 유적을 잘 보존한 것처럼 다른 역사적, 문화적 유적지들도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 하루에 동학농민혁명의 몇몇 유적지를 다녀와서 그 때의 모든 것을 느낄 수는 없었겠지만, 그 당시 많은 분들이 용감하게 싸웠고 희생되어 그로인해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이 땅에 한국인으로서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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