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느낀 벅찬 감동”
제주교육대학교
강보미
2010년 11월 24일. 우리는 광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광주 공항에 도착을 하고, 차를 타고 고창으로 가서 우선 점심식사를 하였다. 전라도에서의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조금 걸어가니 고창 읍성이 나왔다. 이번 여행의 주제인 동학농민혁명과는 크게 관련이 없지만 고창 모양성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니, 추운 날씨 덕에 약간 얼었던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고창 읍성을 보고 난 뒤, 우리는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인 전봉준 장군의 생가를 방문했다.
가난한 양반이었던 전봉준 장군은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고 시정개혁을 도모하였다. 생가에 가니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 강화에 힘썼으며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던 전봉준 장군의 어릴 적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실제 생가와는 구조 등이 달라지긴 하였지만 답사 첫날, 동학 혁명의 산실인 전봉준 장군의 생가를 방문하니, 이번 답사가 더더욱 기대되었다.
우리는 첫날 일정을 마치고, 둘째 날 전주국립박물관과 역사박물관, 어진박물관 등을 방문하고 한옥마을에서 둘째 날 일정을 마쳤다.
마지막 날 아침이 되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만석보터로 동학농민 혁명의 시발점이 된 사건의 동기를 부여한 역사적인 장소였다.
옛날,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소박한 작은 초가집처럼 보이는 그곳. 그러나 거대한 포부가 느껴지는 그곳.
전봉준 장군의 고택에 들어서면서 볼품이 없지만 이 장소가 갖고 있는 큰 역사적 현장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작은 곳에서 전봉준 그가 품었을 거대한 열망을 짐작해보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어렵게 찾아간 죽산마을. 그곳에 있는 동학혁명 모의탑과 사발통문 작성지를 답사하게 되었다. 사발통문은 동학농민군이 조직적으로 봉기를 계획하고 고부군수 조병갑을 처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주성까지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한다.
동그랗게 사발 형태를 띤 사발통문이 단순히 주모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한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 안에는 신분차별이 없는 평등의식이 담겨져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동학농민혁명의 본질적인 기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녹두회관 앞에 세워진 무명농민위령탑은 그 어느 동학 유적지보다도 동학혁명 그 당시의 한과 울부짖음, 굳은 의지가 잘 표현되었던 것 같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웅장한 탑은 아니지만 땅에 가깝도록 낮게 세워진 위령탑은 오히려 동학농민군의 정신을 올곧게 담아내고 있었다. 죽은 동료를 끌어안으며 죽창을 들고 절규하는 농민의 모습, 울분과 비탄 속의 농민 얼굴, 죽창, 낫, 밥이 담긴 밥그릇 등의 탑에 새겨진 것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주체가 우리 민중이었음을 느끼게 하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황토현전적지로 이곳은 처음으로 동학농민군이 농민군 토벌부대를 만나 대승을 거둔 곳이다. 동학군의 첫 승리의 영광으로 인한 것인지, 전적지의 따뜻한 햇볕은 추위에 떨었던 우리들을 잠시나마 감싸주었다. 낮은 구릉지대였지만 사방을 훤하게 내려다볼 수 있었던 이곳에서 동학군의 치밀한 전술과 전략을 알게 되었고, 첫 승의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과 드높은 기세를 상상해보게 되었다.
백여 년 전, 동학군이 걸었을 산길을 걸으며 황토현전적기념관에 도착하였다. 그 유명한 전봉준 장군 동상이 오른손을 불끈 들며 우람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맨 머리 상투의 죄수 모습을 가진 동상의 모습은 빈곤한 역사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듯 했다. 또한 비장함을 찾아볼 수 없는 농민군 부조도 아쉬웠고, 무엇보다도 전봉준 장군 자신이 스스로 농민이었으며, 농민들과 아픔을 같이했고 녹두장군으로 불린 그의 흔적과 달리 장군 동상은 아래에 위치한 농민군 부조를 밝고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그의 정신이 왜곡된 것은 아닌지 안타까웠다. 안타깝고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도착지인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기념관 입구에는 말목장터의 감나무가 보존 처리되어 자리잡고 있었다.
기념관에는 동학혁명의 흐름과 역사적 의미, 농민군의 반봉건, 반외세 등이 담긴 전시물과 당시 민중의 한과 소망을 느낄 수 있는 조형물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람을 하며 동학농민혁명의 의의와 주체인 농민군의 의지를 재정리해보고 민족적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일정 속의 답사지를 떠올려보면 휑한 벌판에 터만이 남겨진 볼품없는 유적지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장소를 한 곳 한 곳 둘러볼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역사의 객체가 아닌 주체인 민중들의 굳은 혁명의지는 우리의 피를 꿈틀거리게 하며 가슴이 벅차오르게 한다. 이번 답사가 아니었다면 교과서 속 몇 줄로만 언급된 사건으로만 동학농민혁명을 평생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죽어있는 역사로 동학농민혁명을 만난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떠올릴 수 있어서 이번 기회가 무척 행복했고 오랫동안 소중하게 여겨지게 될 것 같다. 110여 년 전, 핍박 속에서 웅크렸던 삶의 허리를 펴고 혁명의 기치를 올렸던 민중들의 의지와 희망을 가슴에 담고 이 시대의 깨어있는 민중으로 살아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