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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 2호
구미시(舊 선산군) 해평면 「쌍암고택」

  구미시(舊 선산군) 해평면 「쌍암고택」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전상욱


  지난 11월 25일 울산 여시바윗골의 최제우 유허지, 경주의 용담정 등을 답사하고, 다음날 오전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구미시(1995년1월 시군통폐합이 되기 이전에는 선산군이었다.) 해평면에 소재하는 쌍암고택(雙巖古宅)을 방문하였다. 내비게이션이 잘못 안내할 정도로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古家였다.


  집 앞에 바위 2개가 있어 쌍암고택, 또는 주인의 성함을 따라 최상학 가옥이라 불린다. 쌍암고택은 400년 전 고성에서 들어와 정착한 해평 최씨 입향조인 검재(儉齋) 최수지(崔水智)의 10대손 진사 최광익(崔光翊)이 1731년(영조 7)에 아들의 살림집으로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안채, 대문채, 안대문채, 사랑채, 사당 등 다양한 부속채가 있는 규모가 큰 저택이었다고 한다. 비록 대문채와 부속채가 소실되었지만, 지금도 저택의 규모가 상당하였다.


  쌍암고택은 1894년 동학농민군이 2차 봉기를 일으켰을 때 중요한 역사적 무대였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군량과 돈을 지주와 부농으로부터 강제로 징수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 양반과 향리를 폭행하고 선대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재물을 빼앗아가자, 양반과 향리는 민보군을 조직하여 동학농민군에 대응하였다. 이처럼 혼란한 상황속에서 해평 최씨 가문은 동학농민군을 피해 근 2년 동안 외가인 창녕에 피신해 있었다.


  해평 최씨 가문이 외가에 있는 동안에 쌍암고택은 일본군이 해평에 설치한 병참기지로 사용되었다. 당시 일본군은 청과의 전쟁을 위해 동래에 군대를 상륙시켜서 북상하도록 하였다. 일본군은 행군로를 만듦과 동시에 40리마다 병참부를 설치하였다. 40리마다 설치한 이 병참부들은 기간 병참기지로서 동래·밀양·청도·대구·독명원·해평·낙동·태봉·문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병참기지에 많으면 일본군이 2천에서 3천명 적으면 천명이 있었고, 또 작은 병참기지도 두어 각각 1~2백명씩 주둔하였다.


  이처럼 경상도 일대에 일본군이 병참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목격한 동학조직은 일본군과 격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 같은 동학조직의 방침은 6월 21일 일본군의 경복궁 불법 점거로 인해 확고해졌고, 결국 9월말 기포령을 내리면서 무장봉기가 결정되었다.


  이러한 동학교단의 방침은 김천의 도집강 편보언에게 전해졌고, 편보언은 각처의 접주들에게 이 내용을 통지하였다. 그 이후 김산의 동학농민군은 무기와 군량을 비축하여 선산읍성과 해평 쌍암고택에 위치한 일본군의 병참기지를 공격 대상으로 정했다. 이 과정에서 영동대접주에 소속된 충청도의 동학농민군이 합세하여 9월 22일 선산읍성을 공격하여 점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선산의 향리가 해평에 가서 일본군에게 지원을 요청하자, 일본군은 기습을 감행하였다. 일본군은 대대적인 공격에 동학농민군은 선산읍성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그 이후 경상북도의 동학농민군은 민보군과 일본군 그리고 감영에서 파견한 진남영병에 의해 궤멸되었다.


  이후에도 쌍암고택에 군이 주둔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역주민에 의하면 6·25 당시에 북한 인민군이 주둔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쌍암고택이 군의 주둔지로 사용된 것은 해평일대가 낙동강과 인접하여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현재 쌍암고택은 해평 최씨 후손인 최상학씨가 관리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부침 속에서 건물의 상당부분이 허물어졌다. 다행히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 10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대문이 조선시대 가옥에 어울리지 않게 현대식 철문으로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복원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이밖에 안내표지에 건축연도, 가옥구조에 대한 설명만 있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쌍암고택이 겪은 역사적 경험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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