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과 동학농민혁명
전남대 명예교수
이상식
비록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일본 침략군 때문에 좌절되었지만 그 정신은 계승·발전되어 한말의병과 일제 시대의 독립운동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분단에 저항하는 민족 통일운동과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수천년간의 고통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오늘의 발전을 이룩한 우리는 역사의 준엄한 교훈과 깊은 뜻 잘 간직하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의 선양과 기념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198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역사의 주체인 농민대중이 반봉건의 민주화와 반외세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이다.
수천 년 간 억압받고 수탈당하던 농민대중이 동학의 평등사상과 반외세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사상 (開闢思想)으로 의식화되고 조직화되어 19세기 말 안팎으로 위기에 봉착한 나라와 민족을 구출하기 위해 일으킨 혁명이다.
전라도에서 시작하여 전국을 휩쓸면서 수백만이 참여하고 수십 만 명이 살상된 동학농민혁명은 위정자들과 일제침략자들의 야합으로 좌절된 혁명이었지만 우리 민족이 나아갈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민족 민주혁명을 주도하였다.
금년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지 100년이 되는 비통함과 세계유일의 분단국으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분쟁과 살상이 계속되는 상황이 연출되어 반외세의 자주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1894년 1월 봉건세력의 수탈과 탄압이 극에 달했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노하여 궐기한 전봉준 등의 농민봉기가 계기로 되어 3월에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이 주도한 무장의 농민 수천 명은 백산에 모여 4대 강령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혁명으로 발전하였다. 전라도 각지에서 운집한 동학농민 만여 명은 황토현에서 전라도 영군을 무찌르고 장성 황룡에서 중앙의 최정예 부대를 격파하면서 전주를 점령한 후 서울 진격을 계획하였다.
이에 놀란 왕과 위정자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청나라에 구원군을 요청해 청군이 조선에 파견되자 이를 구실로 일본군이 엄청난 병력을 서울에 진입시켜 왕궁을 점령하고 청일전쟁을 도발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같이 위험했다.
전라도 전역과 충남, 경상도 일부에서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고 농민통치를 설치하고 있던 동학농민군은 일제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9월에 다시 봉기하여 서울을 향하여 공주까지 진출하였으나 일본군의 신무기 앞에 처절하게 무너져 후퇴하면서 저항했다. 논산, 태인, 정읍에서 패전한 동학농민군은 장성 노령에서 일단 해산했으나 광주, 나주, 장흥에서 일본군과 관군에 저항했으나 실패하고 엄청난 살상과 수탈을 당하고 말았다.
비록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일본 침략군 때문에 좌절되었지만 그 정신은 계승·발전되어 한말의병과 일제 시대의 독립운동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분단에 저항하는 민족 통일운동과 독재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분단을 이용해 대립을 고착시키고 독재를 자행하려던 역대의 위정자들의 혹독한 탄압정책을 이겨낸 민중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한 후 동학농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을 모았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기념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한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꾸준한 노력을 경주하여 드디어 2004년 2월에 동학농민혁명 명예회복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110년간 역적으로 몰리어 살상되었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의 수십만 영혼들을 건국의 영웅들로 명예회복시켰고 풍비박산 되었던 그들의 후손들도 명예회복시켰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민족은 수많은 외부세력의 침략과 혹독한 수탈을 겪으면서도 좌절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불굴의 정신과 우뚝 일어서는 용맹을 발휘하여 오늘의 자랑스러운 한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 발전의 진리를 실천하면서 민주화와 산업발전을 이룩해 세계인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누리고 있다.
수천년간의 고통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오늘의 발전을 이룩한 우리는 역사의 준엄한 교훈과 깊은 뜻 잘 간직하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의 선양과 기념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첫째,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하루빨리 확정하여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고 기념사업을 활발하게 거행해야 할 것이며, 후손들의 생계지원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 자주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분단과 대립을 극복하여 조국통일에 앞장서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란 불명예를 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