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역할과 과제
인류 보편적 가치 탐색과 새로운 문화를 향한 도전
고려대 연구교수
배항섭
'이제부터라도 1894년 당시 농민군이 기치로 내걸었던 “반봉건 반외세”의 의미를 지금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이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상(像)을 한층 풍부하게 하는 길이며, 동학농민혁명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자산으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2010년은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기념사업을 추진해온 전국 각지의 기념사업 단체나 유족회뿐만 아니라 20년이 훌쩍 지난 세월 동안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매달려온 필자에게도 참으로 뜻 깊은 해이다. 그것은 2010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특수법인으로 인가받은‘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하‘재단’)이 출범하였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특별법」)이 제정된 지 꼭 6년만이다.
‘재단’발족 이전부터 유족회라든가 각 지역기념단체가 만들어졌고, 또 이들과 연구자들 가운데 뜻있는 분들이 힘을 합쳐 기념재단을 설립하여 활동해 왔다. 특히 2004년에는「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국무총리 직속기구인「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위원회」(이하「위원회」)가 구성됨에 따라 명예회복과 각종 기념사업, 연구·조사가 한층 체계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재단’이 해야 할 일도 기본적으로는 「위원회」가 추진한 사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재단’의 발족을 축하함과 아울러‘재단’이 추진하는 사업이 더욱 알찬 내용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 관여해 오면서 느낀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동학농민혁명을 다만 한국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적어도 동아시아 근대사의 전개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었음을 상기하고 싶다. 한국과 중국이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로 전락한 반면 일본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이 가지는 역사적 무게를 다만 한반도라는 제한된 범위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세계사적 차원에서도 이만한 대규모의 사건이 흔치 않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사례들과 비교하는 가운데 동학농민혁명이 가진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찾아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기념사업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다층적이고 확장된 이해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특별법」 제1조에는「특별법」의 목적이 크게“봉건제도의 개혁과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수호를 위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 민족정기를 선양함”과 “동학농민혁명참여자와 그 유족의 명예 회복”의 두 가지로 규정되어 있다. 앞부분은 곧“반봉건 반외세”를 내용으로 하는 농민군의 애국애족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민주화”가 120여년 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진전되었고, 각자의 삶을 구성하는 연결망들이 세계화된 오늘날의 현실, 특히 젊은 세대들의 감각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표현이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감성에 호소할 수 없는 역사상으로는「특별법」에 규정된 목적을 온전히 수행해 나가기 어렵다. 어떠한 기억할 만한 역사적 사건도 현재라는 지평에서 새롭게 해석되지 않으면 박제화해 나가게 되어있다. 동학농민혁명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부터라도 1894년 당시 농민군이 기치로 내걸었던“반봉건 반외세”의 의미를 지금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이것은 동학농민혁명의 상(像)을 한층 풍부하게 하는 길이며, 동학농민혁명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자산으로 만드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뿐만 아니라 각종 역사적 사건의 기념사업마다 추진방향과 관련하여 기념사업은‘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양식을 창조해나가는 사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념사업을 ‘새로운 문화’를 향한 과정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다층적이고 풍부한 이해가 요청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