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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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 40호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장옥삼의 증손자 장원명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장옥삼의 증손자 장원명



 

문) 이번 호의 유족 인터뷰에는 참여자 장 옥자 삼자 (1851~1895)의 증손자 장원명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먼저, 『녹두꽃』독자를 위해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먼저 이렇게 전남 광주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장 옥자 삼자의 증손자 장원명입니다. 호적상 이름은 장원명인데 일반적으로 장원석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광주지구 유족회장도 오랫동안 맡았습니다. 이 외에 광주향교 전교(2013~2014), 성균관 부관장(2019), 광주광역시 동구 학운동 자치위원장, 광주광역시 동구 협의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였습니다. 고향은 전남 함평군 신광면인데 광주에서 학업을 마친 후 계속 광주에서 미화사업을 37년간 했습니다.



문) 선생님, 1894년 동학농민혁명 반란사건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동학농민혁명은 2004년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되어 명예회복의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지난해에는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최초로 대승을 거둔 5월 11일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해 정부 주최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제125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개최되었고, 올해는 정읍 황토현전적지에서 제126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후손으로서 감회는 어떠신지요?


답) 오랫동안 동학농민혁명이 반란사건으로 내몰리면서 제대로 말도 못했는데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공식적으로 제정해주니 꼭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고, 하여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고 기분이 좋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은 국가를 파멸시키고 정권을 탈취하려고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낡은 봉건제도를 개혁하고 부패한 탐관오리를 몰아내서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설치한 집강소에서도 백성들을 위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도 보았지만 동학농민혁명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1994년 이후 동학농민혁명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국회의원들한테 청원도 많이 했었는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기념일 제정을 위해 애써주신 문체부와 기념재단에게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반란의 멍에를 벗고 혁명으로 그 인식이 전환되는 획기적인 전기가 확립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문) 선생님께서는 언제 유족으로 등록이 되었는지요?


답) 오래되어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06년인가 장익수 당숙 어른(장옥삼의 손자)이 먼저 유족 등록하셨고, 저는 몇 년 있다가 등록했으니까 아마도 2008년도쯤일 것입니다. 등록할 때 호적상 이름(장원명)으로 등록하지 않고 자주 쓰는 이름(장원석)으로 등록했습니다.


문) 선생님은 증조부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실을 언제 처음 아셨나요? 그리고 어떤 경로로 통해 참여한 사실을 알게 되셨는지요?


답) 할아버지께서 제가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께서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증조부님(장옥삼) 뿐 만 아니라 증조부님의 큰 형님(장경삼)과 동생(장공삼)도 함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문) 선생님의 집안에서 한 분도 아니고 삼 형제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셨군요. 어떻게 해서 삼 형제가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당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그러니까 증조부님 형제간 중에 첫째가 장 경자 삼자, 셋째가 저의 증조부님 장 옥자 삼자, 그리고 넷째 장 공자 삼자 이렇게 삼 형제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습니다. 1893년 증조부님께서 서울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셨는데, 그 이듬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어요. 그때 함평에 있는 증조모님(장옥삼의 처)의 조카가 이화진이라는 대접주였는데, 그 분이 증조부님과 형제분에게 동학농민혁명에 함께하자고 권유해서 함께 함평으로 가서 참여하게 됐다고 합니다. 증조부님과 형제들은 전남 함평 신광면 괴치마을 앞 삼정들이라는 곳에서 농민군에게 군사훈련을 시켰고 삼 형제가 함께 전남지역 함평 고막포 전투, 무안전투, 영광 영산면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전남 영광 영산면 전투에서 증조부님의 형님(장경삼)이 부상(화상)을 입어 동생들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결국 체포되어 1894년 12월 9일에 함평현아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 이후 증조부님(장옥삼)과 동생(장공삼)은 다시 전투에 참여했고 피신하던 중 관군에게 발각되어 이듬해 1895년 2월 17일에 처형되었습니다. 두 분이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거죠.



문) 증조부님께서 과거를 보러 다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집안이 좋았을 것이라고 짐작해보는데, 동학농민혁명 당시 증조부님의 나이나 집안의 형편 등에 대해 알고 계시는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답) 동학농민혁명 당시 증조부님 나이는 44세였고 집안은 상당히 윤택했던 것 같습니다. 증조부님은 사재를 털어 동학농민군에게 군량미와 필요한 장비들을 제공하였고 증조부님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이후 관에서 증조부님의 집을 허물어서 나온 목재를 함평객사 짓는 데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 증조부님은 재산이 어차피 다 몰수당할 걸 예상하고 피신을 하면서 집에 있는 돈을 밭에 뿌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와서 다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문)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신분제 중심의 봉건체제를 개혁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추구한 의거였으며,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반일의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혁명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반란사건으로 치부되어 그 후손들은 오히려 숨죽여 살아왔습니다. 선생님 집안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후 몰락했는데, 후손들이 삶이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점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힘든 건 말할 수 없었지요. 함평에서는 꽤나 윤택한 집안이었는데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다 몰수당했습니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 게 생각나는데, 난리가 난 이후 이도재 전라도 관찰사가 새로 부임했는데 이분이 종증조부님(장경삼)의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몰수당한 논밭 등 재산을 돌려줬다고 해요. 종증조부님의 둘째 아들이 집문서, 땅문서를 돌려받아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아전들을 만났는데, 아전들이 “장가 놈들이 다시 일어나면 우리는 다 죽는다.”고 해서 문서도 다 빼앗고 둘째 아들까지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산도 아무것도 남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죠. 집안 어르신들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후 재산을 몰수당한 것뿐만 아니라 온 집안사람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그러니까 해방 이후 다시 고향(함평군 신광면 계천리 사천마을)으로 들어왔지만 곧이어 6.25전쟁이 터져서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허기사 어디 우리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후손 뿐이었겠습니까 그때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죄다 힘들고, 못 먹고 가난한 시절이었지요.



문)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신 증조부님과 형제분들께서 돌아가신 후 시신을 거두었는지요?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요?


답) 다행히 삼 형제 모두 시신을 거둬서 각각 자손들이 모셨습니다. 증조부님(장옥삼)과 동생(장공삼) 두 분의 묘소는 전남 나주시 다시면에 있고, 증조부님의 큰형님(장경삼)은 전남 함평에 묘소가 있습니다.



문)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신 증조부께서 남긴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물 등 전해져오는 것은 없는지요?


답) 조부님이 남아있는 유물을 찾으려고 애쓰셨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급하게 피신하셔서 뭘 챙기고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점이 참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원명 님과 부인


문) 바쁘신 가운데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제가 (사)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로 있으면서 행사나 모임이 있으면 가급적 참석하려고 하는데 이번 기념식에는 몸이 불편해서 함께하지 못해서 참 아쉬웠습니다. 작년에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제정된 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념식이 개최됐고 올해는 정읍 황토현 전적지 구민사(사적 제295호) 에서 치러졌는데, 구민사에 저희 집안 삼형제 어르신들(장경삼, 장옥삼, 장공삼) 위패가 다 모셔져 있습니다. 증조부님(장옥삼) 위패를 먼저 모셨고 그 다음 종증부님들(형 장경삼, 동생 장공삼)을 모셨죠. 선조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에서 기념식이 개최되는 것을 보니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후손으로서 뿌듯했습니다. 갑오선열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동학농민혁명 애국애족 정신이 계승·발전될 수 있도록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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