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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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 40호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윤경로 역사학자ㆍ전 한성대 총장


  일반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성격과 의의를 반봉건 반외세로 정의한다. 수용할 태세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제된 1876년의 타율적 개항은 이후 한국 근대사의 전개에 두고두고 부정적 영향을 끼치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9세기 들어 구조화한 지배층의 부패와 가렴주구에 더해 아류 제국주의의 길에 들어선 일본의 침탈은 그야말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었다. 이러한 말기적 현상에 정면으로 맞서 역사변혁의 주체로 분연히 떨쳐 일어난 민중세력이 바로 동학농민군이었다.


  반제 반봉건을 기치를 내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어느덧 1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위상을 두고 수많은 논쟁과 공박이 이어져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역사서는 물론 교과서에도 ‘동학란’이라 서술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현재의 평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동학란’이라는 몰가치적이고 반역사적인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전문 연구자는 물론 시민단체들의 쉼 없는 노력이 있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1년 앞둔 1993년 12월에 발족한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 소속 각 지역 기념사업단체들이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시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역사학계와 기념사업단체의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2004년 동학농민혁명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18년 4월에는 종로 네거리에 전봉준 장군 동상이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지난해 2월에는 5월 11일을 법정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선포하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일들은 ‘농민반란’이 국가가 공인하는 ‘혁명’으로 거듭난 일대 사변이다.


  그러나 아직도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세 가지만 제언하고자 한다. 먼저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순국자에 대한 예우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은 그야말로 무명의 농민군들이었다. 한편,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적지 않은 수의 지도자와 농민군에 대한 뚜렷한 행적과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는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 적용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이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이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최초의 전면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적 인적 자산이 의병전쟁과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순국한 농민군들을 독립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최소한 선언적이고 상징적으로라도 이분들을 독립유공자 반열에 모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동학농민혁명정신의 현재적 구현을 강조하고 싶다. 코로나19 감염증 광풍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응이 선진 각국의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다. 개방적이고 동시에 효율적인 방역체계와 4ㆍ15총선 등에서 보여준 높은 시민의식 등은 우리가 오랜 기간에 걸쳐 단련해온 민주주의와 공동체정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시민이 자율성을 지닌 주체임을 다시 입증했다는 측면에서 동학농민군이 주창했던 반봉건은 이제 상당 수준 실현되었다 할만하다.


  그러나 척왜양창의(斥外洋倡義)로 대변되는 반외세의 과제 해결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어 보인다. 명실상부한 독립은 대외적인 자주성이 담보되어야 가능하다. 한편에서는 민족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현실을 탓하지만 지금의 국가적 위상과 국력만으로도 관철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 미·중 간의 신냉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런 객관적 정세가 오히려 국가의 자주성을 높일 호기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넓게는 동북아의 평화 구축에서부터 좁게는 주한미군 주둔비 협상에 이르기까지 자주독립국가로서 자존심을 지킬 때 한층 유리한 지형이 조성될 것이라 확신한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여전히 유효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학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동학사상을 재해석하고 대중화에 힘썼으면 한다. 지난 날 우리 근대사상의 원류를 실학에서 찾고 북학사상-개화사상으로 맥을 이어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맹점의 하나가 아래로부터의 변혁이라는 당대의 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학의 개벽사상(開闢思想)은 반봉건적 민중의식의 총화라는 점에서 오히려 근대사상의 주류로 자리매김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 인내천(人乃天)이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같은 개념은 ‘평등’의 원리를 처음으로 체계화 이론화하였다는 점에서 세계에 자랑해도 손색이 없을 우리 민족의 정신적 자산이 아닌가 한다. 3ㆍ1혁명의 성과라 할 민주공화주의의 수용, 자유 민주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의 확립도 기실 서구제도의 이식만으로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왜 민족이 수난 속에서 체득한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기만 할까 안타까울 뿐이다. 공동체 평등 복지 등 동학농민혁명이 던진 선구적인 화두에 우리 모두 눈과 귀를 열고 답을 내놓아야 할 때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윤경로(尹慶老) |  경기도 양주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1년부터 2012년까지 한성대학교 인문대학 역사문화학부 교수로 재직하였다. 주요 경력으로는 한성대학교 총장(2005~2009), 3·운동100주년기념사업회 기억기념분과위원장(2018~2020)을 역임하였으며, 2003년부터 현재까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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