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과 인연 맺어준‘ 은강이’
이윤희 (재능대학 교수)
좋은 동화를 쓰기 위해서 좋은 동화만 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문학이 아닌 여러 분야의 공부를 즐긴다. 그런 연유로 십여 년 전에 나는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역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역사의 굽이굽이에는 정말 감당 못할 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몸이 하나라서 유감스러웠다. 그렇다면 그중에 ‘물건’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해볼 만한 이야기거리는 어떤 것일까? 나는 우리역사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았다.
일단 스케일이 큰 이야기에 관심이 갖다. 그래야 마음껏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냉이꽃처럼 작고, 따듯한 이야기도 아름다웠지만, 나와는 썩 맞지 않았다. 감히 나는 조금은 달랐으면 싶었다. 그리고 정공법을 택했다.
그런 내가 동학농민혁명을 점찍은 것은 어쩜 당연했다. 다시 공부하면서 비로소 알았지만, 동학농민혁명은 함경도와 평안도 일부를 제외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졌다. 이십만 이상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휘말렸으며 거의 일 년 동안 조선을 뒤덮은 일대 광풍같은 사건이었다.
나는, 설사 진다 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상대와 샅바를 마주 잡은 씨름 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묵직했다. 정말 덤벼볼 맛이 났다.
학창시절, 나는 우리 역사를 보고 배울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화가 나고 슬펐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내가 본 우리 역사의 갈피갈피에는 왜 그렇게 많은 당파싸움과 탐관오리가 있었는지, 양반들은 어찌 그리 인면수심인 경우가 많았는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살았으며, 문자를 창조한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무섭도록 철저한 선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 두 부류는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어른이 된 후에야 나는 그러한 부정적인 일들이 우리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상당부분이 우리 역사를 축소, 왜곡시킨 식민사관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전에 가졌던 의문이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가능하면 그들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그 전쟁에, 처음엔 그들도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죽을 것이 환히 보이는 우금티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무엇이 그들을 피하고 싶었던 그 전쟁터로 내몰았는지 알고 싶었다. 모른 척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면할 수도 있었을 죽음.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그들은 죽음의 우금티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웃과 크게 다퉈본 적도 그리 없고, 윗사람들의 명령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고 살았을 그 사람들이!
나는 무엇이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꺾었는지, 그리고 그들을 전쟁터에서 죽어가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지, 금수만도 못한 삶과 인간으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도 역사 속에서 찾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참고삼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내 역사인식은 어디쯤인가? 나는 작품을 쓰는 내내 고민했다. 반복되는 싸움터 이야기는 자칫 지루해질 수가 있었고, 어린이들은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우리 편’인 농민군은 거의 대부분 싸움에서 졌다. 딜레마의 연속이었다.
또 작품의 무대인 1890년대는 격변의 시대였다. 국내외적으로 얽히고설킨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설킨 온갖 역사적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은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자면, 그 많은 사건들을 조금씩은 알아야 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길게 설명한다면 그건 역사 참고서가 될 위험이 있었다. 사방이 지뢰밭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팔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내 혼자 몸으로 쫓아다니며 써나가기엔 지역이 너무 넓었다. 다시 한번 몸뚱이가 하나인 것이 유감스러웠다. 그러나 나를 답답하게 짓눌렀던 이 모든 어려움은 한 아이와의 만남으로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그 아이를 한 역사서에서 만났다. 동학농민혁명을 기록한 한 <오하기문>의 전주성 입성 부분에 딱 한 줄 나타났다 사라진, 이름도 없는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은강’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다음은 그 아이의 몫이었다. 그 아이는 내 장편역사동화 <네가 하늘이다>에서 펄펄 살아 움직였다. 나는 지금도 그 아이와의 만남을 행복하게 기억한다. 그 아이를 통해 난 우리 역사에 대해 궁금해 하는 아들과 아들 친구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에 대해 해줄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간됨’과 ‘함께 살아가기’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역사 속의 아버지들에 대해서.
<저자 소개>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1990년 ‘아동문예’와 ‘새벗문학상’에 동화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어린이문화대상을 받았다. <국어>교과서에 동화 ‘펭귄가족의 사랑’이 실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