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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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겨울 42호
전라북도 완주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찾아서

전라북도 완주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찾아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동학로



 

  전라도 삼례는 동학농민혁명 전사(前史)를 이루는 동학교단이 주도한 대중적인 정치집회인 교조신원운동, 삼례집회(1892.11.)가 이루어진 곳이자 1894년 가을 일제군을 몰아내기 위한 반의의병전쟁의 기치를 올린,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가 단행된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1996년 10월 26일 완주군 삼례읍 입구 한내 강둑에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기념비가 서 있는 곳은 만경강 상류 한내 천변으로 갑오년 당시 ‘찰방다리’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봉로 215



설치조형물 / 쇠스랑을 움켜쥔 동학농민군의 팔뚝


설치조형물 / 추념의 장                                                                                          설치조형물 / 동학농민군 출진상


  삼례봉기 역사광장은 완주군과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민관협력을 통해 조성하였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전국적인 차원으로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한승헌)는 일제강점기 때 거세된 동학농민혁명이 지닌 민족운동으로서의 위상과 그 역사적 의미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어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 조성사업을 추진을 위해 기금마련에 힘을 기울여 2001년에는 5천만 원의 기금을 확보하였다. 이를 종자돈으로 완주군과 협력하여 2003년에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을 완공, 10월 10일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일을 기해서 제막하였다. 쇠스랑을 움켜쥔 동학농민군 팔뚝을 비롯하여 ‘역사와 나’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설치작품 ‘추념의 장’과 ‘동학농민군 출진상’ 등으로 구성된 역사광장은 방문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삼례역참 터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역참로 53 / 삼례동부교회



 

  삼례역참은 1892년 11월(음력) 수천 명의 동학교도들이 모여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동학(東學) 창도자 수운 최제우 신원(伸冤)을 요구하는 대중적인 집회가 열린 곳이다. 이때 동학교단의 서병학(徐丙鶴)이 ‘동학 교조 최제우의 신원 회복과 포교의 자유, 지방관들의 동학교도들에 대한 침탈금지’를 요구하는 소장을 작성하였고, 전라우도(全羅右道) 고부의 전봉준(全琫準)과 전라좌도(全羅左道) 남원의 유태홍(柳泰洪)이 전라감사에게 소장을 올렸다. 집회를 통해 교조신원(포교의 자유)은 이루어내지는 못하였으나 지방관들의 침탈을 금지하라는 전라감사의 감결이 각 읍으로 내려진 성과를 이루었다. 또한 이곳은 1894년 6월 21일(음력) 일분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간섭을 일삼자 동학농민군 총대장 전봉준은 1894년 9월 10일(음력) 삼례로 나와 대도소(大都所)를 설치한 후 전라도와 충청도 동학농민군에게 척왜(斥倭)를 위해 봉기하라는 통문을 돌려 반일의병전쟁의 기치를 본격적으로 올린 곳이다. 당시 삼례역참은 없어졌고, 현재 그 자리에 삼례동부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다.



대둔산 항전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공원길 55 / 형제바위



대둔산 전경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서 충청남도 논산시와 전라북도 완주군으로 이어지는 대둔산은 높이 878m로 천여 개의 암봉(岩峰)이 6Km가량 늘어선 암벽산이다. 대둔(大芚)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이곳은 산세가 웅장하고 가파른 절벽이 많은 험준한 산악지대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1894년 11월 7~8일(음력) 공주우금티에서 일본군·관군 등의 연합부대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동학농민군은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이후 동학농민군 주력부대는 남으로 후퇴하면서 논산황화대, 원평구미란, 태인, 전남 장흥 석대들, 충북 보은 북실 등지에서 전투를 벌였고, 흩어진 잔여세력들은 깊은 산속 등지로 숨어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충남 금산(錦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최공우(崔公雨) 접주와 잔여 농민군 3~40여 명이 대둔산으로 숨어들었고, 일본군과 관군이 이들을 토벌하려고 내려오자 대둔산 정상(頂上)인 마천대(878m) 남서쪽에 위치한 형제바위(720m)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1895년 1월 24일(음력)까지 약 50여 일 동안 항전하였다. 이들은 1985년 1월 24일(음력)까지 항전하다가 이곳에서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였다.



대둔산 항전지 / 형제바위


  이곳 대둔산 항전지는 1999년 원광대학교 사학과와 박물관의 조사·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후 2001년 10월 (사)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이사장 김정호)에서 형제바위가 올려다 보이는 등산로에 ‘동학농민혁명 대둔산 항쟁 전적비’를 건립하고 매년 11월 말 대둔산에서 일제에 굴하지 않고 최후까지 저항하다 희생된 분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례를 거행해오고 있다.


참고자료|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및 기념시설물 현황조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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