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네거리의 녹두장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한국에서 근대적인 국가폭력의 첫 예인 동학농민전쟁 때의 집단학살 방법은 (1)처형 대상자의 손발을 묶어 큰 구덩이에다 생매장하기, (2)손발을 묶어 산 채로 바다나 강, 우물 등에 수장하기, (3)갑오개혁 때 금지한 효수(梟首)형, (4)끈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교형(絞刑)과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장형(杖刑), (5)두꺼운 종이를 물에 적셔 입과 코를 틀어막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기 등등(이이화,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2』(교유서가, 2020, 253-254쪽)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집단학살도 있었다.
그 하나가 “정수리에 관솔을 박아 불을 붙여 관솔이 골속으로 타들어가게 해서 죽이기”(위와 같은 책)였다. 내가 이이화 선생에게 직접 들어 기억하기로는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관솔을 정수리에다 박아 넣고는 불을 붙이면 뇌 속으로 타들어가다가 두개골이 펑 소리를 내면서 으깨져 죽게 된다는 이치였다. 산속으로 끌고 가서 이런 처형을 했는데, 마을 아낙들은 펑 소리를 들을 때마다 죽은 사람을 헤아렸다고 들었다. 나중에 그 출처를 물었으나 이미 연로한 이 선생도 확인해주지 못했는데,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2』에서는 이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예도 있다. 정읍 출신으로 농민전쟁에 가담해 싸우다가 간신히 피신해 화전민으로 전전긍긍하던 끝에 보성군 율어에 정착한 한장수 노인은 토벌 일본군의 잔혹상을 이렇게 전해준다.
“근디, 일본놈덜언 우리 동학군허고 무신 철천지웬수가 졌다고 그리 악독하고 무작시럽게 혔는지 몰라.(...) 그놈덜언 동학군얼 생포하먼 총에 달린 칼로 갈가리 찢어쥑이고, 그 폴다리고 창새기럴 나뭇가지에 빨래 널디끼 널었어. 그라고 총 맞어 죽은 시체도 목얼 다 짤라가뿔어 장사도 못 지내게 맹글어뿌럿어. (....) 일본놈덜언 그 심읎는 두 여자럴 몽딩이로 때래 죽이고도 모질래서 애 밴 메누리 배럴 갈라 애럴 꺼내 사립에다 꺼꿀로 달아맸드란 말이시.” (조정래 『태백산맥 4』, 해냄, 등단 50주년 개정판, 2020, 69-70쪽) 한장수 노인의 일본군 잔혹담은 더 이어진다. “.... 일본놈덜언 처녀럴 각단지게 돌아감서 범하고넌 그것도 모지래 독사럴 잡아다가 처녀 거그다가 틀어넣어 쥑인 것이여.” (위와 같은 책, 71쪽)
내가 본 소설 중 이에 필적할만한 엽기적인 처형법은 중국과 옛 유고슬라비아에도 있었다. 노벨상 수상작가 모옌(莫言)은 소설 『탄샹싱(檀香刑, Sandalwood Death)』에서 세계문학사상 가장 엽기적인 처형방법을 치밀하게 소개해준다. 시대적인 배경은 중국대륙이 유럽 제국주의 세력들에 의해서 갈기갈기 잠식당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독일이 조차지로 차지했던 자오저우만(胶州湾)이 무대였다. 유랑극단장(쑨빙, 孙丙)은 자기 아내를 희롱한 독일인을 죽이고 피신해버렸으나 독일군들은 그의 아내, 두 아들,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쑨빙은 의화단에 가입해 반외세전투에 나섰으나 중국 관군이 독일군과 연합하여 의화단을 탄압하자 그 포로로 잡혔다. 쑨빙에게 내려진 판결은 그냥 사형이 아니라 가장 잔혹한 것이었다. 참기름에 잘 삶은 미끈한 박달나무를 끝이 뾰족하도록 다듬어 항문에다 쑤셔 넣어 내장을 안 상하게 목 뒤쪽(혹은 입)으로 관통시키게 빼내서는 십자가에 고착시켜 매달아 죽을 때까지 거리에 세워두도록 하는 탄샹싱이었다. 대개 5일간 숨이 안 떨어지고 신음하다가 죽게 된다는데, 사형수에게 더 긴 고통을 주려고 인삼탕을 먹여 오래도록 연명시켰다는 것이다. 이토록 잔혹하게 죽이게 만든 배후 조종세력으로 이 소설은 독일인임을 암시한다.
이런 고도의 살인기술은 아무도 집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베이징에서 40여 년간의 망나니 경력으로 황제의 포상도 받은 자오자(趙甲)야말로 실수 없이 탄샹싱을 집행할만한 위인이었다. 자오자의 아들은 백정이었고, 며느리는 쑨빙의 딸이었다. 그러니 사돈이 사돈을 죽이도록 한 것이다. 일말의 애국심이라도 있었던 자오자는 사돈이 혁명가이기에 예우하느라 장엄한 형벌 집행으로 후대에 전해지도록 기획했지만 그 지역 현령이 홀연히 민족의식이 살아나 쑨빙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찔러 죽여 버렸고, 며느리는 자기 생부를 죽이려는 시아버지를 찔러 죽였다.
중국에는 이것 말고도 능지처참(陵遲處斬) 처형법도 있었다. 형 집행리가 사형수의 핏방울만 맺힐 정도로 살결을 얇게 저며 서서히 죽어가게 하는 방법으로, 피부를 저미기를 하루 종일 5백회에 이르면 죽는다고 했다. 시신은 999조각으로 베어낸다는 이 끔찍 잔혹한 인간들!
역시 노벨상 수상작가인 유고의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는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Drina)』에서 탄샹싱과 똑 같은 처형법을 소개한다. 다만 박달나무 막대 대신 참나무에다 끝부분에는 쇠로 뾰족하게 창을 만들며, 참기름이 아닌 돼지기름을 칠한 게 다르다. 그걸 항문에 박아 넣어 천천히 쳐올릴 때 간, 비장, 횡경막, 폐, 심장을 다치지 않게 스쳐 어깨를 뚫고 솟아나도록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고서도 더 오래 살아남아야 사형집행인에게 보너스를 주는 것도 닮았다.
형벌이 잔혹하다는 것은 그 ‘범죄’가 엄중하다는 뜻인데, 그게 침략자의 시선으로는 범죄지만 고통을 당하는 측에서 보면 민족해방투쟁의 일환인 것이다. 그러니 제국주의자들의 시선으로 볼 때는 ‘가장 나쁜 죄질‘이고, 피침략 민족의 시선으로는 가장 고귀한 민족해방 투쟁인 것이다.
일본은 동학 참가자들을 철저히 소탕했는데, 그 이유는 미래의 조선 독립군의 싹을 뿌리 채 뽑으려는 침략의 흉계 때문이었다. 박완서가 “매국노(동학군 탄압 세력)는 친일파를 낳고, 친일파는 탐관오리를 낳고, 탐관오리는 악덕기업인을 낳고, 악덕기업인은 현이를 낳고...... 동학군은 애국투사를 낳고, 애국투사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장이를 낳고, 도배장이는 남상이를 낳고”(소설 『오만과 몽상』)라고 했듯이 투철한 무장투쟁 독립사상의 큰 뿌리의 하나가 동학농민전쟁이 아니던가. 그걸 간파한 일본이라 동학교도를 얼마나 철천지원수로 여겼겠는가.
촛불혁명의 시원인 횃불혁명을 창출한 녹두장군은 반제국주의 국민군 총사령관에 다름 아니다. 그를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서부극이나 사무라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격하시키려는 썩은 역사교육이 얼마나 오랫동안 시행되었던가. 농민전쟁 참가자들의 규율은 바로 촛불혁명 참가자들의 질서 정연함의 비조가 될 만하다. 오죽했으면 백성들이 관군은 뱀을 보듯이 피하면서 동학당에게는 스승을 만난 듯이 다가갔을까. 장군은 반제 민중혁명 사상을 그 당시의 농민들이 쉽게 터득할 수 있도록 대중화하고자 동학 교리에 의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에 침략 의도를 가졌던 모든 외세(제국주의)로 일본과 서구 열강을 염두에 두었다. 그가 보기에는 다수의 조정 대신들이란 “망령되고 구차하게 자기의 안전에만 빠져서 위로는 군부를 협박하고 아래로는 인민을 속여 일본 군대와 손을 잡아 삼남의 인민들에게 원한을 불러오고 임금의 군사를 움직여 선왕의 힘없는 백성을 해치려 하니 진실로 무슨 의도이며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이이화, 『전봉준, 혁명의 기록』, 생각정원, 2016)에 지나지 않았다. 녹두장군은 일본이 조선인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어 국력을 쇠잔시킨 뒤에 국권을 찬탈할 의도로 보았을 것이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4권에서 일본군들이 동학군뿐 아니라 민간인과 아녀자까지 얼마나 잔혹하게 탄압했는가를 보여주면서 죽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아름답고 눈물겨운 전설을 3권에서 펼쳐주고 있다. 조정래에 따르면 우리 민족사에서 근대 반제국주의 투쟁의 연원인 동학농민전쟁은 이후 의병을 거쳐 반제 항일무장투쟁-8.15이후의 남북통일민족자주 정권수립 투쟁-친일파 청산과 토지개혁 주장-민주화운동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나 북한의 리기영의 『두만강』 등 민족사를 다룬 대하소설들 역시 다 이런 흐름에서 일치하고 있다.
세계사에서 독립운동(national liberation movement)이란 ‘민족해방운동’과 일치시키는 걸 기본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민족해방운동이란 세계사에서 제국주의의 시대에 직간접적으로 침탈당하기 시작한 이후 약소국가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총칭하는 술어에 다름 아니다.
홉스봄이 『제국의 시대-1875-1914』(원제 ‘The Age of Emoire-1875-1914’. 한길사, 1998)라고 규정한 이 기간에 일어났던 모든 민족해방투쟁을 그 나라의 독립운동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건 지극히 보편적인 상식이다. 물론 그 시기 설정은 나라와 민족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겠으나 세계사에서 제국주의 세력들이 남의 나라를 침탈하기 시작한 이후의 모든 반제 투쟁이 ‘독립운동’인 점에서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 민족의 주체적인 국권을 유지하는 걸 훼방당하는 일체의 제국주의 세력에 저항하는 모든 형태의 활동이 ‘독립유공자’가 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성립할 수 있다. 항일투쟁만이 독립운동이 아니라 일체의 제국주의적인 세력에 대한 투쟁이 다 독립운동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사에서 진정한 ‘독립운동가 이념 지향’이란 그 첫 조건이 ‘반제투쟁 정신’일 것이다. 일본만을 향한 투지가 아니라 한반도의 자주권을 넘보는 모든 제국주의 세력 일체에 대한 투쟁정신이 ‘독립운동의 기본’일 것이다.
그런데 분단 한국에서는 오히려 이런 보편성을 외면한 채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사들을 제외하는 걸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이건 세계사적인 ‘민족해방투쟁사의 원칙’을 도외시한 것이다. 일제 침탈은 부인하나 미국이나 다른 서양 세력의 침탈은 묵인 내지 용인한다는 따위의 정신은 ‘독립운동’의 기본을 벗어난 반민족행위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계열이나 동학농민전쟁 계열의 투사들을 제외시킨 채 분파적인 ‘독립유공자’를 고집하는 것은 진정한 독립정신에서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남북 분단시대를 극복하려면 우리부터 먼저 뚜렷하고 명분 있는 ‘독립운동 정신’에 입각한 ‘독립운동가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녹두장군이 오늘에 다시 등장한다면 오늘의 독립유공자들에게 뭐라 할까?
그의 정신은 바로 오늘의 우리 남북 평화통일과 민주정치의 정착화를 위한 적폐청산 시기에 너무나 절박하다. 이 가치 혼란의 시대에 녹두장군을 자주 만나고 싶다. 녹두장군 옆에서 연인과는 사랑을 맹세하고 동지와는 투쟁을 다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서울이 든든해질까.
이이화 선생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제 녹두장군은 특정지역에서만이 아닌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 동상에다 한국 최초의 반제국주의 투사의 월계관을 달아주고 싶다. 동학농민전쟁과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독립유공자라는 위폐를 내릴 때 우리의 역사는 새로운 막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임헌영(任軒永) : 1941년 경북 의성 출생. 중앙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동 대학 국문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불확실시대의 문학』,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 『한국현대문학사상사』, 『변혁운동과 문학』, 『문학과 이데올로기』, 『분단시대의 문학』, 『문학의 시대는 갔는가』, 『창조와 변혁』, 『우리 시대의 소설 읽기』, 『우리 시대의 시 읽기』 외 20여 권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