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기념공간 조성에 관한 단상
백진 서울대 교수
거대역사담론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수십만 년을 여행하며 인류의 진화를 훑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별한 점으로 허구적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언급되기도 하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발판으로 이제는 신적 존재로 부상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조금 다른 신소리를 하고 싶다.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함은 다른 데에 있다. 족벌이나 부족을 넘어서서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상황을 풀어가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라는 식의 등가적 균형이 아닌 상황적 균형을 찾아가는 고차원의 정의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공멸이 아닌 공동의 선에 대한 감(感)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의나 공동의 선은 역사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하여도 여전히 그것은 인간이 인간임을 증거 하는 이정표로 빛을 발하고 있다. BC 472년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이라는 작품을 올리던 그리스의 비극극장은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공동의 자각을 만 오천여 시민들 앞에 펼쳐 보인 것이다.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 못잖은 인류의 신기한 발명품이다.
근현대에 들어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인권 관련 기념공간도 그러하다. 고도의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핵심 장치 중 하나이다.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 차별 없는 상호호혜, 자유, 평등을 지향하는 선각자와 민초들의 투쟁은 관성에 젖은 역사의 물꼬를 다른 방향으로 트는 변곡점이다. 기념공간은 사건이 벌어졌던 순간의 승자와 패자의 위치를 다시 조정하고, 공동의 선을 정립하는 반성의 장을 시간의 뒤안길에서 열어준다. ‘뒤안길’은 사실 이중적이다. 한편으론 뜻깊은 것이라도 잊히도록 만든다. 야속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현재’가 보지 못했던 진실을 드러낸다. ‘현재’란 눈앞에 모든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지만 때론 불투명의 베일에 쌓여있는 경우도 많다. 비로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가 보이는 것은 오히려 시간의 뒤안길에서인 것이다. 누란지위의 아테네를 구하고자 살라미 해협에서 혼신의 힘으로 싸워야 했던 시민군이 그 전쟁을 반추해보고 인류공동의 삶의 가치를 고민하게 된 것은 10여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안길에서였다. 천재적인 작가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아크로 폴리스 남사면의 디오니소스 극장이 바로 ‘뒤안길’의 진실을 보는 장을 열어준 것이다. 기념공간 역시 ‘뒤안길’의 무대이다. 망각이나 허상이 아니라 진실이 마침내 보이도록 개안시켜주는 공적중재의 장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새삼스레 발견하게 하는 공동의 자각이 일어나는 곳이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념공간이 이미 황토현, 석대들 등에 들어섰다. 주제넘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추모의 마음을 받아주고, 미래를 향한 인류보편가치를 일깨우는 진취성을 드러내는 기념공간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을 위치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 번을 가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글로 말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회자되는 그런 기념공간이 아직 조성되지 못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공간이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것은 그 정신을 공유하고 지지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꺾고 실망을 안기는 일이기에 안타깝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더 다듬어나갈 기회가 있을 것이며, 또 새로 조성될 기념공간 중 신기원을 이룩하는 것도 나올 것이라고 보이기에 여전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뛴다.
이런 점에서 고창 무장기포지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되는 기념공간은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폐부를 찢어놓는 천추의 억울함은 티끌로 날려버리고 용서, 화해, 포용의 통판석을 마음껏 밟고 이제 자유와 평등의 시대로 전진하라는 동학농민군의 옹골찬 음성이 들리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현재는 물론 실망스럽다. 눈발이 몰아치는 어느 겨울날 방문한 무장기포 기념공원은 조각, 표지석, 비문, 포토존, 화장실 등이 여기저기 난립하여 조악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94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거칠게 변형시켜온 이형(異形)들이 마치 원형인 것처럼 눈을 가리고 있었다. 구암천이 근대화 과정에서 직방화되었고, 국도 22호선이 관통하면서 남과 북으로 갈리었다. 천변의 기포지는 표고가 1.5미터 이상 복토되었으며, 수구막이 숲도 사라지고 없다. 천변 모래밭의 농민군을 향해 버드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수구막이 언덕에서 “억조창생이 의논을 모아 지금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을 생사의 맹세로 삼노라”는 포고문을 쩌렁쩌렁 낭독하던 당시를 그려보는 상상의 나래를 도무지 펼 수가 없었다.
사라진 것을 복원하는 것은 사실은 창작이며 시뮬레이션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복원의 개념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근대화의 가위로 싹둑싹둑 재단해버린 현황이 개념 없는 일을 벌인 것이라는 것도 명확하다. 완전복원과 현황유지 사이의 제3의 길을 조심스럽게 모색해야 한다. 지적도, 지표조사, 항공사진, 구술채록, 민요 등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주요부 원형을 일부 복원하는 것이다. 복원된 부분과 근대화 과정에서 투박하게 변형된 부분이 적나라한 대조를 이루어 1894년으로 빠져들어 갔다가 1970년대로, 다시 2021년으로, 그리고 2100년으로 부유하도록 상상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거기에 동학농민군의 기포라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얽히며 우리를 사유와 자각의 순간으로 인도할 것이다.
서두에서 그리스의 비극극장 이야기를 꺼냈었다. 고도의 정의를 고민하던 인류의 위대한 문화자산이다. 21세기의 인류가 내어놓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위대한 문화자산은 인권 관련 기념공간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동아시아에서 맨 먼저 주창한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세계사적 위상을 갖는 운동이다. 기념공간 조성에 있어 더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세계시민사회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장소가 나와야 할 때이다. 무장기포지에 들어설 동학농민혁명 기념공간이 그 대표적 사례가 되길 고대해본다.

백진 :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예일대와 펜실바니아대에서 건축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펜실바니아 주립대, 동경대 등에서 재직한 후 2010년부터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창군 동학농민혁명 기념공간 조성사업의 기본구상 및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수행하였다. 저서로는 Nothingness: Tadao Ando’s Christian Sacred Space (Routledge, 2009), Architecture as the Ethics of Climate (Routledge, 2016), 풍경류행 (효형출판사, 2013)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