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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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 47호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 <국가등록문화재>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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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군 편지 -


소장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증 : 한달문의 손자 한우회



▣ 동학농민군 편지(한달문 편지)


  문화재청은 「동학농민군 편지」(한달문 편지)를 2021년 12월 7일 문화재등록 예고한 후 2022년 2월 10일 국가등록문화재 제825호로 등록하였다. 이 편지는 전라도 화순에서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나주 감옥에 갇힌 한달문(韓達文, 1859~1895)이 고향에 계신 자기 어머니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편지의 크기는 가로 40㎝, 세로 21.2㎝이다.


  한달문은 유년시절부터 영민하여 젊은 나이에 무관의 벼슬을 하였으나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외세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자행되는 상황에서 보국안민의 중요성을 깨닫고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894년 9월 전라도 삼례에서 단행된 2차 봉기에 참여하였으며,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주로 나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1894년 12월 동학농민군과 민보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개된 나주 동창의 유기 모시굴 점등(현, 전남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크게 패배하였고, 이때 참전했던 한달문이 체포되어 나주 감옥에 갇혔다. 이 시기인 1894년 12월 28일경 자기 어머님에게 돈 300냥과 의복을 지어서 보내달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가 이번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것이다. 그는 3월 30일 나주 감옥에서 풀려나 귀가하였으나 옥살이 하던 중 맞은 곤장 휴유증 즉 장독(杖毒)으로 감옥에서 나온 지 이틀 후인 4월 1일 세상을 떠났다.



∎편지 내용


어머님께 올리나이다

제번하고 모자 이별 후로 소식이 서로 막혀 막막하였습니다.

남북으로 가셨으니 죽은 줄만 알고 소식이 없어 답답하였습니다.

처음에 나주 동창 유기 모시굴 정등에서 죽을 고생하다가 한 사람을 만나서 소자의 토시로 신표를 하여 보내어 어머님 함께 오시길 기다렸더니, 

12월 20일 소식도 모르고 이날 나주옥으로 오니 소식이 끊어지고 

노자 한 푼 없으니 우선 굶어 죽게 되니 어찌 원통치 아니 하리요. 

돈 300여랑이 오면 어진 사람 만나 실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주시오. 그간 집안 유고를 몰라 기록하니 어머님 몸에 혹 유고 계시거든 옆 사람이라도 와야 하겠습니다. 

부디부디 명심 불망 하옵고 즉시 오시기를 차망 복망하옵니다.

남은 말씀 무수하니 서로 만나 말 하옵기로 그만 그치나이다.


1894년 12월 28일 달문 상서


의복 상하 벌, 보신 한 벌, 토시 한 벌, 주의 한 벌, 망건, 노자 2량

온 사람과 함께 가 과세를 편히 할 터이니 혹 기고가 있어 못 오면 옥동 가고골 한기수에게 의복지어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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