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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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 51호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찾아서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찾아서


일시 : 2023. 1. 18.(수)  

장소 :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실_(근현대사미술관 담다 내(內))


정정숙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소식지 『녹두꽃』(통권51호) 지역대담에는 정정숙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을 모셨다. 정정숙 회장은 천도교 교화관장, 사회문화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20년 5월에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창립하여 공부방 운영, 학술발표회, 유적지탐방, 전시회, 기념식, 문화행사 등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기획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군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893년 이천의 동학교도 수천 명이 동학에 대한 탄압과 관리들의 탐학에 항의한 것을 시작으로 1894년 가을(9월)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때 죽산과 안성 관아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통권 51호) <지역대담>에는 경기도 용인시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을 위해 애쓰시는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정정숙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녹두꽃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정정숙입니다. 저는 천도교중앙총부에서 23년간 근무한 후 2019년에 퇴직하고, 지금은 용인에서 <근현대사미술관 담다>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는 주로 대한민국 근·현대 그림을 전시하는데,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독립운동, 5·18민주화운동, 한반도 평화 등에 관한 작품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미술관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인문학 강좌, 작은 음악회, 전시작품 투어 등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미술관을 문화예술 복합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 네, 회장님. 이렇게 뵈니 감회가 새롭습니다.(웃음) 회장님이 천도교중앙총부에서 근무하시던 2018년이었지요?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제정되기 전이라 우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서 매년 10월 전국을 순회하면서 ‘기념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2018년 기념대회는 기념재단과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천도교 이렇게 세 기관이 공동으로 강원도 홍천군 자작고개전투지에서 개최했었는데, 그때 기념대회 추진하느라 회의를 자주했었지요.


답) 맞아요, 그랬었지요. 기념대회 장소가 강원도라 회의를 하려면 하루가 꼬박 걸리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금보다는 더 혈기 왕성하였고,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제정하기 위해 기념재단, 유족회, 천도교가 힘을 모아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전국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었죠. 저도 기념대회를 추진하는 실무대표로 참석하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특히, 당시 문부장님과 의견차이로 자주 다투었던 일도 있었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부장님이나 저나 참 열정이 넘치던 때였어요. 그래서 보다 많은 내용을 기념대회에 담고자 서로 밀고 당기고를 많이 했었어요. 강원도에서 열린 기념대회 이후 저는 천도교중앙총부 실무를 그만두고 경기도 용인으로 와서 지금까지 <근현대사미술관 담다> 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갑고 정겹습니다.



문) 현재 전국 각 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을 위해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가 35개입니다. 기념사업 단체 창립의 흐름을 보면 대체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을 위해 10여 개 단체가 창립되었고, 2004년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여 개 단체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2019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면서 5개 단체가 창립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천도교중앙총부 실무에서 물러나 경기도로 오신 후 준비과정을 거쳐 2021년에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창립하셨지요? 창립 전후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2019년에 용인에 미술관을 개관하고부터 지역사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각 지자체에서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하느라고 기념사업회, 계승사업회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경기도는 기념사업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9년부터 미술관에서 동학을 주제로 시리즈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2020년 5월 채길순 교수님을 초청하여 “길에서 만난 동학”이라는 주제로 인문학강좌를 개최하였고, 이 강좌에 참석자들을 중심으로 발기인대회를 가졌습니다. 2020년 7월 열린 총회에서 제가 회장에 추대되었고, 2021년 3월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단체등록을 마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 경기도 지역에 동학(東學)이 전파된 것은 굉장히 이른 시기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천도교회사초고』(天道敎會史初稿) 기록에 따르면 동학 창도 초창기 때인 1862년에 경북 경주를 비롯한 경상도 지역 등 16곳의 접주를 정했는데, 이때 대구·청도 및 경기도 접주로 김주서(金周瑞)를 임명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이후 경기도 지역에서 동학 교세가 급격하게 확산된 것은 1880년대 초로 안교선(安敎善)이라는 분이 중심적인 활동을 펼쳤고, 1890년대 동학교도가 수만 명으로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지역에 동학이 전파되던 초창기와 1880~1890년대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천도교창건록」을 보면 동학이 경기도에 처음으로 포교된 것은 1862년으로 보입니다. 1860년 4월 5일(음), 경주 용담에서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 선생은 이듬해 1861년부터 본격적으로 포교를 전개하였는데, 동학은 새로운 삶을 갈구하였던 민중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아 수많은 사람들이 동학에 입도하였습니다. 입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수운 선생은 1862년 경북 흥해에서 동학 최초의 조직인 접주제를 실시하게 됩니다. 이때 경기 지역에도 접소가 설치되어 본격적인 교단 조직체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천도교회사초고』(天道敎會史初稿) 기록에 따르면 1862년 각 지역에 접주를 정했는데, 이때 대구, 청도를 겸한 경기 접주로 김주서(金周瑞)를 임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도교백년약사』에는 경기지역 접주로 이창선이 임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기록에서 접주의 이름은 다르지만 접주를 둘 만큼 경기에도 교세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1883년에 손병희, 박인호 등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의 인물들이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을 방문하고 지도를 받았는데, 이때 경기지역에서는 안교선과 서인주 등이 참여하였으며 이후 안교선은 안교백, 안교강 등과 수원을 비롯하여 경기 지역에 동학을 포교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안승관, 김내현, 이민도 등이 수원지방의 유력한 지도자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한편 서인주는 1883년 3월 손병희, 김연국과 함께 해월 최시형을 방문한 이후 동학교단에 투신, 공주교조신원운동을 비롯하여 동학농민혁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안교선은 호남 출신으로 해월 최시형이 1883년 여름 경주에서 『동경대전』을 간행할 때 윤상오와 함께 유사(有司)로 참여하였습니다. 서인주는 해월 최시형과 함께 동학을 창시한 수운 선생에게 수학하였지만 교단 초기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포덕천하(布德天下)와 광제창생(廣濟蒼生)에 크게 공감을 받고 동학에 입도하였으며, 서병학(徐丙學)과 함께 동학의 의식과 제도를 제정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수원을 중심으로 한 경기지역에 동학을 포교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로인해 수원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남부지역에 동학 교인이 수만 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크게 확장됩니다. 1880년대 후반에는 경기지역의 동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대접주(大接主), 대접사(大接司), 접주(接主), 육임(六任) 등의 교단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교세를 바탕으로 경기지역의 동학은 1892년과 1893년 수운 선생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서인주와 서병학의 주도로 전개된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에도 적극 참여하게 됩니다.



 

문) 네, 얘기를 조금 진전시켜 1894년 갑오년 전후 경기도 상황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경기도 동학 교인들은 1892년과 1893년에 전개되었던 충청도 공주 교조신원운동, 전라도 삼례 교조신원운동, 광화문 교조신원운동에 참여하였고, 1893년 3월 10일 보은 장내리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취어」, 『동학란기록』(상) 3월 27일 보고를 보면 “26일 수원과 용인 등지의 동학교인 3백여 명이 보은 장내”로 왔으며, 28일 보고에는 “수원접에서 6,7백여 명이 장내리 삼마장 장재평에 기를 세우고 진을 풀었다”, 30일 보고에는 “어제 들어온 접인들이 장재에서 광주 교인 수백 명과 함께 장내에 이입해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은 척왜양창의운동에 참가한 동학 교인이 27,000여 명이었는데 이들 중 경기도 지역에서 참가한 동학 교인이 2,660여 명으로 전체의 약 10%에 이릅니다. 그리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충청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죽산과 평택 등 경기남부지역에서 동학군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데 수원, 죽산, 안성, 이천, 용인 등지에서도 동학농민혁명군들의 활약이 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는데도 여태까지 경기도에 기념사업회가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늦게나마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기념사업회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리 기념사업회는 창립 이후 매월 한 번씩 동학공부방을 운영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공부하고, 동학유적지 답사를 통해 회원 간 결속력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학술발표회, 전시회, 체험, 유적지 탐방 등을 펼쳤습니다. 그동안의 성과라고 한다면 ‘경기도 지역 동학농민혁명 학술발표회’를 통해 용인지역의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사에 대해 지역민들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답사를 통해 「양호우선봉일기」에 나오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활동 거점이었던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133-28, 133-37번지 일대를 회원들이 찾아낸 것입니다.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참가했던 분들이 그곳에 표지석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이었습니다. 이처럼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경기지역에 대한 학술연구, 유적지 발굴, 표지석 건립, 청소년 교육체험, 동학관련 작품·사진·유물 전시사업 등을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조직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일도 병행해나갈 계획입니다.



 

문) 네, 회장님. 회장님께서 일을 잘하시니까 어디를 가시든 일이 회장님을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웃음) 이번에는 동학농민혁명의 현재화 또는 미래화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19세기 중엽 동학이 창도되던 시기는 문명사적 전환이 요청되던 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으로는 중세 신분제가 붕괴하면서 근대적 질서가 도저하게 형성되던 때였고, 밖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로 들어선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세계 각국을 침략하면서 정치정세가 격동하던 때였습니다. 이와 같은 격변의 한 가운데에서 시천주(侍天主) 후천개벽(後天開闢)을 골자로 동학(東學)이 창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60여 년이 지난 지금 문명적 대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동일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연한 이기주의, 코로나 팬더믹, 기후 온난화 등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1860년 동학이 창도되던 때의 시대적 상황과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상황을 면밀히 살펴서 그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점에 대해 회장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더믹 현상은 거의 3년간 지속되었습니다. 3년 동안 우리는 자본주의 근대문명 하에서 인간이 무모하게 성장과 발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자연 등에 범한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연,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모심(侍)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이루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문명의 전환은 바로 의식의 전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모시고, 자연을 모시고, 하늘을 모시는 것 바로 이것이 동학이 주는 교훈입니다. 지구 온난화라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하여 2050탄소중립 구호가 나오고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여러나라들은 기후위기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대체에너지 준비를 해왔습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대체에너지 전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의 위기가 다가오는 이때 우리는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대전환을 위해 동학이 주는 모심(侍)의 교훈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동학 정신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살 수 있는 희망이라고 봅니다.



김성인 <근현대사미술관 담다> 이사장과 정정숙 경기기념사업회 회장


문) 네, 회장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19세기 중엽 동학이 창도되었고, 19세기 말인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났지만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동학의 가르침은 여전히 큰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초입, 심각한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더믹 위기를 맞아 동학에서 길을 찾자는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점에 대해 회장님의 생각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오늘도 경기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동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앞으로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 분 두 분 동학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많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법입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이런 분들이 모여 희망을 만들고 역사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지만 그것이 소중하기에 또 그것이 희망이기에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집중할 수 있으며 또한 그 길을 갑니다. 그 길에 어린이, 젊은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시대에 맞는 모심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동학에서 길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소식입니다.



문) 네, 회장님. 경기도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은 물론이고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제반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노력하고 계시는 회장님을 모시고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할 얘기가 태산 같이 많으시겠지만 지면 관계상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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