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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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봄 51호
동학농민혁명 전시관(박물관)

동학농민혁명 전시관(박물관)

- 전국에서 민중·민족 항쟁이 일어나다 -



 

  동학농민혁명 전시관(박물관)은 ❶민중의 힘으로 사회를 개혁하다 ❷전국에서 민중 민족 항쟁이 일어나다 ❸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 ❹동학농민군의 고난과 희생을 되새기다 한국 근대 민주정신의 큰 줄기가 되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호에는 전국에서 민중 민족 항쟁이 일어나다 파트를 지면으로 소개한다.



PART 2. 전국에서 민중·민족 항쟁이 일어나다



 

  1894년 봄, 전라도를 중심으로 거세게 타오른 동학농민혁명이 경상·충청지역으로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특히, 동학농민군이 전주성 함락한 후 조선정부의 파병요청으로 청나라 군대가 조선으로 출병하였고, 대륙침략의 기회를 엿보던 일본군도 조선으로 진출하였다. 나아가 일본군이 7월 23일 경복궁 무단점령, 친일내각 수립하여 청일전쟁을 도발하였고, 혁명의 불길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반일 민족항전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일본이 은폐한 경복궁 무단점령



 

  청·일 양국 군대의 조선 진출이라는 급박한 상황에 직면한 조선정부는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 측에 청일 양국 군대의 철병을 요구할 명분을 위해 전주성을 비워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른바 전주화약에 따라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서 물러났고, 조선정부는 청나라와 일본 측에 철병을 요구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급기야 일본은 조선의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청나라 측에 조선 정치개혁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청나라가 이에 반대하자 일본은 경복궁을 무단으로 점령하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당시 일본군은 경복궁 무단점령의 이유를 “조선군이 경복궁 근처를 지나가는 일본군을 갑자기 공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응했다.”라는 억지주장을 폈다. 그러나 1994년 경복궁 강점의 실상을 담은 『일청전사』라는 책이 발견되면서 경복궁 무단점령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도발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군의 경복궁 무단점령 경로



전국에서 일어난 혁명



전국 동학농민혁명 봉기 현황


  1894년 봄, 호남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경상도와 충청도 지역으로 확산되어 관군이나 유학을 공부한 양반들과 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31일 전라도의 수부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은 이른바 전주화약에 따라 관민상화의 원칙에서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를 설치, 근대적인 폐정개혁을 단행하였다. 전라도의 집강소 활동의 영향으로 충청도, 경상도, 경기도에서도 농민항쟁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7월 충청도·경상도, 9월 강원도·전라도·경상도 등지에서 반일항전의 기치가 올랐다. 마침내 10월 8일 호남의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삼례에서 제2차 봉기를 단행하였다. 이후 동학교단에서도 일본군을 축출하기 위해 봉기하라는 전국 대동원령(기포령 起包令)을 내렸고, 황해도에서도 동학농민군의 반일항쟁이 본격화하였다.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한 투쟁



 

  반일항쟁의 기치를 들고 일어난 동학농민군은 일본군만이 아니라 조선의 관군과 각지의 유생들이 조직한 민보군과도 싸워야했다. 이 무렵 반일항전에 참여한 동학농민군은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직접 전선에 나선 동학농민군 이외에도 수많은 백성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반일항전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동학농민군에게 군량(軍糧)을 지원하거나 동학농민군 주둔지에 먹거리를 제공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반일항전에 참여하였다.




 

황해도 지역에서 만난 동학농민군, 백범 김구


  백범 김구(당시 이름은 김창수金昌洙)는 황해도 해주부와 장연부 사이에 위치한 벽성군 팔봉산 부근에 살고 있었다. 당시 열여덟 살로 동학농민군으로 활동하였다. 황해도와 평안도에 속해있는 책임자 중 나이가 어려 ‘아기접주’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차별대우를 없애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말에 김구는 동학에 입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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