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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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사)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를 찾아서

(사)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를 찾아서


일시 : 2023. 8. 23.(수) 

장소 : 서울 종로구 서린동
전성준 / (사)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문) 안녕하십니까. 이번 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 <지역대담>에 (사)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 전성준 사무총장님을 모셨습니다. 총장님, 먼저 『녹두꽃』 독자 여러분께 인사와 함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녹두꽃』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사단법인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전성준입니다. 저는 정읍에서 태어나 2013년부터 동학농민혁명 최고지도자 전봉준 장군님의 역사적 위업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사)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에서 실무 책임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에 나름대로 힘을 보태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인가를 받은‘사단법인 전봉준’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문) 총장님을 만나면 늘 제 머릿속에는 전북 정읍시 이평면 조소리 전봉준 장군 고택 인근 ‘전봉준 장군 단비’ 주변의 잡풀을 제거하시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총장님의 선친 전 만자 길자 어르신의 굽은 등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푸른 이끼가 들어붙은 “갑오민주창의통수 천안전공봉준지단” 비석도 함께 떠오릅니다. 총장님 선친께서 돌아가신 후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총장님께서 단비를 살피고 계시지요?
답) 네, 그렇습니다. 1945년 8.15 광복이후 정읍과 부안·고창 천안전씨 문중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봉건지배와 일제침탈에 맞선 근대사의 선각자 전봉준 장군의 정신을 숭모하기 위해‘전봉준 장군 단비 설립 모금’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아쉽게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53년 정전협정이 맺어진 후 단비 설립을 위한 모금이 다시 추진되어 혁명 1주갑이던 1954년에 마침내 전북 정읍시 이평면 조소리에 단소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아버지께서 2006년 작고하실 때까지 묘지를 관리하는 한편 매년 전봉준 장군 기일에 기제사를 모셔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부족한 제가 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 사단법인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장군님의 선양사업과 묘역관리 및 제사를 모셔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100주년 이후부터는 매년 전봉준 장군께서 순국하신 4월 24일 단소에서 장군님 순국 추모제를 거행해오고 있습니다.

전봉준 장군 추모제(정읍 이평면 / 전봉준 장군 단비)
문) 총장님 선친께서 관리해온 전봉준 장군 단비(허묘, 빈 무덤)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894년 겨울, 공주 우금티 등 전국에서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 등에게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한 후 조선은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급기야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을사늑약(1905) 일제강점(1910)으로 이어져 민족적 암흑기를 맞습니다. 시대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 시기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기념사업은 동학농민군 측의 기념사업이 아니라 농민군을 진압한 관군 측 장졸(將卒) 순의비(殉義碑)나 충절비(忠節碑) 등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동학농민군 측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는 최초 기념시설물로 건립된 것이 바로 전봉준 장군 단비입니다. 단비가 건립된 경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네,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 그러니까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께서 살았던 고택지로부터 약 500m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장군님의  작은 묘지(전봉준 장군의 시신이 없는 빈 무덤)가 있고, 묘지 앞에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甲午民主倡義統首天安全公琫準之壇)”라고 새겨진 5척 가량의 작은 돌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묘소와 단비는 전봉준 장군의 위국단심을 기리기 위하여 동학농민혁명 60주년이던 1954년 11월 15일 천안전씨 문중에서 설단하였고, 단비의 문구는 김제출신 사학자 김상기 박사가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2004년 5월에 건립된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 기(甲午民主倡義統首天安全公琫準之壇 記)’와 그 이듬해인 2005년 5월 세워진 ‘설단공적기(設壇功績記)’에 따르면 “6.25 동란(한국전쟁)이 멈춘 지 1년밖에 안된 상황에서 천안전씨 종친들이 장군님의 위국혼(爲國魂)을 기리기 위해 1954년 11월 15일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을 창동리에 건립하고, 추도식을 거행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전봉준 단비(전북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산 10-3)

문) 네, 저는 1986년 봄에 단비를 처음 답사하였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는 제가 몸담고 있던 문학동아리에서 동학농민혁명 전적지를 답사했었는데, 그때 이곳을 들렸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단비 주변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소나무 숲 사이에 다 허물어져 가는 작은 묘지, 그리고 그 앞에 키 작은 비석 하나가 더없이 쓸쓸하고 적막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대중적인 역사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고 이후 이곳 단비에 수많은 시설물들이 들어섰는데.... 총장님께서 이들 시설물 건립 경위를 잘 알고 계시지요?

답) 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이전에는 사람들이 단비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었던 1994년 5월 11일 천안 전씨 문중에서 ‘전봉준 장군 유적보존회’를 구성하였고, 뜻있는 종인들이 성금을 모아 이곳 임야를 구입하여 묘역을 확장․정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동학농민혁명 110주년이던 2004년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이 제정․공포된 후 천안 전씨 문중의 뜻있는 종인들의 성금으로 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보강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이 묘역에는 단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갑오민주창의문〉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포고문’이 한글로 해석되어 새겨져 있고, 그 왼쪽에는 전봉준 장군 얼굴(판화 형태)과 새야새야 파랑새야 라는 노래말이 새겨진 조각상이 있습니다. 우측에는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사적비(甲午民主倡義統首天安全公琫準史蹟碑〉가 세워져 있고, 단비와 봉분 앞쪽에는 전봉준 장군이 13세 지었다는 한시 ‘백구(白鷗)’와 ‘운명(殞命)’시비(詩碑)가 서 있습니다.


문) 사단법인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에서 매년 4월 24일 전봉준 장군 순국일에 추모제를 거행해오고 있지요?

답) 전봉준 장군께서 순국하신 날이 1895년 음력 3월 30일, 양력으로 환산하면  4월 24일입니다. 문중에서 단을 설립한 1954년부터 제 부친께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까지 장군님의 기제사를 매년 음력 3월 30일 집에서 모시고, 당일 새벽에 단소에 가서 묘지 제사를 모셨습니다. 지금도 달구지에 제사음식을 싣고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한 천안전씨 대종회 차원에서 정읍‘황토현 기념일(당시에는 매년 5월 8일을 기해 기념행사 거행)’에 단소에서 종인들을 모시고, 시향제를 지냈습니다. 후에 1994년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봉준장군 묘역 성역화 사업일환으로 ‘유적보존회’가 출범하여 매년 양력 4월 24일을 장군님의 제삿날로 정해 추모제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단법인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로 확대개편, 장군을 기리는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으며, 문중에서 지내는 기존의 시향제를 국민적 추모제로 확대하여 매년 양력 4월 24일에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문) 네, 지난 2018년 4월 24일 전봉준 장군 순국일에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제막식이 있었습니다. 이 동상이 제막되기까지 총장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 가운데, 종로 네 거리에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이 건립되어 감회가 남다르시죠?

답) 네, 2017년 봄에 설립된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에서 사무총장이란 중책을 맡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8년 4월에 종로 네거리에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을 건립하였는데, 후손으로서 감회가 벅차고, 새롭습니다. 그리고 동상 건립을 위해 고 박원순 서울시장님으로부터 서린동 그 자리, 현재 동상이 세워진 땅을 무상으로 받아낸 문부장님의 공로를 내내 잊지 않고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동상은 정부나 기업협찬을 받지 않고 시민단체와 일반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웠는데, 민의 대표 녹두장군 동상을 국민 성금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에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이 건립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29년 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장군님의 혁명정신과 그 가치를 오늘에 계승하여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모두가 나서라는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전북 정읍시와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에서 2011년부터 매년 5월 동학농민혁명 황토현기념제 때 동학농민혁명 대상을 시상하는데... 총장님께서 제11회 대상을 받으셨지요?

답) 저는 정읍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니면서 매년 열리는 황토현 동학농민혁명 기념제에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전봉준장군의 묘역에서 제사에 참여하였으며, 아버지께서 작고하신 후에 전봉준장군 후손(양증손자)으로서 전봉준장군의 부친 묘가 있는 선영묘 및 단소를 관리하고 있으며, 기제사 및 추모제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봉준장군 유적보존회 사업을 이어받아 2013년부터 사단법인 전봉준장군 기념사업회로 재단을 설립하여, 확대개편을 하였으며,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하고 전봉준장군을 기리는 사업을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1년 사단법인 전봉준을 설립하여 현재까지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전국에 흩어진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를 한곳으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 및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종로 한복판에 전봉준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자 사단법인 전봉준장군 동상건립위원회를 설립하는 일과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일 등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동상건립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아서 사무실을 제공하는 것부터 사무직원 참여, 동상 건립기금 마련, 동상 제작과정 참여 등등 동상이 건립되기까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고 해온 일을 평가하여 부족한 제게 영광스러운 제11회 동학농민혁명 대상자로 선정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멋쩍으면서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마땅히 받아야할 분이 받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을 해온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사)전봉준 공동대표로서 다양한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 및 계승․발전을 위한 기념사업을 직접 추진하시거나 참여하시고,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으로 기여해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총장님께서 그동안 기념사업을 수행해오면서 느낀 점 또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녹두꽃』지역대담에 초청을 해주시고, 부족한 저의 의견을 경청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많은 동학농민혁명 관련지역 및 단체를 방문하고, 여러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저의 소회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먼저 2008년 ‘화해와 상생’을 위한 동학농민혁명 전국 기념대회 때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충남 태안군 앞바다 기름유출로 태안군민들이 시름에 빠져있을 때 ‘화해와 상생’이란 슬로건으로 행사를 개최했을 때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여 나름대로 군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동학농민의 전국화에 기여한 것이 뜻깊은 기억으로 남습니다. 한편 초기 동학농민혁명선양사업은 지역을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제약된 한계 때문에 지역 간의 경쟁 및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점으로 사업의 방향을 이전과 이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00주년 이전 지역중심으로 사건의 특성에 맞게 자생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이후에는 지역중심에서 전국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사업이 전개되어 발전하였습니다. 따라서 100주년 이후 전국적 관심이 급증하여 선의의 경쟁보다는 이해관계 때문에 갈등이 지역 간에 많이 표출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 단체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어 동학농민혁명의 가치와 정신을 반하는 행동이 드러나기도 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런 점들을 극복해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전국화하고 세계화를 이루어 나가는 데 힘을 모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문) 바쁘신 중에도 귀한 시간 내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여 빠뜨린 얘기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저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던 2014년 전북일보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독립지사나 애국지사처럼 서울 한복판에 전봉준 장군 동상이 건립되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 말이 2018년 4월 24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종로 네거리에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건립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녹두꽃』 지역대담에서 또 말이 씨가 되라고 “전봉준 장군 역사공원이 서울, 경기지역에 반드시 조성될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서울이나 경기지역에 전봉준 장군 역사공원을 건립해서 동학농민혁명의 드높은 이상을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와 세계 역사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나갈 생각입니다. 귀한 자리 마련해주신 기념재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 총장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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