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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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정읍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가다

정읍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가다


  남동쪽으로는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내장산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북서쪽으로는 광활한 동진평야가 펼쳐진 정읍은 토지가 비옥하여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옥함은 한편으론 독이 되어 조선말 서울에는 ‘아들을 낳아 전라도에서 관직 시키는 것이 꿈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탈대상이 되어왔다.


  결국 봉건체제의 부패에 대항하여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의 고장, 정읍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에서는 당시 농민들의 울분과 한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곳들을 둘러보며 갑오년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무명동학농민군 위령탑


동학혁명 모의탑                                                                                   고부관아터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경칩이 지나 봄기운이 곳곳에서 밀려든다. 따사로워진 햇살에 겨우내 숨어있기 갑갑했다는 듯 어느새 가지 곳곳에서 새싹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바람은 아직 찬 가운을 품고 있지만 예의 칼바람보다는 기세가 한풀 꺾여있다. 답사 다니기 좋은 날이다. 아침부터 급하게 배터리를 충전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먼저 어느 곳으로 향할지 잠시 생각한다. 봄도 시작이고 답사도 시작이다. 그러면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사발통문 작성지가 있는 주산마을로 방향을 잡는다.


  주산마을에는 사발통문 작성지, 동학혁명모의탑,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이 한 곳에 모여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사발통문. 그 작성지는 아주 우연히 밝혀졌다. 사발통문 서명자중 한 사람인 송국섭의 아들 송기태 씨가 마루 밑에서 찾아낸 여산 송씨 족보를 보다가 발견한 것이다. 사발통문이 발견된송두호의 집은사발통문작성지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를기리기 위해 1969년 4월 마을 어귀에 동학혁명모의탑이 세워졌다.


  모의탑 옆 마을길을 따라 어느 정도 걷다보면 대뫼녹두회관 앞의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을 볼 수 있다. 이 위령탑은 농민군의 지도자들을 기리는 기존의 추념탑과는 달리 봉건사회와 외세를 상대로 투쟁한 이름 없는 농민군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곳에서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무명동학농민군위령제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주최)에서는 커다란 솥에 밥을 해두고 수십 개의 수저를 꽂아 농민군들을 위로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고부관아터


  주산마을을 뒤로하고 고부관아터로 향한다. 고부관아는 동학농민혁명발발의 단초를 제공한 조병갑이 군수로 부임한 곳이다. 그의 아귀(飯鬼)같은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같았다. 심지어 불효, 불목, 음행, 잡기 등 되지 않은 죄목을 가져다 붙여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니 학정의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학농민군은 전봉준장군의 지휘에 따라 고부관아로 향했고 최초의 거사인 고부봉기를 일으켰다. 현재는 관아터에 고부초등학교가 들어서있으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사)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에서는 매년 고부봉기 기념제를 열어 고부봉기 재현행사를 치르고 있다.




전봉준장군 고택                                                                                            전봉준장군 단소



전봉준장군 고택


  고부관아터에서 꽤 먼 거리를 달려 전봉준 장군 고택으로 향한다. 이는 전봉준장군이 실제 거주하던 곳으로 훈장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고택 앞에는 마을우물이 있는데 전봉준장군도 이 우물을 자주 이용했을 것이다.


  고택은 고부봉기 이후 안핵사 이용태가 주모자들을 잡아들인다는 구실로 불태웠으나 전소되지 않아 이후 보수하였으며, 지방기념물 제 19호, 사적 제 293호로 지정되어 정읍시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봉준장군 단소


  전봉준장군의 단소는 고택에서 5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단소란 유해가 없는 상징적인 무덤을 뜻한다.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봉준장군지단〉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이 단소는 천안 전씨 문중에서 동학농민혁명 60주년이 되던 1954년에 설치하였으며 지금까지 시향제(時享祭)를지내고 있다.




말목장터                                                                                                     만석보터



말목장터


  단소에서 만석보터로 가는 길목에 말목장터를 만난다. 말목장은 부안과 태인, 정읍이 맞닿아 당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장이 열리던 곳이다. 거의 모든 정보가 구전되던 갑오년에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공간이었고, 고부봉기의 집결지로 말목장이 선택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동학농민군 천여 명은 고부관아로 향하기전 이곳에 집결하였으며, 1차 봉기 전까지 장두청(고부봉기 지도자들이 머물던 장소)이 있었다.


  말목장터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는데 전봉준 장군은 그 감나무 아래에서 농민군들에게 고부관아로 진격할 것을 주창하였다. 그가 연설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감나무가 가지를 드리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는 풍문이 전해져오는데 마치 정이품송이 떠오르는 재미있는 일화다. 이 감나무는 2003년 태풍 매미에 의해 쓰러져 고사하였고, 현재는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로비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감나무가 서있던 자리에는 어린 감나무가 대체 식수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만석보터


  말목장터 감나무와 눈인사를 하고 만석보터로 향한다. 만석보는 조병갑이 저지른 부패와 학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조병갑은 멀쩡한 민보를 허물고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만석보를 쌓아 과중한 수세를 물렸다. 도를 넘어선 부패는 결국 고부봉기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후 새로 부임한 군수 안길수가 만석보를 완전히 혁파하여 이를 기리기 위해 이평면 하송리 예동마을에 만석보혁파비를 세웠다. 만석보터는 전북기념물 제 33호로 지정되어있다.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정읍일대를 순회하고 황토현으로 돌아왔다. 황토현 전투에서 농민군은 최초로 관군을 맞아 대적하였다. 농민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관군도 상대할 만 하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 기세를 타 전주성까지 점령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해발 35미터인 나지막한 황토재 정상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서있다. 1963년 10월에 ‘동학혁명기념탑 건립추진 위원회’의 주도로 세워진 이 탑은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최초의 탑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탑에 최초로 혁명이란 단어가 쓰임으로서 이전까지 동학란, 동비의 난으로불리면 동학농민혁명의 위상이 혁명으로 강화될 수 있었다.


  기념탑의 상부에 동학농민혁명의 근본정신인 제폭구민 보국안민(除暴救民 輔國安民)이 새겨져있는데, 보국안민의 輔가 保로 잘못 표기되어 있어(保國安民)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못된 글귀 또한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에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황토재를 오른다면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한 번 쯤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민사(전봉준장군 동상)


  황토재를 내려와 바로 아래 위치한 구민사로 발걸음을 향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구민사는 1986년 황토현전적지 정화사업 때 지어져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물들이 다수 전시되었으나, 현재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으로 대부분 이전되어 기록화와 몇 가지 책자만을 전시하고 있다.


  내부의 사당에는 동학농민군 지도자와 참여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헌향을 할 수 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향에 불을 붙힌 뒤 짧은 묵념을 올려본다.


  사당의 바로 옆에는 전봉준장군 동상이 위치해있다. 한 손에는 격문을 들고 다른 한 손은 농민군을 독려하듯 치켜든 모습은 전봉준 장군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댜 그러나 前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부조된 농민군들이 하나같이 의연함을 찾아볼 수 없는 소풍가는 모습이라 지적하여 논란이 되었다.


  장군의 동상 앞에서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지켜내고 있는지 사색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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