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이, 온다

 
우리는 전봉준을 알고 있는가? 누구나 역사적 인물로서 전봉준이란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름을 아는 것과 실체를 아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봉준이, 온다」를 집필한 이광재 작가는 전봉준을 소설로 만나고 싶었지만 그의 이름을 아는 것과 달리 그 실체를 모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실체를 먼저 만나기로 하고 서사적인 내용보다 기록과 증언을 바탕으로 사실을 규명하고, 적절한 근거를 찾아 전봉준의 생각과 삶을 추론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그에 대한 결과물이 바로 『봉준이, 온다』이다. 작가의 펜은 골목대장 ‘씨화로’에서 동학농민군 대장 ‘녹두장군’으로 교수대에 오르기까지 조선말의 최대 풍운아였던 전봉준의 삶에 다다라있었다. 그의 손을 따라 전봉준의 삶 속에 들어가 보자.
씨화로에서 녹두장군까지
‘씨화로’란 전봉준이 소년시절 자주 불리던 별칭이다. 이는 그의 이름중 하나인 철로(鐵爐)를 우리말로 옮긴 쇠화로에서 유래한 것으로, 쇠화로에서 항상 불씨를 담아두기 때문에 씨화로라고 칭했다. 아이들 무리의 우두머리 자리에는 언제나 씨화로가 있었다. 싸움을 할 때면 머리가 깨지고 코피가 흘러도 상대가 항복을 선언할 때 까지 끝없이 달려들던 그는 항상 ‘커서 이순신장군처럼 훌륭한 장수가 되겠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고 한다. 녹두장군으로서 농민군을 지휘하고 외세에 극렬히 대항하였던 그의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전봉준의 시대
작가는 동학농민혁명 당시를 ‘만만치 않은 시대였다.’라고 말한다. 단순히 외세가 몰려들었다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동아시아가, 그리고 나아가 세계가 격동하고 재정립되던 시대였다.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앞선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문화접변현상이 전 세계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구의 문물을 재빠르게 받아들이고 변화에 순응했던 일본과 그렇지 못했던 세력 간의 패권이 재편되는 과정에 조선이 놓여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봉준은 동학농민군을 일으켜 변화를 거부하는 봉건사회와 외세의 침탈이라는 두 가지 억압에 정면으로 투쟁하였으며, 작가는 이것이 근대를 굉장히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언급한다. 근현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투쟁과정에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열쇠가 있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 날 우리사회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건이므로 긴밀하게 연구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다.
왜 전봉준인가?
작가는 작품의 본문에 이렇게 언급한다. ‘혹자는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어도 역사가 가파르게 굽이치는 곳에서는 누군가가 그 역할을 대신 했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꼭 그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중략) 우리는 모차르트를 베토벤이라고 하지 않고 유형원을 정약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 예로부터 소우주로 일컬어져 왔거니와 전봉준과 똑같은 빛과 색깔로 구성된 우주는 저 태허의 공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이러한 물음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전봉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준이, 온다』가 단순히 전봉준을 언행만으로 평가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를 둘러싼 내밀한 사적 정황에서부터 동학농민혁명의 실제 전개 상황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풍성하게 재현해냄으로서 전봉준의 얕은 곳에서부터 깊은 곳까지 샅샅이 더듬어 가고 있다.
전봉준의 꿈
전봉준, 그것은 한 혁명가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당대 민중의 또 다른 이름이며, 하나의 시대 명칭이다. 그“전봉준 시대”가 어느 때쯤에 시작해서 어느 때에 끝이 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혁명이 좌절되고, 결국 교수대에 목 매달린 채 전봉준의 삶은 마감되었으나, 그의 시대가 마감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봉준의 육신은 죽어 땅에 뿌려졌으나, 그의 생명은 여전히 살아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숨 쉬고 있다. 그의 꿈 또한 우리 모두의 꿈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조선 말, 사회적으로 문란하고 혼란한 시기. 백성을 억압하는 봉건체제로부터, 우리나라를 침탈하려는 열강으로부터 민권과 민족을 지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민중을 이끌었던 지도자 전봉준. 그의 좌절은 100년 간 핏빛과 식민, 분단과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졌으나, “전봉준의 시대”는 다시 광복과 민주화, 그리고 생명과 평화의 전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전봉준은 여전히 싸우는 중이다. 농민들은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항상 자신들을 억압하고 굴복시키던 권력이라는 절대적인 힘에 대항하여 최초의 승리를 거둔다. 이는 국민들에게 혁명의 유전자를 심어준 일대의 사건이었다. 이 유전자는 이후에도 부정의 시대에 거듭 고개를 들었으며, 지금도 틀림없이 우리의 안에서 또 다르게 발현될 날을 기다리며 꿈틀대고 있다. 밟아도 밟아도 되살아 나는 들풀 같은 민중의 세상, 그 열매가 탐스럽게 맺힐 나라를 향해 ‘전봉준들’은 오늘도 고개를 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