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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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다시 보는 배들평야

다시 보는 배들평야



정읍문화원 사무국장 
이용찬


  올 계사년(癸巳年)이 지나면 또다시 갑오년(甲午年)이다. 이는 “정읍부터 서울까지 모든 권귀들을 찾아 척살하겠다.”며 사발통문 거사계획과 함께 일기 시작했던 그날의 첫 함성이 터져 나왔던 게 벌써 60갑자가 두 번째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120여 년 전 척박하기만 했던 그 때에 비해 눈부신 경제적 성장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다변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서민들의 생계는 여전히 궁핍하며 해바라기처럼 기득권에 아부하는 세력들도 여전하고, 권력을 쥔 자들의 권력 나눠 갖기 형태 또한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과도기적 사건 이후 굴욕의 시대를 거쳐 우리나라에서도 의회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력 집중화 속에서 작은 권력이라도 나누려는 집단 이기심으로 불거지는 불협화음들은 오히려 현 시대가 더한 듯하다. 모두가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기주의가 공익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일까? 암울했던 시절 호남평야에서도 가장 비옥했던 땅, 배들 평야에서는 추수를 하고도 벼이삭하나 남지 않을 만큼 가혹한 수탈이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어 옥토에서도 민생은 척박해야 했다. 지금까지도 배들 평야는 가슴시린 암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소외와 수탈, 갖은 학정과 억압의 상징이었던 배들 평야는 “단순 민란이 일어났던 곳에 지나지 않다”는 괄시 속에서 차츰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조차 잊혀가고 있다.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고 했던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직면한 현 시대에서는 우리 선인들이 피를 토하며 갈구하던 참 세상의 의미를 돌아보기보다 또 다른 기득권을 내세우기 위해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을 해당 지자체의 사활로 대두시키고 있다. 이렇듯 그날의 혁명이 또다시 일부 정치권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박해를 일삼던 기득권층들을 향해 사람은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세상에 알리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요구했던 혁명이다. 당시의 상황은 세도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던 지방 토호 세력들의 오랜 횡포로 인해 전 지역에 걸쳐서 삼정의 문란이 만연하였다.


  그런 삼정의 문란 중에서도 특히 군정의 폐해는 더욱 심각했다. 갓난아이에게도 군정 세를 부과하여 갓 태어난 사내아이의 고추를 자르고 계집아이가 태어났다고 관아에 거짓 신고를 해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19세기는 자본주의를 앞세운 서구 열강들이 세계 곳곳을 식민지화하며 약소국의 정치와 경제 등 자원적인 자산을 모두 침탈하던 참담한 상황이었다.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에 젖어 청나라의 신하를 자처하며 조공을 바치던 조선은 청이 1840년 아편전쟁으로 당시 까지는 신흥제국에 지나지 않던 영국에게 일방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조선의 세도가들은 구태의 악습을 버리지 못했고 나라를 더 큰 위기로 몰아갔다. 그리고 그 책임이 국운을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아넣은 난에 있다며 민초들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그런 반면, 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의 막부(幕府)는 쇄국의 길을 버리고 문물이 앞서 있던 서방세계에 문호를 개방하며 급변하던 시대기류 속에서 극명한 자구책을 찾아 국가 경영에 나서게 했다.


  그런 일본이 변하지 않는 우리나라를 서구열강들보다 먼저 노리게 되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농민들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일어섰고, 일본군의 앞선 화력 앞에서 무력하게 스러져가야만 했다. 그런 선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안락한 시대도 쉬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 시대의 권귀들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오히려 자신들의 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과연 동학농민혁명의 참 의미를 인지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케 한다. 그 위대한 혁명을 가리켜 “어디까지는 단순 민란이니 역사적 가치가 없고, 여기는 더 의미가 있으니 이곳 기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야 한다.”며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동학농민혁명의 국가기념일을 특정지역에서 주장하는 날짜로 선정한다면 분란은 후대에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날 것이다.


  무능한 조선 조정과 세도 정치가들의 횡포가 근절되지 않았던 주된 이유가 일부 정치권의 탐욕이 공익을 넘어섰기 때문에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라도 대동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학농민혁명과 의병, 그리고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던 구한말의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의 근현대사로 바로설 수 있도록 각 지자체와 선양사업단들이 사심을 버리고 국가기념일이 제정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해당 지역의 기념일을 앞세우던 움직임을 멈추고, 국가기념일 제정은 기념재단의 몫으로 넘겨둬야 한다. 그리고 국가기념일 제정과 함께 시작되는 범국민적 국가선양사업을 위해서 지역 기념사업회는 기념재단과 협력하여 각 지역의 선양사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바로 우리 후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 120여 년 전, 우리 선인들이 피맺힌 울부짖음으로 외치던 참 세상의 날도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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