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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봄 27호
(사)갑오농민동학혁명 유적보존회를 찾아서

(사)갑오농민동학혁명 유적보존회를 찾아서


일 시: 2017년 1월 9일(월), 11:00

장 소: 정읍시 이평면 면사무소 면장실

대 담: 서현중 | (사)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 이사장, 문병학 | 기념재단 기념사업부장



서현중 (사)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 이사장


문) 이번 호 [녹두꽃] 지역대담 초대 손님은 (사)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 서현중 이사장입니다. 이사장님 반갑습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안녕하세요. 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서현중입니다. 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렇게 인터뷰 자리까지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부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이곳 고부는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곳으로 역사적으로 그 의미가 아주 큰 고장입니다. 역사적인 고장인 만큼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하는일에도 모범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 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가 언제 설립되었지요? 제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이전부터 기념사업에 몸담았기 때문에 전국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의 기념사업단체들을 창립연도까지 대체로 기억하는데, 제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단체를 창립한 연도와 설립 배경 등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답) 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는 2009년 발기대회를 가진 후 준비과정을 거쳐 2010년에 정식으로 설립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로 8년째 되지요. 당시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는데 특히 김동길 전 이사장님께서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우리 지역에서부터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바르게 알리자는 취지를 가지고 단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고부농민봉기가 동학농민혁명 최초봉기라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부각시켜나가기 위해 기념사업 단체를 설립하게 된 것이죠. 유적보존회 이전에도 우리 고부지역에는 ‘동학농민혁명 탐구회’라는 조직이 있었어요. 탐구회가 만들어져 활동한 것은 40여 년 전이지요. 당시 정읍시의회 박재복 의장님을 비롯하여 이평면장이셨던 백남호 선생님, 전라북도의회 의원이셨던 박문희 선생님 등 훌륭하신 분들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쟁쟁한 분들이셨는데 그분들이 더러는 작고하시고, 연로하셔서 활동이 차츰 미미해졌지요. 그분들의 뜻을 잘 이어받았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김동길 전 이사장님께서 유적보존회를 새롭게 조직한 것이지요.



문) 김동길 전 이사장님께서도 이평면 면장을 지내셨죠? 2000년을 전후하여 만석보 본래의 터와 만석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만석보유지>라는 비를 세우고, 양성우 시인의 ‘만석보’라는 시를 새긴 시비 (詩碑) 등을 세웠지요? 그때 김동길 전 이사장님이 면장으로 계실 때 추진한 겁니까?


답) 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이후 10년쯤이나 지났을까? 그때쯤 세웠을 겁니다. 1973년도에 만석보유지비가 세워졌고 그 뒤 1987년엔가 만석보정화기념비인가 하는 것이 세워졌지요. 그리고는 2000년인가 2001년인가 하여튼 그 어간에 양성우 시비랑 돌비 두 개를 더 세웠습니다. 김동길 전 이사장님이 이평면 면장직에 계실 때 추진했지요. 옛날 탐구회선배님들의 정신을 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가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 정읍, 그 중에서도 고부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단(發端)인 고부농민봉기가 일어난 고장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큰 곳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답) 정신선양 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감회보다는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통탄스럽습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고부는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고장인데, 그런 의미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고부는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된 고장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해석에 따라 최초 봉기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논의되기도 하는 것이 화나기도 하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고부농민봉기를 일으켰던 조상들을 위해서라도 고부의 역사적 의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더욱 힘을 쏟아야 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있습니다.



문) 고부에는 많은 유적지들이 있지요? 고부농민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만석보를 비롯하여 예동마을의 만석보혁파선정비라든가 동학농민혁명 최초봉기 형상조형물, 만석정, 말목장터, 전봉준 고택, 전봉준 단비 등등... 그 중에서 가장 최근인 지난 해(2015년) 2월 15일 제막식을 가진 최초봉기 상징조형물이 예동마을 앞에 설치되었는데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나 경과 등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답)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해서 상징 기념탑을 제작하여 설치하기 위해 정읍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았습니다. 오래전부터 말목장터 감나무 주변에 기념탑을 조성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의치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른 장소라도 물색해서 기념시설물을 설치하자는 생각에서 예동마을을 선정하여 최초봉기 상징조형물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갑오년 당시 예동마을에서 풍물굿을 치면서 말목장터로 나아갔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예동마을에 최초봉기 상징조형물을 건립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이평면 면민들의 힘으로라도 감나무 주변에 봉기탑을 세우려고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여러 여건들이 무르익지 않아 성사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예동마을에 최초 봉기를 상징하는 기념시설물을 세우게 된 것이지요. 예동마을이 아니라 말목장터 감나무 주변에 조성이 되었더라면 상징조형물이 아니라 ‘봉기탑’이 되었겠죠. 원래 계획했던 감나무 주변의 봉기탑은 아니지만 예동마을에 상징조형물이라도 세우고 나니 자긍심도 갖게 되고 아주 좋습니다. 말목장터 감나무 주변에 최초봉기를 기념하는 탑을 세우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 추진해나갈 생각입니다.



문) 이밖에도 고부에는 1894년 1월 8일 말목장날부터 모여들었고, 10일에는 전봉준, 김도삼, 정익서 등 지도부를 중심으로 1천여 명의 고부군민들이 봉기하여 장두청을 설치하였던 말목장터와 감나무에 대해 얘기해주십시오. 그 감나무가 2003년 태풍 ‘매미’에 쓰러져서 황토현 소재 동학농민혁명기념관 1층 로비에 보존 처리되어 전시되고 있지요?


답) 말목장터는 지형이 말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말목, 그곳에 큰 장터가 들어서서 말목장터라고 불립니다. 문부장 얘기대로 말목장터에 서있던 감나무는 2003년 태풍으로 쓰러져서 지금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보존 처리되어 전시되고 있지요. 그 감나무가 서있던 자리에는 새로 감나무를 한 그루 이식해놓았는데 잘 살고있습니다. 원래 이전에 서 있던 감나무 씨라도 받아서 발아시켜 대를 잇게 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고민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러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래서 연한이 조금 있는 감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옮겨 심어놓은 지 10여 년 지나니까 그 나무도 제법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 이사장


문)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전봉준고택, 그리고 고택으로부터 500여 미터 떨어진 산자락에 전봉준장군 단비가 세워져 있지요? 전봉준장군 단비는 동학농민혁명 60주년, 그러니까 1주갑이 되던 해인 1954년 세워진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 기념비가 동학농민군 측을 기념해서 세운 최초 기념시설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이라 새겨진 단비는 지금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요?


답)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이던 1994년 무렵까지만 해도 단비는 솔밭에 버려진 것처럼 있었는데, 특별법 전후과정에서 거의 매년 천안전씨 문중에서 기념비를 하나씩 세워서 지금은 10기 가까운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정읍시와 전라북도, 그리고 기념재단에서 문화재지정신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고부를 비롯하여 정읍지역은 50여 년 동안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유적지 정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잘 되어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훼손되고, 낡아서 보기 흉해진 것도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유적지 보존관리에 더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1994년, 동학농민혁명 백주년 기념사업이 크게 네 축으로 구성되어 추진되었습니다. 2월 고부에서 펼쳐진 고부봉기역사맞이굿, 4월 전주 시청광장에서 펼쳐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대회, 7월 전북은행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11월 공주교육대학교 대운동장에서 펼쳐진 공주우금티 동학농민군영령추모제가 그것이었는데, 100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행사로 이곳 고부 말목장터 일원과 정읍시 전역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때 이곳 말목장터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떤 사람들은 ‘동학농민혁명 이후에 최대 인파가 고부에 모였다’ 그렇게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를 떠올려 감회를 말씀해주십시오.


답) 제가요 말목장터 인근마을에서 정미소를 올해로 40년째 하고 있어요. 그 행사가 있던 날 일을 하다 차를 타고 와서 봤는데 정말 장관이었어요. 제가 정미소 기계들을 돌려야하기 때문에 그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관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동학농민혁명 최초봉기가 일어난 고부에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하는 기념사업이 펼쳐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감격스럽고 그 행사를 주최한 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그 때 문부장님이 그 축제의 실무자로 일하셨지요? 제가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평면 체육회장을 했었는데요. 행사를 크게 해도 참가자가 6~700명 정도이거든요. 근데 1994년 백주년 고부봉기 역사맞이 굿 그 행사에는 1만여 명이 모였다고 그랬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행사였다고 기억에 또렷합니다.



문) 고부 쪽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들을 연계하는, 예를 들면 제주도의 올레길과 같이 코스를 연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20여 년 넘게 답사를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감나무로부터 약 200미터쯤 떨어진 바른손 편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어요. 이 연못과 말목장터를 연계시켜 정비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는데... 그리고 저는 문화관광시설로 만석보를 다시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어떻습니까?


답) 감나무 오른쪽에 있는 호수가 바로 ‘말못’이예요. 그래서 원래 이 지역의 지명이 두지리예요. 두지리에 지가 바로 연못을 말하는 것입니다. 문부장님 말씀대로 정비를 해놓으면 역사성이 있는 곳이니까 좋을 것 같습니다. 요새 친환경적으로 유적지를 정비하는 것이 뜨고 있으니까 연계방안을 고민해봐야겠네요. 다시 만석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 기발하네요. 관광객을 유치하여 유람선도 태우고 그러면 참 좋겠네요.



문) 2017년도 갑오농민동학혁명유적보존회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나갈 정신선양사업의 방향이나 목표 등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올해 계획은 우리 이평면의 숙원사업인 최초 봉기탑을 세우는 것입니다. 고부는 동학농민혁명 최초봉기가 일어났던 고장으로, 이곳에 최초 봉기탑을 세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평면민들과 출향인까지 힘을 모아 최초 봉기탑을 세우기 위해 지금 이평면 소재지 가꾸기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소재지 가꾸기 사업을 통해 땅도 조금 매입을 할 것 같고, 매입이 되면 최초봉기탑을 여기에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우리 고향의 일인데 직접 해보자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김동길 전 이사장님이 제안을 하셨고, 박문희 신태인 중고등학교 이사장님과 함께 5년 안에 세우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개최하고 있는 고부농민봉기 재현행사와 유적지 탐방을 올해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작년에는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탐방으로 전남 진도를 다녀왔지요. 올해 추진할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1월 16일 정기총회 때 세워질 것입니다. 고부농민봉기 재현행사는 해마다 2월 15일 열어왔으니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해도 그날 행사가 열릴 것입니다. 고부농민들이 봉기한 일자가 1894년 1월 10일인데 음력이예요. 그래서 그날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2월 15일이거든요. 그래서 그날 재현행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재현행사를 할 무렵이 엄청 추워요. 그래서 날짜를 따뜻한 때로 바꾸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김동길 전 이사장님께서 “선조들은 그날 짚신자락으로 봉기도 했는데, 춥다고 일자를 바꿔서 행사를 치뤄서야 조상님들 뵐 낯이 서느냐, 어쩌네 저쩌네 해도 행사는 제 날짜에 맞춰서 해야 제 맛”이라고 하셨지요. (웃음) 그 말씀이 맞지요. 그래서 차디찬 바람을 무릅쓰고 수 년 째 그날 행사를 열어왔습니다.



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이렇게 지역단체를 찾아와 얘기를 들어주니 고맙습니다. 우리 지역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다른 지역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서로 힘을 합해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선양하는데 더욱 힘을 쏟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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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겨울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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