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의 기억을 테마파크로 승화시키자.
고석규 목포대학교 교수
《고려사》 〈지리지〉 ‘전라도’조를 보면, “본래 백제의 땅으로 … 성종 14년(995)에 전주·영주·순주·마주 등의 주현으로 강남도(江南道)를, 나주·광주·정주·승주·패주·담주·낭주 등의 주현으로 해양도(海陽道)를 삼았다. 현종 9년(1018)에 합쳐서 전라도로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2018년은 ‘전라도’라는 명칭이 문헌에 처음 나온 때부터 천년이 되는 해이다. 이른바 ‘전라도 기원 천년의 해’가 된다.
전라도 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 전라도의 역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전라도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보통 절의·비판·실천정신 등을 내세워 의향(義鄕)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증거로는 동학농민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런 역사가 만든 민주성지라는 인상은 오히려 이념적 갈등, 정치적 소외로 이어지면서 안타깝게도 전라도의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구실이 되기도 하였다.
어떻게 이를 바로 잡을 것인가?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보면서 그 답을 찾아가 보자. 프랑스 방데(Vendée) 지방의 역사테마파크 퓌뒤푸(Puy du Fou)의 야외역사극 시네세니(Cinéscénie, 움직이는 공간)의 성공 사례가 인상 깊게 다가온다.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인 1793년 발생한 방데전쟁은 대혁명기 이래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대혁명에 반대했던 ‘반(反)혁명’으로 규정되었다. 보수적인 왕당파 귀족과 성직자의 음모에 방데 지방의 농민들이 가담한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혁명을 현대 프랑스의 시발점으로 간주하는 대다수 프랑스인들에게 방데란 이름은 극히 부정적으로 남아 있었다. 이는 공교육을 통해 재생산되면서, 방데전쟁은 비난 받아 마땅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렇듯 방데 주민들은 반혁명주의자들의 후손으로 각인되어 왔다.
하지만 방데 사람들은 이런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사실 전쟁 당시에 공화파 군대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이 자행되어 전투에 가담한 농민군들은 물론 아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무고한 주민 10만 여명이 집단 살상 당하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었다.
그리하여 방데전쟁은 혁명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혁명이 낳은 급격한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재평가되어 ‘대항혁명’이라고 규정되었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토대로 방데전쟁을 포함한 방데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시네세니라는 야외역사극이 만들어졌다. 1978년 필립 드 빌리에(Philippe de Villiers)의 주도로 처음 시작한 이 시네세니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프랑스인과 유럽 전역에 방데전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확산시켰다.
즉 과거 제도권 역사에서 부여한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 집단”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창의적인 문화콘텐츠 생산자라는 새로운 위상을 구축케 하였다. 이는 관광을 통한 경제적 효과도 커, 1989년 ‘퓌뒤푸’테마파크 건립으로까지 이어졌다.
1998년에는 주니어아카데미 개설, 2010년 퓌뒤푸 인터내셔널 출범 등 퓌뒤푸는 단순한 놀이동산 개념의 위락시설 수준을 뛰어넘는 문화산업체로 성장하였다. 2013년 현재, 연간 방문객 174만 명, 총 매출액 한화 795억 원에 이르고 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그치는 축제가 아니라 역사를 성찰할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퓌뒤푸의 성공 원인을 찾는다. 이미지도 개선하고 지역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방데에 대한 기억이 달라짐으로써 방데의 시네세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기억을 바로 세움으로써 이를 기념하는 사업들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동학농민혁명을 전라도에 한정된 지역의 역사, 지역의 기억으로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비류들이 6도에 널리 세력을 펼치고 있어서 우려와 근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라는 당시의 기록들이 명명백백하게 증명하고 있듯이,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는 물론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를 포함한 전국적 사건이었다.
2018년 전라도 천년의 해를 맞아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종합적인 역사 재조명을 통해 이를 전국적인 사건으로 정립시키고 나아가 이를 활용하여 테마파크 등의 사업을 유치함으로써 지역 이미지도 개선하고 나아가 지역경제도 살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는 일석이조의 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고석규 | 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 前목포대학교 총장, 前전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