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모르는 영문학 교수의 꿈
이종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꿈이 하나 있다. 아니 둘이다. 둘이지만 서로 연결될 수 있으니 하나라 할 수 있다. 영문 모르고 수십 년간 ‘동학농민혁명타령’에 ‘전통문화 비나리’를 해온, 영문과 교수다운 것이다. 가당치 않다고 조롱할 수도 있고 터무니없다고 비아냥거릴 수 있다. 개의치 않는다. 꿈은 원래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옛 선원들을 이끌었던 북극성처럼 멀리서 인생의 나침판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 하나는 전주가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자리 잡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전주가 세계 주요 혁명의 중심으로 우뚝 섰으면 하는 것이다.
전주의 옛 이름은 완산주, 그것과 현 이름의 앞 글자를 합하면 완전(完全)! 그래서 이곳을 ‘완전을 꿈꾸는 땅’이라 불렀다. 대충을 용납하지 않는 은근과 끈기, 그것을 전주정신의 근간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곳에서 전통문화가 승할 수 있었던 것도 완전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장인들이 있어서 일 것이다. 완전한 소리에 추임새를 아끼지 않는 귀명창들처럼 제대로 된 문화예술을 즐기고 후견하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혁명 또한 완전을 향한 목숨 건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불완전과 불의,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적폐(積弊)를 용납하지 못하는 치명(致命)의 항거인 것이다. (전주에서 가톨릭 최초의 순교자가 나오고 최고로 많은 순교자가 배출된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완전한 신앙을 꿈꾸었기에!)
이 두 꿈은 분명 둘이지만 완전을 꿈꾼다는 면에서 하나이면서 둘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꾼다고 하여 모두 꿈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현시킬 자산, 자격,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불굴의 의지와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문학이라는 전공에 매몰되지 않고 30년 넘게 전통문화와 동학농민혁명을 외쳐왔으니, 적어도 꿈꿀 자격은 갖춘 것 아닐까, 조심스럽게 자부해보기도 한다. 현재도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도시를 위한 ‘전주문화특별시’를 주장하며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대표로 부족하지만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어여삐 여기는 눈길이 분명 있으리라 믿고 싶기도 하다. 이를 위해 올가을 국제학술대회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 5대 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주제로 독일농민전쟁,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태평천국혁명,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세계 역사의 결정적 변곡점이었던 이들 혁명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세계사적으로 조명해보자는 것이 그 핵심 취지다. 이를 위해 해당 국가의 주요 연구자들에게 이미 초청장을 보냈으며 이들과 심도 있는 토론을 해줄 국내 전문가들도 섭외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전주에 ‘세계혁명박물관’을 세우고 싶은 저의도 굳이 감추지 않겠다. 더 나아가 요즘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4.3이나 5.18과 더불어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었으면 하는 소망도 숨기고 싶지 않다.
혼자만의 꿈은 허황될 수 있다. 여럿이 함께 꾸고 노력하면 역사가 되기도 한다. 전봉준장군의 꿈이 농민들의 염원과 이어지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되었다. 혁명을 기리는 것은 그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시지포스의 바위를 되 올리는 것만큼의 중단 없는 헌신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의 역사도 왜곡된다. 그래서 또 다른 혁명을 필요로 하는 상황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 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언제든 역사의 흐름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영문학교수이지만 모르쇠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도, 스스로는 즐기지만 남이 언급하면 부끄러워지는, 영문 모르는 영문과교수라는 말,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발버둥 해보는 것이렷다!

이종민 |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학위 수여. 전북대 교수, 전전북대 인문대학장.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천년전주사랑모임,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전주문화재단 등 시민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에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1992년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 창립을 통해 백주년 기념사업 추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봉환, 음악극 ‘천명’전국 순회공연 등을 기획·추진하였다. 현재,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전주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및 세계혁명박물관 건립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