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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 37호
드라마 “녹두꽃” 사람, 하늘이 되다

  드라마 “녹두꽃” 사람, 하늘이 되다

  - 그 날의 함성이 다시 돌아오다 -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녹두꽃’(48부작, 연출 신경수, 극본 정현민, 2019.4.26.~ 2019.7.13) 방영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방송사상 처음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정면으로 다룬 ‘녹두꽃’ 드리마가 제작·방영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은 지난 2월 26일 국가기념일이 제정·공포되면서 우리나라 근대 민주주의 뿌리이자 근대 민족주의 운동으로 그 위상이 재정립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백성에겐 쌀을! 탐관오리에겐 죽음을!”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부농민봉기 당시 탐관오리의 가혹한 수탈에 견디지 못한 백성들이 외친 절실하면서도 명료한 구호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을 기치로 백성이 편안한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경계를 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 가보지 않았을 뿐, 갈 수 없는 곳이 아니야.” 


  동학농민혁명은 ‘사람이 곧 하늘인 세상(人乃天)’ 즉, 모든 사람이 귀천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염원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는 백성들이 결집하여 행정구역상 군·현의 경계를 넘어가면 ‘반란’으로 인정되어 삼족을 멸(滅)하는 참화를 당해야만 했다. 때문에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초창기에는 고부군이나 무장현 등의 경계를 넘어가는 일을 두려워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도록 독려하는 대사이다.




■ 드라마 ‘녹두꽃’ 극중 장면| 사진출처: SBS 드라마 ‘녹두꽃’ 제작팀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약자들이었어” 


  우리 역사의 전환점에는 항상 힘없는 민초들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 항일의병, 3.1운동,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촛불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극 중 얼자(孽子, 첩의 자식)로 태어난 백이강은 ‘거시기’로 불리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핍박하며 살던 중 전봉준 장군을 만나면서 차츰 변화하여 동학농민군 ‘백이강’으로 거듭난다. 드라마 ‘녹두꽃’은 기층 민초들을 대표하는 ‘백이강’(가상인물)을 중심에 두고 극을 전개하면서 힘없는 백성들일지라도 그들이 모이면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힘으로 전환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드라마 ‘녹두꽃’ 극중 장면| 사진출처: SBS 드라마 ‘녹두꽃’ 제작팀   


  “조선을 자기(일본)의 나라로 만들려 들것지”


  이 대사는 극중 일본의 앞잡이가 된 백이현이 재판을 앞둔 전봉준 장군에게 흥선대원군이 시킨 거라고 자백하면 살 수 있다고 회유하는 대목에서 전봉준 장군이 백이현에게 가르침을 겸한 대답(대사)이다. 일본은 조선왕궁인 경복궁을 무단으로 점령한 후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하라”는 일본 대본영의 명령을 일본군과 조선 관군에게 내린다. 극 중에서 일본 토벌대장이 “그렇게 서서히 만들어 가는 거야, 일본의 영토로”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일본의 야욕을 엿볼 수 있다.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란 말이외다. 

우리를 기억하는 한 두 번 지지는 않을 것이오!”

-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봉준 장군이 압송되는 중 한 대사


■ 압송되는 전봉준 장군 |1894년


  전해지는 전봉준 장군의 유일한 모습은 체포될 때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들것에 들려 재판정에 오가는 과정에서 촬영된 눈빛이 형형한 사진이다. 사진 속의 전봉준 장군의 살아있는 눈빛은 사형수가 아닌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의 눈빛이다. 드라마 ‘녹두꽃’에서도 보여줬듯이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 장군의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자주적으로 국권을 지켜내고자 한 애국애족 정신은 이후 수많은 녹두꽃으로 피어났다. 갑오년에 들것에 들린 전봉준 장군의 눈빛, 그리고 오늘날 종로 네거리(옛 전옥서 터, 서울 지하철 종각역 5~6번 출구 영풍빌딩 앞)에 우뚝 서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눈빛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서울 종각역(옛 전옥서 터), 2018년 건립


“너는 해(害)를 입은 것이 없는데

왜 난을 일으켰는가?

일신의 해를 위해 기포(旗砲)함이 어찌 남자의 일이겠는가! 

중민(衆民)이 원통하며 한탄(恨歎)하는 까닭에 

백성의 해를 제고코자 일어섰다. 


다시(삼례에서) 기포한 이유는 무엇인가? 

너희(일본)이 개화(開化)를 칭하고 한마디 말도, 

한 장의 격서도 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都城)에 들어와 

야반(夜半)에 왕궁을 격파하여 국왕을 핍박하기에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마음으로 일어나 너희들과 접전(接戰)하여

그 책임을 묻고자 했다.”

- 전봉준 장군 재판 중 심문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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