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자
배항섭 성균관대 교수
‘근대’에 대한 재인식
얼마 전 칼 폴라니(Karl Polanyi)라는 경제학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그는 『거대한 전환』(1944)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결국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회 자체를 파괴하는 ‘악마의 맷돌’이 되어버렸다고 규정한 바 있다. 그 대안으로 그가 제시한 핵심적 의제는 시장을 사회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 폴라니가 신자유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재조명 된 것도 바로 이러한 그의 주장 때문이었다.
최근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에서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자, 배당금, 이윤, 임대수익 등 자본으로 인한 수입이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보다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자본을 소유한 자들에게 부가 더욱 더 집중되는 ‘세습자본주의’, 곧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도 강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로벌 수준에서 각국 정부의 공조를 통한 개입, 특히 자본에 대한 누진과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풀라니나 피케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와 ‘근대’를 근대이게 하는 핵심 가치인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들은 근대에 들어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기반으로 역사의 발전과 낙관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대표되는 대량 인명살상, 환경파괴와 그것이 초래한 생태적 위기에서 보이듯 오히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인류의 ‘발전’은 지구환경에 대한 ‘약탈’에 다름 아니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환경이 인간에 대한 역습을 시작한 지 오래다.
이상의 몇 가지 사례는 ‘근대’는 회의되고 있으며, ‘근대’를 만든 인간 이성은 우리 스스로에 의해 의심받게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 ‘근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초상이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
역사는 항상 새롭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역사가 언제든지 날조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새롭게 해석되거나, 강조되는 사실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발발한 지 120여 년이 지난 오늘 동학농민군은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라는 질문을 다시 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준비하고 있던 답안은 동학농민혁명이 “조선 봉건사회의 부정·부패 척결 및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대규모 민중항쟁이었으며” 이후 “한국의 근대화와 민족민중운동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조선사회의 부정부패, 그리고 외세의 침략행위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규모의 “반침략 반봉건” 투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학농민전쟁은 많게는 수십만에 이르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대규모의 희생자를 내며 약 1년간 지속되었다. 그러한 농민혁명이 그 미래에 대해 회의와 의심을 받을 정도로 ‘위험해진’ ‘근대’를 추구했다는 점만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시대착오적인 역사이해로 보일 수도 있다고 하면 지나친 기우일까? 수많은 희생을 통해 보여준 농민군의 생각과 행동은 ‘근대’를 추구했다는 것 이외에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매우 풍부하다. 동학농민군의 뜻과 희생을 슬기롭게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동학농민혁명이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배항섭 | 성균관대 교수, 문학박사(고려대학교, 사학, 1996),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때부터 동학농민혁명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30년이 넘게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역사바로세우기 사업에 힘을 기울여왔으며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민중운동과 동학농민전쟁의 발발』(2002, 경인문화사), 『19세기 민중사연구의 시각과 방법』 (2015, 성균관대출판부),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 동아시아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2015, 너머북스, 공저), 『日韓民衆史硏究の最前線』(2015, 有志舍: 東京, 공저), 『19세기 동아시아를 읽는 눈』(공저, 너머북스, 2017), 「근대를 상대화하는 방법」(2009), Kaesong Uprising of 893(2010), 「19세기를 바라보는 시각」(2012), 「19세기 후반 민중운동과 公論」(2013),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 역사인식의 천망(天網)인가?」(2014),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내재적 접근」(2015), 「‘근세’ 동아시아의 直訴와 정치문화」(2016), 「‘탈근대론’과 근대중심주의」(2016) 등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