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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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17호
동학농민혁명 재조명의 단초를 마련한 ‘고부초교 100주년 기념 나만의 우표’

  동학농민혁명 재조명의 단초를 마련한 ‘고부초교 100주년 기념 나만의 우표’


재경정읍시민회 부회장 김정일



 

  필자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전북 정읍시 고부면 장문리다. 고부는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정읍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학농민의 숭고한 정신을 자연스럽게 가슴에 받아들이며 자란다.


  이곳 고부에는 두승산(斗升山)이 있다. 이 산은 방장산(고창), 봉래산(부안)과 더불어 호남의 ‘삼신산’이라고 불린다. 호남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두승산은 상생(相生)과 개혁을 표방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요람이다. 두승의 두(斗)는 벼의 용량을 재는 그릇이며 승(升)은 쌀의 용량을 재는 그릇으로 이름에 호남평야의 풍요로움이 담겨 있다. 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고부평야는 호남 곡창 지대의 주축을 이루었다. 당시의 고부는 이 일대에서 나오는 쌀의 집산지이자, 농경사회의 중심지로써 정읍보다 큰 고을이었다.


  일제는 고부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였다는 사실을 지나쳤을 리 없다. 비록 실패한 혁명이지만 역사에서 크게 평가받고 있는 이 민중의 거사가 일제의 탄압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음을 일제 당국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부는 반란의 고장이었기에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난(亂)’으로 끌어내리려 했던 저들의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일제강점 당시 1914년과 1935년 두 차례에 걸친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고부가 정읍과 부안, 고창 등에 나뉘어 편입됐다가 결국 정읍에 속한 면으로 축소된 점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올해 2014년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일제 치하와 해방을 거치면서 줄곧 '난(亂)'으로 평가 절하되어 왔다. 그러던 중 1963년 10월 3일 처음으로 ‘혁명’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황토현전적지에 세워졌으며, 지난해가 이 탑의 건립 50주년이었다. 그럼에도 무심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여전히 역사의 큰 맥으로 조명되지 못하고 곁가지쯤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2006년,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며 고부관아 자리에 있는 고부초교의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제작된 ‘고부초교 개교 100주년 기념 나만의 우표’ 발행이 언론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고부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2006년 당시 고부초등학교는 전교생 103명에 7학급인 작은 학교였다. 그러나 이 학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옹골찬 역사의 기운이 느껴진다. 동학농민혁명의 성지, 고부면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도 그렇고, 혁명의 실마리를 제공한 탐관오리 조병갑이 부임하였던 고부관아 안에 세워진 학교라는 점 또한 예사롭지 않다.


  개교 100주년을 1년 앞둔 2005년 8월에 고부초교 총동창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총동창회를 통해 모교 사랑을 도모하기 위한 동창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그 첫 작품이 바로 다음해 7월 11일에 발행돼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 ‘고부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나만의 우표’였다. 우표에는 개교 당시와 현재의 학교 전경을 번갈아 중심 사진으로 쓰고 주변부는 보조 사진으로 배치했다. 또한 태극기가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데 1906년에 개교한 학교의 설립일이 공교롭게도 광복절이라 이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농촌 지역의 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화제일 법한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개교 100주년 기념 나만의 우표 발행’을 하게 되었기에 언론에서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는 고부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으며, 일부 언론에서 동학농민혁명과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재조명을 시작하게 된 단초를 제공하였다. 전국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개최된 ‘고부초교 개교 100주년 행사’또한 성황리에 치러졌다. 짧은 기간 동안 학교 발전의 행사를 위해 모인 금액이 무려 1억 7천만 원이나 된데다 100주년 행사 날 삼복더위를 무릅쓰고 동문 2천여 명과 재학생, 지역주민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동학농민혁명 때 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며 놀랐다. 한 장의 ‘개교 100주년 기념 나만의 우표’가 동학농민혁명 재조명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표발행을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의 불을 지피듯이, <월간조선>에서는 묻혀버린 역사적 진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그 후의 행적을 확인 취재하여, 2006년 11월호에 24(62-85)쪽에 걸쳐 실었다. 제호는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의 증손녀’로, 부제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주적 조병갑은 후일 대한제국의 판사로 동학교주 최시형에 사형선고’를 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12월호에도 21(496-516)쪽에 걸쳐 ‘조병갑은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의 부친을 곤장으로 쳐죽여’라는 제호와 부제 아래, ‘조병갑은 부임하는 곳마다 제 손으로 공덕비 세워 고부군수 때 1000냥 수탈해 아버지의 공덕 비각 세웠다.’는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 해 12월 9일 조기숙 씨는 ‘동학농민혁명 112주년 기념 유족의 밤’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유족 측에서 이를 받아들여 초청함으로써 행사에 참여한 조 씨는, 유족들 앞에서 증조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으며 진심 어린 사과에 유족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논리라고 했던가. 우리 조상의 숭고한 ‘혁명’을 ‘난’으로 폄하한 일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는 정신적 자산 ‘동학농민혁명’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에게 가치 있는 교훈을 남겨 준 그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필자약력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여행작가 /전 정보통신부 홍보담당관으로 정년퇴직했으며 저서로는 <나 같은 공무원과 이야기 하고 싶다><우체국도 은행일 한다>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총동창회 고문과 재경정읍시민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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