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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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열기
2024년 가을 57호
130주년 기념 미술전(美術展)

동학, 재현의 언덕, 발현의 골짜기, 현현의 틈


신용철(시골큐레이터)


  이번 호의 기획 코너에는 신용철 부산민주공원 학예실장의 글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시를 마치고’를 싣습니다. 신용철 학예실장은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때 ‘놀이패 자갈치’ 단원으로 ‘고부봉기 역사맞이 굿’(1994년 2월) 행사에 참여한 후 줄곧 미술계의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업에 몸담아왔습니다.

 

⊙ 전정호, 백산, 목판화, 2023

1. 1894-1994-2024

  1894년 들판에 나는 없었다. 1994년 들판에 나는 있었다. 2024년 나는 여기에 있다. 동학농민혁명 100년을 거쳐 130년 사이에 나는 걸려 있다. 나부끼는 비나리다. ‘비나리’는 비는 말이다. 비는 몸짓이다. 먼저 죄를 빌어야(회개), 바램을 빌(기원) 수 있다. 비나리는 회개와 기원을 함께 담은 말이다. 시골큐레이터 비나리는 동학으로부터 비롯한다. 100년을 찍고 30년을 채비하여 이제 이 자리에서 나부끼고 있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이 3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시작하여 전국을 순회하는 때, 나는 경남 진주 농민군의 아들이 되어 전라도 부안군 백산에 올랐다. 이것이 나의 본풀이다. 1994년 나는 부산의 마당굿패 ‘놀이패 자갈치’의 새내기 단원이었다. 탈춤과 풍물을 갈고 닦으며 술자리를 따라다니던 새내기는 전국 딴따라들이 모이는 100주년 ‘고부봉기 역사맞이굿’을 위해 내장산 기슭으로 모였다. 본디 역할은 ‘칼노래 칼춤’ 부분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기껏 초단 주제에 검도유단자라고 떠벌린 탓이었다. 하루를 연습하고 있다가 급하게 다른 배역으로 바뀌었다. ‘백산대회’ 부분에 출연할 15살 남자아이 역할이 필요했다. ‘칼노래 칼춤’ 배우 가운데 작은 덩치의 두 사람이 후보에 올랐다. 부산대 무용과를 다니던 이상운과 내가 후보에 올랐으나, 이상운의 목소리가 너무 굵어서 내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진주농민군(통영 새터 유용문 분), 아내(서울 극단 현장? 김현숙)의 열다섯 살배기 아들이 되어 백산 언덕에 서게 되었다. 이것이 시골큐레이터 데뷔작이 되었으며, 같은 해 놀이패 자갈치의 동학농민혁명 주제 마당굿 ‘고시랑당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1994년 20대 딴따라 첫길에 맞은 동학농민혁명이 30년 비나리를 거쳐 2024년 시골큐레이터의 그림굿으로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으로 서른 해를 아팠다. 아팠던 이가 아픈 이를 낫게 한다. 무당은 먼저 아팠던 사람이다. 먼저 아팠던 사람이 이제 아픈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것이다. 1894년에서 비롯하여 1994년을 거쳐 2024년에 마련한 시골큐레이터의 동학농민혁명 전시는 치유된 치유자가 그리는 그림굿이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시를 채비하는 큐레이터는 설레고 두려웠다. 2023년부터 전국 순회전을 꿈꾸며 차근차근 채비하였다. 딴따라로 참여해서 당시 현장을 보진 못했지만 도록(圖錄)으로 본 100주년 기념전시는 그 규모가 엄청났다. 답사-전시-연계 공연으로 이루어진 순회전시의 틀, 다양한 형상화 방식을 수용한 작품의 구성은 130주년 전시를 채비하는 큐레이터에게 좋은 전범이 되었다.


⊙ 고부봉기 역사맞이굿, 1994                                                                                  ⊙ 고시랑당 이야기, 놀이패 자갈치, 1994

2. 재현의 언덕, 발현의 골짜기, 현현의 틈

  마침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지난해 말 펴낸 『동학농민혁명 미술분야 현황조사 결과보고서』가 무척 반가웠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소장작품 가운데 해당 작품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나도 현황조사에 참여하게 되어 결과보고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보고서에 실린 760점의 작품은 시기별, 작가별, 유형별로 잘 갈무리되어 있고 도판이 함께 실려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다만 조사 기간이 두 달밖에 안 돼 빠진 작품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일부 명제에 잘못된 정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 주제 시각예술 작품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전수조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일부 한계와 오류는 관련 연구와 추가 조사를 통해 보완할 수 있으리라 본다. 먼저 보고서에 실린 760점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며 시기별, 작가별, 유형별(재료) 분류를 넘어선 어떤 분류의 틀거리가 떠올랐다. 작품의 형상화 방식에 따른 분류이며, 이는 형상화의 태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련한 틀거리는 ‘재현-발현-현현’이라는 갈래이다. 세 가지의 틀거리는 시각기호를 이루는 세 가지 방식의 작동원리인 ‘도상-지표-상징’을 바탕으로 한다. 이를 ‘언덕-골짜기-틈’이라는 미학 범주로 갈무리 해보았다. 보고서에 실린 작품 가운데 몇 작품을 본보기로 들어 틀거리를 선보인다. 이것은 이제 첫발은 디딘 하나의 시론이며 동학 주제 작품을 들여다보는 낯선 눈이다. 



⊙ 박홍규, 삼례집회, 한지에 채색, 2012

  재현은 사건을 기록하는 일이다. 사건의 현장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다. 도상(icon)은 지시대상을 비슷하게 그려내는 기호이다. 아이콘은 직관의 인터페이스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언덕이다. 역사의 길에 둥두렷이 떠오른 언덕이다. 재현은 지시적 재현. 성찰적 재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그 경계는 흐릿하다. 박홍규의 동학농민혁명 서사그림은 73점으로 가장 많다. 박홍규는 동학농민혁명에 몰두하는 판화가이다. 박홍규는 동학농민혁명 대부분의 국면을 지시적 재현 방식의 서사판화로 그려내고 있다. 신학철의 근작은 사건의 국면을 그려내되 성찰적 재현의 방식으로 사건의 표면에 잠재된 국면을 기이한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 신학철, 백산 일어서다, 캔버스에 유채, 2022

  발현은 속에 있거나 숨어 있는 것을 끄집어내어 드러내는 것이다. ‘발굴적 재현’이라고 달리 말해도 될 듯하다. 지표(index)는 메타데이터이다. 해시태그이다. 닮지 않았으나 지표라는 기호를 따라 가면 국면의 골짜기를 만날 수 있다. 우물 같은 것이다. 우물은 들여다 듣는 것이다. 몸을 기울여 코를 빠뜨리고 귀를 뻗어 길어올리는 것이다. 발현의 작품은 우물로 이끄는 눈귀이다. 우물에는 이야기들이 살고 있다. 이야기들은 배가 고프다. 우물 밖으로 고시랑거리는 소리가 울려나온다. 이야기들에게 이야기밥을 줘야 이야기들이 살아나갈 수 있다. 말하는 그림이랑 듣는 귀는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민중미술 2세대 판화가 유연복의 판화와 구본주의 조각은 사건의 국면 아래 도사린 민중의 힘, 염원이라는 관념을 끄집어내어 드러내고 있다.



⊙ 구본주,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목조-철 혼합재료, 1991


⊙ 유연복, 갈라치며 나아가라, 목판채색, 1989,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소장


⊙ 홍성담, 달빛에 바랜 눈물, 캔버스에 유채, 1994

  현현은 사건의 국면이나 사건의 잠재된 국면에서 포착되지 않는 정신이나 힘이다. 그리스어 ‘epiphany’와 어금버금한 말이다. 사건의 국면 전부터 도사리고 있던, 사건의 국면 어디에나 츨렁거리던, 사건으로부터 이어져 현재까지 일렁이는 것이다. 가깝고 먼, 일부이며 전체인 비유로 이어진, 입자이며 파동인 채로 움직이는 상징(symbol)이다. 이는 우리 스스로 마련하고 키운 상징의 숲그늘에서 비롯한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고, 탈역사의 역사화, 오래된 미래이다. 그리하여 생활세계에서 그러잡을 수 없는 생활세계 언저리 어지자지한 곳과 때에서 노리는 성긴 틈이다. 홍성담의 가로 걸개그림은 괘불 형식의 걸개그림과 달리 무속화 방식의 걸개그림에 동학의 정신을 주형상과 보조형상,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구성하고 있다. 신학철의 세로 목판그림은 한국현대사를 동학의 정신을 바탕으로 쌓아놓았다. 동학을 바탕으로 현대사의 주요 모순, 갈등을 본풀이, 비나리 하는 그림탑이라 할 만하다.



⊙ 신학철, 유월항쟁도, 천에 목판, 1999,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소장
 
3.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시

○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 순회전시
  - 2024. 3월-6월
  - 은암미술관(광주광역시), 울산노동역사관(울산광역시), 민주공원(부산광역시) 



⊙ 광주, 은암미술관 전시포스터


⊙ 부산, 민주공원 전시포스터

  2023년 하반기 참여작가를 확정하여 12월에 정읍-해남-장흥 답사를 거쳐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소장작품 3점(김준권, 신학철, 이철수), 참여작가 14명(김경화, 김미련&싱어게인언니야!, 김우성, 김화순, 박경열, 박성우, 박재열, 서지연, 윤은숙, 전상보, 전정호, 정지영, 홍성담, 홍성민) 작품 15점으로 구성하였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시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하고 가장 길게 이어진 전시였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올해 동학 주제 전시의 전범이 되었다. 참여작품 가운데 김화순, 박경열, 서지연, 홍성담의 작품은 9월 광주시립미술관 특별전에 초대되었다.

○ 제36회 오월전, 아직 오지 않은 대동세상
  - 은암미술관 등 2024년 5월



⊙ 제36회 오월전 포스터

  2024 오월미술제의 제36회 오월전은 전시 주제를 ‘동학에서 오월로’로 잡고 26명 작가의 작품을 전일빌딩 245, 은암미술관, 갤러리Hyun에 나누어 걸었다. 동학과 오월의 정신을 잇고 이를 당대의 시각으로 구현한 전시였다.

○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
  - 동곡미술관 2024년 5월-7월



⊙ 동곡미술관 기념전시 포스터

  동곡미술관은 전시에 앞서 연계콜로키움을 열어 동학의 정신과 예술의 관계를 성찰하였다. 학교법인 부설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로 보기엔 놀라울 정도의 규모와 구성을 보여주었다. 민중미술 1세대인 신학철, 김정헌, 민정기, 주재환의 작품부터 2세대 김준권, 구본주, 조정태를 이어 3세대 작가까지 33명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구성의 전시였으며 동학 주제 전시의 중간결산다운 역량을 보여주었다.

○ 동학에서 오월로
  - 광주시립미술관 2024년 9월-12월



⊙ 광주시립박물관 전시 포스터

  광주비엔날레 기간에 열리는 광주시립미술관 특별전 ‘시천여민-동학에서 오월로’는 올해 동학 주제 전시를 결산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 김준기 관장은 작년부터 전국의 큐레이터, 작가들과 동학 주제 답사를 다니며 올해의 주제 전시를 예감하였다. 3월부터 이어진 순회전시를 관장과 담당 큐레이터가 충실히 관찰하였다. 40여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는 올해 열리는 주제 전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가졌다. 일본 민중미술의 대표작가 도미야마 다에코를 비롯한 국외작가의 작품도 참여한다. 작가 홍성담은 앞선 순회전시에 걸린 9미터 세로 걸개그림 ‘시천주조화정(2002)’과 함께 오월의 정신을 구현한 2024년 신작을 함께 건다. 2폭의 세로 걸개그림이 동학에서 오월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지 몹시 설렌다. 우리 모두 그림틀을 타고 동학농민혁명의 언덕, 골짜기, 틈을 타고 노니세. 동학농민혁명의 들판과 우리 광장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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