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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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가을 61호
임영선, ‘불멸, 바람길’ 조각가 인터뷰

​불멸(佛滅) ─ 동학농민군의 숭고한 정신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영원하라



  이번 호 기획에는 가천대학교 예술대학 임영선 교수를 모셨습니다. 임영선 교수는 지난 2022년 6월 25일 정읍 황토현전적지에 건립한 ‘불멸, 바람길 _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상’을 제작한 조각가입니다. 이 작품은 제막 이후 국내외 방문객들로부터 찬사(讚辭)를 받으며 역사 기념조형물의 한 전형(典型)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작업실에서 작가를 만나 작품구상 단계에서부터 제작에 이르기까지 과정, 작가의 의도와 숨겨진 이야기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문) 교수님 반갑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계간(季刊)으로 발행하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은 인쇄본과 함께 웹진(e-book)으로 제작됩니다. 그래서 발행 때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은 물론이고 관계기관과 단체, 전공연구자, 언론사 등 5천여 곳에 배포됩니다. 먼저 『녹두꽃』 독자분들에게 교수님 간략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녹두꽃』의 주요 독자인 참여자 유족 어르신들과 전국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고자 애쓰시는 기념단체 관계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기도 성남시에 소재한 가천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현대미술을 가르치는 조각가 임영선이라고 합니다. 저는 2015년부터 경기도 광주 탄벌동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이곳에서 생활과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문) 여름방학이라 대학 강의가 없어 조금 여유가 있으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작업실에 계시네요? 요즘은 어떤 작품에 예술혼을 불어넣고 계시는지요? 


답) 올해는 제가 31년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정년으로 퇴임하는 해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학생들 지도에 쏟았던 열정을 제 개인의 작품 창작에 힘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학생 지도에 뒤로 밀렸던 개인전을 위한 작품구상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 네, 내년에는 교수님 개인전을 볼 수 있겠네요. 어떤 작품이 전시될까 기대됩니다. 정읍시에서 추진한 정읍황토현전적에 동학농민혁명 상징조형물 제작·설치를 위한 작품 공모(公募)가 2021년 6월에 있었지요? 이 공모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요?


답) 동료 작가들을 통해서 공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공모에 당선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말하곤 합니다. 어려운 일임을 알면서도 왠지 처음부터 이 공모에는 꼭 참여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3.1운동과 항일 독립운동의 뿌리인 동학농민혁명이 주제라서 조각가로서의 개인적 가치를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우리나라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겠다는 점이 특히 저의 마음이 끌었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공모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문) 지난 2021년 여름까지는 현재 ‘불멸, 바람길’이 서 있는 그 자리에는 1987년 10월 제막된 ‘전봉준 선생상’이 서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동상이 제막 이후 줄곧 미비한 고증과 함께 동상 제작자 김경승의 친일 행적 등으로 논란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정읍시민은 물론이고 전북도민 등 많은 사람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여 정읍시가 전라북도,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을 통해 필요한 행정절차를 거쳐서 2021년 가을 기존의 동상 철거하는 것과 새로운 기념조형물 건립을 위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몇 해가 지난 일이라 생각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기억을 되살려 작품 공모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2021년 6월 정읍시에서 「동학농민혁명 동상 제작 및 설치」에 따른 작가 공모를 공고하였습니다. 총 30여 명의 조각가들이 응모하였는데, 이들 중에서 1차 서류 심사를 통해 5명을 선정하였습니다. 선정된 작가를 대상으로 7월 9일까지 공모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설명회에서 작품 모형을 8월 25일까지 제출하는 것으로 일정이 합의되었고, 8월 27일 정읍사예술회관에서 매우 엄격한 PT 심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심사에서 영광스럽게 저의 응모작품 ‘불멸, 바람길’이 최종 작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문) 최종 작품으로 선정된 후 역사성을 담보하기 위해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하고, 제반 사안에 대한 고증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할애했다고 들었습니다. 나아가 응모한 작품의 규모가 워낙에 커서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래저래 작품 제작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어땠습니까? 


답) 네, 구상하여 응모한 작품의 규모가 워낙에 큰 탓에 말씀하신 것처럼 재료를 확보하는 일부터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나아가 기존에 서 있던 ‘전봉준 선생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설치할 작품이라 일반적인 경우보다 심리적인 부담 또한 아주 컸습니다. 거기다가 제작 기간에 겨울이 들이 있어서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동상 제작 과정에서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점토 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점토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점토의 수분 상태를 적정하게 유지하여 얼지 않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겨울철에 이 작업을 수행해야 해서 넓은 작업실의 온도를 맞추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온이 높으면 물러버리고, 낮으면 흙이 얼어서 깨져버리거든요. 그래서 적정 온도로 작업실을 유지하는데 상당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나아가 행정절차도 만만치 않잖아요? 다행스럽게 이번 동상 제작에는 정읍시장님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이 각별히 신경을 써줘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수십 차례 회의를 통해 자문을 해주신 건립위원회 위원님들 덕분에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차질을 빚지 않고 과업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 작품의 이름이 ‘불멸, 바람길’입니다. 부제가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상인데, 작품 이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작품의 배치구조 등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답) 작품의 이름을 ‘불멸, 바람길’이라고 붙였지요. “사라지지 않은 영혼들”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큰 구조는 사람 인(人)자 형태로 배치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늘이다’는 동학농민군의 차원 높은 인본주의 정신을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인(人)의 시작 지점에 전봉준 장군님을 모셨고, 좌우로 동학농민군의 행렬을 배치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작품배치에 원근법을 사용하였는데, 원근 배치가 앞쪽 환조의 공간적인 제한성을 극복하고, 뒤쪽에 많은 동학농민군 배치에 적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 작품이 제막된 뒤 국내외 방문객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관람자들의 반응들이 아주 긍정적입니다. 군상(群像)이 주는 웅장함과 함께 각각의 농민군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예술적 형상화가 이루어져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인의 작품이라 얘기하기가 다소 멋쩍을 수 있겠지만 그냥 편안하게 작품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역사적인 인물의 동상은 대체로 높은 좌대 위에 우뚝하게 서 있는 모습이 대다수를 이룹니다. 이는 평등을 추구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군의 정신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지에 인(人) 형태로, 마치 합죽선을 펼친 듯한 나선형으로 동학농민군의 출정(出征)을 구현하였습니다. 특히, 평등이라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반영하여 작품의 기단을 높이지 않고 지상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기단을 60cm로 낮게 설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맨 앞에 갓을 벗어서 바른쪽 손에 든 전봉준 장군이 기단으로부터 230cm로 여타의 동상들에 비하면 낮습니다. 좌우로 배치된 동학농민군도 평지에 서 있는 형태로 배치하였습니다. 조각된 군상(群像)의 숫자는 모두 1,600여 명으로입니다. 230cm 크기의 전봉준 장군을 비롯하여 육안으로 형태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숫자는 600여 명이고, 그 이하 5mm 정도로 아주 작은 농민군이 1,000여 명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1894년에 비춰 1,894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문) 작품의 예술성은 물론이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때로부터 130년이 지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정치경제, 사회·문화 전반에서 크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에 그만큼 어려움이 따랐을 텐데 제반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답) 작품이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기까지 참 많은 분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그 위상, 세계 각국의 역사 인물들의 동상을 깊이 있게 분석하여 큰 도움을 주신 전봉준장군동상재건립추진위원회 신영우(충북대 사학과 명예교수) 위원장님과 신순철(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위원님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동학농민혁명 연구자이면서 1980년대 중반기부터 기념사업에 몸담아온 두 분의 안목과 철저한 고증에 대한 자문이 없었다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문) 작품 곳곳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대목이 있지요? 작품 맨 앞에 서 있는 전봉준 장군이 갓을 머리에 쓰지 않고 벗어서 바른손에 들고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모습에도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갓을 벗어 손에 들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전봉준 장군의 형상이 파격적이기도 한데, 여기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요?


답) 작품을 아주 눈여겨보셨네요. 보통 사람들은 그냥 지나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맨 앞에 선 전봉준 장군님은 활개 치듯 오른팔을 길게 뒤로 뻗고 있는데, 그분 손에 갓이 들려있습니다. 양반 신분을 내려놓고 농민들과 차별 없는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하는 결연한 의지를 예술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동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민군 대열에 여성도 있고, 엄마 등에 업힌 코흘리개 아이도 있습니다. 또한 등 위에 잔뜩 짐을 진 소도 있지요? 이 소도 찬찬히 보면 그냥 소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의  ‘칡소’입니다. 이 밖에도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지게꾼, 전령 등 다양한 연령대의 동학농민군이 조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문) 잘 알고 계시듯 동학농민혁명은 크게 봄과 여름철의 전개된 1차 봉기, 가을과 겨울에 전개된 2차 봉기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반영하여 작품을 좌우로 배치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답) 동상 중앙에서 좌측은 1차 봉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기에 동상의 복식이 가벼운 반팔옷이고, 무기도 대체로 죽창이나 농기구입니다. 반면 우측은 2차 봉기를 표현하였기 때문에 동상의 복식이 두꺼운 솜옷과 짚신에는 설피를 차고 있습니다. 무기 또한 화승총이나 천보총 등을 주를 들고 있습니다. 1차 봉기가 봄과 여름철이었고, 2차 봉기가 늦은 가을과 겨울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관계를 반영한 것입니다. 또 숨겨진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왼쪽 1차 봉기 선상에 서 있는 소년이 오른쪽 2차 봉기 선상에서는 농민군 전령으로 활약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농민군들의 염원을 보여주고자 퍼즐처럼 숨겨놓은 것입니다. 또한 부조 중간에 장흥에서 활약한 말을 탄 여성 동학도 이소사, 혁명에 참여한 양반과 보부상 등도 농민혁명 대열에 배치하였습니다. 



문)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당장 황토현전적지로 달려가 동상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집니다. 상당히 긴 시간 인터뷰하였는데, 혹여 빠뜨린 얘기나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요?


답) 저는 작가로서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제작하였으니 이제 저의 작품은 관람객들의 것입니다. 따라서 작품을 감상할 때 반드시 제작자 의도에 맞춰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관람객들의 자유로운 해석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다만 불멸 바람길이라는 작품의 이름처럼 1894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아시아를 격동시켰던 동학농민군의 불굴의 의지,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이 꺼지지 않는 정신이 관람객들의 가슴에 깊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끝으로 과거 역사가 그저 지나간 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함성이 불멸 바람길을 통해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다시 되살아오길 기대합니다.



문) 네, 교수님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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