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김형수(시인, 신동엽문학관 관장)
2019년이었다. 법무부 장관에 오른 이가 페이스북에 ‘죽창가’라는 노랫말을 올렸다가 빨갱이라고 융단 폭격을 받은 일이 있다. 어쩌면 이는 한국 미디어 사회의 상식 수준을 참혹하게 드러낸 우리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당시 장관은 SBS 드라마 ‘녹두꽃’을 보고 소개한 건데, 동학농민군을 추모하는 시에 빨갱이 타령을 들이대는 짓도 무참하지만, 그에 얽힌 서사의 맥락마저 밟히는 건 민망하기 짝이 없다. ‘죽창가’가 출현한 경위는 이렇다.
그러니까 1970년대 초입, 무명의 시인 청년 김남주가 대학을 중퇴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해남으로 간 지 며칠 뒤이다. ‘펜대’를 놀려서 민중을 요리하는 ‘화이트칼라’를 파충류만큼이나 싫어하는 그가 논일을 마치고 저녁상을 받았는데, 라디오에서 어처구니없는 뉴스가 나왔다. ‘대통령 특별선언’을 찬양하는데 그 내용이 비상계엄령 선포, 국회 해산, 정당 및 정치 활동 금지였다. 헌법의 주요 기능이 마비된다는 소리에 김남주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다 있나.”
뉴스를 보면서 대뜸 퍼부은 일갈에 식구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대체가 성깔이라곤 없는 천하의 물봉이 무엇 때문에 저리 사나운 말을 내뱉는가? 곁에서 아버지가 놀라는 줄도 모르고 김남주는 오직 군사쿠데타도 모자라 또다시 제2의 쿠데타를 감행한 사실에 분개하여 씩씩대다가 끝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아. 내일 광주로 가마. 뭔 짓이든 해야 하지 않겄냐?”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을 잡아서 죽이는 일을 하던 일본군 장교였던 자가 독립된 나라에서 대통령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늘 치욕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둘이 이마를 맞대고 궁리했다. 어떻게 해야 군사쿠데타 정권에게 뼈아픈 한 방을 날릴 수 있을까? 해법을 고민하다가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무안의 박석무 선배를 찾아갔다. 그런데 박석무 선배가 느닷없이 친구 조태일이 녹두장군 이야기를 서사시로 쓰겠다고 동학농민혁명 전적지 답사를 떠났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갑오년의 역사를 끝없이 펼쳐놓았다.
얘기를 듣던 두 사람도, 독재에 저항하려고 작정한 터에 역사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르렀고, 그 장소로 동학농민혁명 전적지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정읍행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전봉준 고택과 황토현과 백산 전적지를 돌아보던 중에 놀랍게도 두루마기를 입은 시골 어른들이 동학농민군 전적지를 찾아와 시국을 논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이에 감동한 김남주 시인이 즉석에서 지은 것이 ‘노래’라는 제목의 시(詩)이다. 나중에 이 시에 곡이 붙여져 불린 게 ‘죽창가’라는 민중가요이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 꽃이 되자 하네 꽃이 /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 녹두꽃이 되자 하네 /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 새가 되자 하네 새가 /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대는 / 파랑새가 되자 하네 /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 불이 되자 하네 불이 /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 들불이 되자 하네
문명에 소외된 두메산골이 내게 와서 ‘함께’ 녹두꽃이 되자 하고, 또 들불이 되자고 해서 나도 동학농민군의 죽창이 ‘되고자’ 한다는 뜻을 가진 이 시는 김남주가 유명한 시인이 된 뒤에도 대표작으로 꼽히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답사를 통해 1972년 12월 전국 최초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함성지’ 사건을 구상하였고, 나중에 함평 고구마 투쟁 때 이강이 김남주에게 부탁해서 쓴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와 「동학농민군의 피와 넋을 되살리자」라는 제목의 격문이 현장에서 발표되어 현대 농민운동사에 동학농민혁명의 전통을 연계시켰다는 점이다.
차제에 밝히건대,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문학청년 신동엽이 동학농민군 진격로를 답사한 결과가 서사시 「금강」을 낳게 했고, 훗날 5.18 광주민중항쟁을 보고 놀란 김진경, 이영진 등이 동학군 진격로를 답사한 뒤에 결성한 ‘오월시 동인’이 1980년대를 시의 시대로 만들었으니, 동학농민군 진격로는 놀라운 민족문학의 산실이었다. 인문학적 소양이 모자랄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민족사의 위대한 유산을 제발 싸구려 정쟁에 좀 써먹지 말라. 괴롭다.
김형수 / 1985년 문단에 등단하여 시, 소설, 문학평론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동학농민혁명 대서사시 ‘금강’을 저술한 민족시인 신동엽을 기리는 「신동엽문학관」 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빗방울에 대한 추억』,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소설집 『조드』(전 2권), 『나의 트로트 시대』, 『이발소에 두고 온 시』, 평론집 『반응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흩어진 중심』, 평전(評傳) 『문익환평전』, 『소태산평전』, 『김남주평전』 등 다수의 저술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