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도(首都) 서울특별시 종로 네거리에 녹두꽃 다시 피다
-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사업의 새로운 이정표 -

동상 : 청동 1650×1250×1400(H)㎜ / 좌대 : 화강석 1100(H)㎜ / 제자(題字) 효봉 여태명
지난 4월 24일, 전봉준 장군 순국 123주기 기일을 맞아 서울 종로 네거리에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동상은, 건립부지 확보를 위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노력과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범국민적인 모금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이사장 이이화)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선시대 전옥서(典獄署) 터(서울 지하철 종각역 5~6번 출구 영풍빌딩 앞)에 세워졌다. 전봉준 장군은 1984년 12월 28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의금부에 설치된 권설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1895년 4월 24일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부대시참’(軍服騎馬作變官門者不待時斬)이라는 죄목으로 교수형을 받았다.
제막식에는 정세균 국회의장,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유성엽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강창일 국회의원,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 한승헌 변호사·前감사원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이정희 천도교령, 이이화 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승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이기곤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장 등 각계각층 2,0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은 “종로에 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은 동학농민혁명 전국화 및 세계화의 새로운 기점”이라는 요지의 축사를 하였다.
동상의 전체적인 형상은 체포될 때 다리에 큰 부상을 입어 들것에 들린 채 서울로 압송된 후 재판정을 오가는 과정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사진 속의 전봉준 장군 모습이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일제강점기, 민족분단 등으로 점철된 한국 근·현대사를 불구(不具)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사의 새벽을 열다가 부상당한 전봉준 장군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이 큰 울림을 준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화강암 좌대(座臺, 110cm) 위 녹두장군 좌상(坐像, 40cm)으로 이루어진 동상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 마치 군중(群衆)이 녹두장군을 떠받드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동학농민혁명이 일제강점기 항일의병과 3·1운동 그리고 해방이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광화문 촛불시민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늘, 지금 여기에 되살아오는’ 역사의 현재화(現在化)가 잘 구현된 조형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상 좌대 뒷면 글
전봉준(1855 ~1895)
동학농민군의 함성은 1894년 이 강산을 뒤덮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지휘한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벼슬아치를 몰아내고 폐정을 바로잡기 위해 봉기하였다. 농민통치기구인 집강소에서 개혁활동을 펼치던 중 일본이 침략 음모를 꾸미자 이를 몰아내려고 전면 재봉기 하였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이 주력인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전옥서(한성부 중부 서린방)에 갇혔다. 그리고 권설재판소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다음날인 1895년 4월 24일 새벽 2시에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한 등 동지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다.
이제 순국 123주년을 맞이하여, 국민 성금을 모으고 서울시의 협조를 받아, 종로 네거리 전옥서 터에 녹두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동상으로 세운다.
2018년 4월 24일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