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을 창도한 최제우가 대구감영에서 사형당하기 한 해 전인 1863년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조대비에 의해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고종)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맡게 되었다. 대원군의 시대가 열렸다.
1862년 2월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이른바 '임술민란'이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1864년 11월에는 경기·충청·황해 3도에서 화적떼가 민가를 약탈하는 등 국정은 혼란스러웠다. 대원군은 집권하여 일대 개혁정책을 시도했으나 중축이 부러지고 곪을 대로 곪은 국정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실책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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