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이 동학을 창도한 1860년은 대한제국이 1910년 국치를 당하기 반세기 전이다. 그가 사형당한 지 2년 후 (1866년) 병인양요, 7년 후 (1871년) 신미양요, 11년 후 (1874년) 운요호사건과 이듬해(1875년) 강화도조약으로 개문납적(開門納賊)의 변이 시작되었다.
수운이 <검결>을 짓고 칼노래를 부른 것을 두고 지배집단은 '반역'으로 다스리고 끝내 목을 졸라 죽였다. 지배집단과 관리들이 하지 못한 개혁(개벽)을 종교인이 나섰다가 목숨을 잃고 다수의 제자들이 변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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