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을 전국에 알리겠습니다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겸
제119주년 기념대회 집행위원회 위원장 구왕회

1893년 충청북도 보은에는 2만여 명의 동학도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우리들 수만이 죽기로서 힘을 합하여 일본과 서양오랑캐를 쓸어 대보(大報)의 의리를 본받고자 한다’며 척왜양의 기치를 내건 통고문을 내걸었으니 이가 바로 보은집회였다. 또한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은 보은을 거점으로 활동하였으며, 2차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도 최시형 교주의 명이 떨어지자 곧바로 충청도 지역의 수많은 농민군들이 일제히 봉기하였다. 이러한 보은에서 오는 10월 17일(목)부터 10월 18일(금)까지 동학농민혁명 119주년 기념대회가 열린다. 기념대회를 주관하게 된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구왕회 회장님을 만나 기념대회 개최에 대한 감회와 보은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문) 구왕회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답) 저는 보은에서 유선방송사를 운영하다 2002년 부터 보은문화원 부원장으로 재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지역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던 중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접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02년 보은동학기념사업회를 발족해 해마다 개최되는 보은동학제를 주관해 왔습니다. 2013년에는 신임 문화원장으로 선출되어 현재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보은문화원 원장, 보은군체육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문) 올해 10월에 119주년 기념대회를 보은에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감회가 새로우실 텐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답) 보은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에 보은읍 강신리에서 펼쳐진 북실전투 위령제와 천도교가 주관하여 장안면 장내리 속리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보은취회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동안 보은지역에 국한되어있던 동학농민혁명 행사들이 이번 119주년 기념대회를 계기로 전국적인 행사로 거듭나 보은지역이 동학농민혁명의 성지임을 전 국민에게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이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지역에 확산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어떻게 설립되었습니까?
답)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이후 보은문화원에서는 보은지역이 동학농민혁명의 성지임을 알리고자 1999년에 범군민 보은동학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그 이후 독립된 민간단체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2002년에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발족하여 본격적인 선양사업 추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 기념사업회를 이끌어 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습니까?
답)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동학농민혁명 유족발굴사업입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씻기지 않은 상처가 보이지 않게 남아 있어 유족발굴사업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행히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선대 분들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어 어느 정도 성과는 거두었습니다만, 아직도 밝히고 싶지 않은 상처로 생각하는 후손 분들의 모습에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문) 보은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정비할 계획이 있습니까?
답) 보은읍 성족리에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조성되어 북실전투와 보은집회를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공원 활성화를 위해 기념관을 세우고 상징물들을 보완해 나갈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보은집회가 있었던 보은군 장안면 장내리 일대에는 현재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시설이 부족해 추후 보은취회기념관을 건립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 보은에서는 어떤 분들을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었습니까?
답)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후 보은지역은 마지막 전투지 중 한 곳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후손들은 그로 인해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했던 뼈아픈 상처를 안고 있기에 유족은 물론 당시 구체적인 활동 인물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족등록 사업을 통해 후손들이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나타나고 있으나 입증자료가 불충분하여 유족등록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문) 보은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하여 어떤 사건들이 있었습니까?
답) 보은지역은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해 크게 두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1893년 3월 중 20여 일 동안 해월 최시형 선생을 중심으로 보은집회가 열렸던 것입니다. 당시 광화문 복합상소가 실패로 끝나자 대도소가 있었던 장안마을(지금의 보은군 장안면 장내리 일대)에 적게는 2만 많게는 7만 여명의 동학교도들이 장안마을을 향해 보국안민, 척왜양창의 깃발을 걸고 집결했습니다. 아울러 백범 김구 선생 역시 황해도 일대 두령들과 함께 1893년 가을에 장안마을에 찾아와 해월 최시형 선생을 뵙고 간 사실이 백범일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막바지에 동학의 지도부와 동학농민군 5,000여명이 북실마을로 집결해 마지막 전투를 준비했고 2,500여명이 참혹한 죽음을 당한 북실전투가 있었던 곳입니다.
문) 기념재단에 바라는 것이 있으십니까?
답) 동학농민혁명은 한 지역만의 행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특별법 제정이후 많은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민들과 지역민들이 느끼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체감은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전 국민이 공감하는 역사적 사실로서의 동학농민혁명을 알리는데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보은지역은 아직 발굴하지 못한 유족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족 발굴 사업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지속될 수 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