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면히 흐르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
김양식 충북발전연구원 충북학연구소장
오월이다.
5월은 지난 근현대 1백년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정신이 발현된 달이기도 하다. 118년 전 호남 벌판을 누비던 동학농민군이 드디어 전주성을 점령한 달도 5월이고,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시위운동이 전국으로 번져나가 곳곳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진 것도 4월에 이어 5월이고,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이 일으킨 민주화운동이 교수들도 참여하는 등 5월에 들어와 더욱 확대 발전하였고,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아픔도 5월에 있었다.
118년 전 5월은 혁명의 에너지가 폭발하던 열정과 환희의 달이었으나, 결국 일본군의 개입으로 동학농민혁명은 무수한 생명을 역사 속에 묻도록 한 뒤 처절히 끝나고 말았다. 안으로는 봉건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밖으로는 침략 외세를 물리쳐 자주적인 근대사회를 이룩하고자 한 동학농민군의 패배는 이후 우리 근현대사의 험난한 과정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농민군들이 지향한 소상품생산자로의 자립과 성장, 근대적인 인간으로서 누릴 자유와 평등의 획득, 민중적 정치권력의 수립과 자주화는 농민전쟁의 패배와 이어 전개되는 지난 1백년 근현대사의 파행성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도 역사 주체들의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1894년에 동학농민군들이 보여준 반봉건․반외세의 투쟁경험과 지향은 잘못된 근대의 방향설정과 그 속에서 형성된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지속적인 투쟁의 출발점이 되곤 하였다. 그것은 근현대 민족운동의 수원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5월에 타오르곤 하던 한국 근현대 민족운동사는 동학농민혁명을 출발점으로 하여,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비록 시대적 상황이 달랐어도 그 속에 흐르는 두 가지의 공통된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민족자주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다. 그것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통해, 강대국들로부터의 자주를 통해 달성되는 것이었다.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이 지향한 뚜렷한 목표의 하나는 분명 민족 해방과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에 있었다. 이는 곧 동학농민혁명에서 명확히 제시된 반외세 자주노선이 투영돼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올바른 민주사회를 실현하고자 한 점이다. 특히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은 그 절정을 이루어 민주사회를 앞당기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뿌리는 바로 동학농민혁명에 있었다. 1894년에 나타난 반봉건의식과 투쟁은 20세기에 들어와 비민주적인 독재권력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민주화를 실현시키려는 운동으로 계승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동학농민혁명은 근현대 민족운동의 수원지 역할을 하였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거기서 보여준 반봉건․반외세이념은 지난 100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민족운동에 투영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은 그 동안 역사학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지대한 관심대상이 되어 왔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민족해방운동에 앞장섰던 독립투사들은 그가 민족주의자이든 사회주의자이든 동학농민혁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 속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는 동시에 그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민족자주국가를 건설하려는 역사의식에서 비롯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는 주로 1960년 전후, 1980년 전후에 큰 주목을 받았다. 1960년 전후는 국내적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급기야 4.19혁명이 발발하던 때였다. 세계적으론 약소민족의 해방과 자주국가 실현이라는 진통을 겪던 시기였다. 이러한 국내외의 상황은 자연히 그 같은 역사적 이념을 지녔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동학농민혁명은 1960년대에 농민층이 주체가 된 반봉건․반외세운동이었다는 정당한 평가를 비로소 받게 되었다.
그 뒤 1980년 전후에 또다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것은 박정희정권의 몰락과 5.18광주민중항쟁의 여파였다. 세계적으로는 인권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민주화의 욕구가 크게 대두되었다. 이러한 분위기하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해도 한층 깊어졌고, 그 이념을 계승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동학농민혁명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동학농민혁명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놓았는지 지난 100년의 역사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할 때 우리 민족의 자주발전의 내적 동력을 확인해주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인 동학농민혁명의 성격과 현재적 의의를 되새김으로써, 지난 1백년의 역사 전개 속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를 전망할 수 있는 역사의식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소위 ‘국제화’, ‘세계화’가 대세인 오늘의 시점에서 더욱 요구되고 있다.
역사가 과거 그 자체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의미 있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적인 관점에서 재해석된 과거를 반추하고 그 속에서 오늘날의 역사적 과제를 극복할 지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00여년 동안 면면히 계승 발전된 동학농민혁명의 이념, 즉 안으로는 잘못된 사회를 개혁하고 밖으로는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역사의식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민족 구성원들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곧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다가온다. 120주년은 천기 운행이 두 번씩이나 바뀌고 세 번째 시대가 열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그를 위해 역사적인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지난 100년 면면히 흐르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새로운 시대에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준비를 할 때이다.
지금부터……
<저자 소개>
김양식
약력: 문학박사, 현 충북발전연구원 충북학연구소장
저서: 『근대사회변동과 농민전쟁』, 『근대권력과 토지』, 『충북의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 『새야새야파랑새야』, 『근현대 충북의 역사와 기억』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