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평등의 공통분모
조광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근대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는 인간의 평등성에 대한 인식을 들 수 있다. 신분제에 입각한 전근대 내지 중세 봉건사회에서 인간은 결코 평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이 불평등성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고대사회에서는 지배층이 노예층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행사했다. 물론 역사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혈연을 기반으로 한 신분에 따라 다른 인간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범위는 점차 좁혀져갔다. 그러나 인류사의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불평등성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신분의 불평등성을 본격적으로 극복한 시대를 역사는 근대로 규정하고 있다. 근대사회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형제애가 있다. 이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 때 제시된 혁명의 모토였다. 프랑스대혁명은 바로 인류의 역사를 중세와 근대로 구분하는 기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대혁명이 제시했던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결코 분리된 가치가 아니었다.
자유, 평등, 박애 이 셋은 서로가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받아 감염되면, 다른 두 요소에도 그 염증이 전염되어 온전할 수 없다. 또한 이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한 부분이 특별히 강화되거나 발전하면, 나머지 두 요소도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가 특별히 주목을 받게 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예를 들면 조선후기 우리나라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신분제의 무력화를 위한 광범한 노력을 들 수 있다.
조선왕조는 18세기에 이르러 신분제의 극복을 위한 구체적 노력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비종모법을 통해 노비가 가지고 있던 인간의 권리들이 부분적으로 향상되어갔다. 서얼소통법의 시행은 양반 지배층이 자기계급을 보전하기 위해 제한을 가해 왔던 불합리한 제도의 붕괴를 뜻했다. 이 상황에서 다산 정약용은 ‘모든 사람이 다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되기’를 바랐다. 이는 신분제를 무력화시켜서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보고자 했던 염원의 표현이었다.
18~19세기 조선왕조의 민중들은 평등에 대한 지향성이 특히 강했다. 선진적 지식인들도 그들의 평등지향성에 대해서 동감을 표했다. 그들은 새로운 종교운동을 통해서 이 평등성을 관철하고 실현시켜보고자 했다. 그래서 당시 사회에서는 서학이나 동학 등과 같은 새로운 신앙이 불길처럼 번져나갈 수 있었다. 우선 서학 즉 천주교 신앙의 경우를 보면, 조선왕조는 이를 사학(邪學) 즉 ‘그릇된 가르침’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탄압해 나갔다. 서학이 사학으로 규정된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이 신분제적 질서를 부인한다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풍토에서 19세기 중엽 수운 최제우는 새로운 종교운동으로 동학을 창도했다. 동학의 여러 이념 중에서 민중의 주목을 받았던 가르침의 내용 가운데 인간의 평등성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 일단 동학을 믿게 되면 군자가 되고 신선이 된다는 경전의 구절은 그들의 평등 지향을 가장 명료히 나타내 주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군자는 당시 지배층이었던 양반지식인들에게 부여된 영예로운 명칭이었다. 신선은 인간의 높낮이가 없는 새롭게 개벽된 이상사회의 구성원을 말했다. 이 군자와 신선이라는 개념은 동학이 지향하던 이상세계의 새로운 시민이었다.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에서는 서학과 동학의 관계를 규정한 바 있다. 즉, 여기에서 논하는 “운(運)은 하나이고, 도(道)도 하나이지만 이(理)는 다르다”라는 말에는 분석이 필요하다. 이 구절은 불평등한 사회를 평등사회로 바꾸려던 시대정신의 동질성과 인간의 평등에 대한 가르침이 같다는 말이었다. 수운 최제우는 평등을 지향하던 민중의 바람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는 평등이 근대의 기준이 됨을 알지 못했지만, 우리 역사에서 평등을 실천함으로써 근대를 이루려 했던 인물이었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다. 남은 자유를 구가하고자 했고, 북은 평등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의 남과 북은 자신의 강조점에 가리어 나머지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둘이 서로 분단된 다음 자신의 강조점마저 잃어버리고 스탈린적 전체주의나 반공 파시즘에 빠져들었다. 이 분단업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지금 한반도에는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시대를 다지려 하고 있다.
그리하면 우리는 새로운 현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18세기 이후 우리 민중들이 그렇게도 바랐던 평등을 기조로 하여 자유와 형제애를 일으키려던 그 새로운 역사를 우리는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지난 세기 민중들이나 수운 최제우가 그렇게도 바랐던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개벽의 시대에 접어들어야 하고, 잃었던 남북의 형제애를 회복해야 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참다운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광(趙珖) | 가톨릭대학교 신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문학박사)를 졸업한 후 동국대학교 사범대 국사교육과,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근무하였다. 주요 경력으로는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연세대학교 용재 석좌교수, 제24대 한국사연구회장,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주요 저서로는 『조선후기 천주교사연구』(1988), 『조선후기 사회의 이해』(2010), 『조선후기 사상계의 전환기적 특성』(2010), 『한국 근현대 천주교사 연구』(2010),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이해』(2010) 등이 있다.
